겨울의 질량

당신 다음엔 무엇 45

by 강윤미
겨울의 질량.jpg 그림 metaphor





비가 오는 날보다 눈이 오는 날이 좋다.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겨울에 태어나서일까.


그곳에서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았다. 중산간 마을이었으므로 바다보다 산이 가까웠고, 풀을 뜯어 먹는 말과 소를 자주 보았고, 억새 곁에서 자랐다. 눈이 참 많이 왔다. 그 많은 풀을 덮고 나무들을 감싸고도 남을 눈이 참 많이 내렸다. 눈은 마당과 지붕을 덮쳤다. 개는 집에 들어가 꼼짝 않고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들여다보면 하얀 눈이 내 키 보다 더 자란 날도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훌쩍 자라나는 눈의 성장. 눈을 만지는 것보다, 눈길을 밟고 지나가는 일보다 좋은 것은 눈이 쌓인 장소 위에 계속 내려앉는 풍경을 보는 일. 힘이 없고 나약한 눈은 멈추지 않았으므로 쌓일 수밖에 없는 강인한 고요에 이르렀다. 보이지 않는 1mm 위에 희미한 1mm가 합해져 눈의 장벽이 생긴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흰 당나귀가 우리 집 마당에 앉아 있던 밤이 있었다. 열다섯이었나 열여섯의 어느 날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배우며 특별한 감명을 받아서도 아니었다. 시어의 의미를 발견하는 눈도 없었고 시를 쓰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지만 차오른 감정을 어찌할 바를 몰라 공책에 시 비슷한 것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물론 연애시였다.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길 기다리듯, 나는 대상을 바꿔 가며 짝사랑했다. '짝사랑'을 짝사랑했다. 예술의 처음은 사랑이고, 예술의 절정은 사랑의 그림자이며, 예술의 결말은 사랑을 사랑이 아닌 척하는 사랑의 가면이다.


눈이 정말 많이 내리는 날엔 버스가 마을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눈길을 걸어 마을 입구 큰 도로변까지 내려가서 시내로 가는 아무 버스나 얻어 타고 학교에 가야 했다. 지금 같으면 아름다워서 꼼짝하지 않고 집에서 눈을 하염없이 보고만 있고 있을 것 같은데, 학교 다닐 땐 그 먼 길을 걸어 내려가 버스가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곤 했다.


겨울이면 마을은 길을 감추고 할 일을 잊은 사람처럼 넋 놓고 있었다. 그땐 고립이었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불편함이었지만, 지금 떠올리면 눈이 내 곁에 내려준 음악 같고 그림 같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 장조 2악장 Adagio Assai를 듣는다. 샤갈의 <나와 마을>이라는 그림 속 염소를 떠올린다. 이제 눈이 오는 일을 목격하기 어려워서일까.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은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외로운 사람의 얼굴 같다.


그 차가운 겨울의 끝에 나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훼손되지 않은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겨울을 온몸으로 맞고 홀로 우뚝 서 있는 내가 세상에 던지는 물음 하나를 영원히 풀지 않기로 작정한 것. 집에 들어간 개가 낯선 발소리를 듣고도 짖지 않고 웅크리고 있기로 마음먹은 것.


겨울의 공기는 차가운데 눈을 쥐고 있는 겨울은 따스하다. 겨울의 촉각은 차가운데 겨울의 시각은 따스하다. 눈을 만지면 차가운데 눈이 모여 있는 나의 마을은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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