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다음엔 무엇 48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나는 아이들에게 갖고 싶은 것을 물어본다. 아이들은 냉큼 말한다. 아이들은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나는 멀리 있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대신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다. 이틀 후,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온다. 나는 아이들이 다른 일에 몰두했을 때 얼른 세탁기 안으로 선물을 숨긴다. 아이들은 불쑥 무언가를 찾으러 어디로든 갈 태세로 두 손 두 발을 휘젓고 다니므로 집 안 어디든 안심할 수 없다. 오직 나만 열고 닫을 수 있는 세탁기 안이 가장 안전한 장소인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들길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아이들이 잠들면 얼른 선물을 꺼내고 와서 방문을 잠그고 포장을 한다. 그리고 다시 붙박이장 가장 높은 곳, 이불과 이불 사이에 꾹꾹 집어넣는다. 와! 선물을 숨기는 것은 꽤나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원한 선물이지만 크리스마스 되기 며칠 전에 택배 아저씨가 건네준 선물을 무심하게 뜯어버리게 하긴 싫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모든 집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선물을 준비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설령 알아버릴 나이라 하더라도, 나는 김빠지는 선물 증정식은 피하고 싶다. 아이가 아직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믿고 있는지, 이미 세상에 그런 할아버지는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버렸지만 엄마·아빠에게 아직도 믿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도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가 아니라,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에도 어딘가 있을 거라고 믿는 마음이다. 할아버지의 존재 여부를 들추는 대신 사랑한다고 한 번 더 껴안아 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조금씩 쌓여 다른 계절의 어느 누군가에게까지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아이들이 말한 큼지막한 선물 말고, 작고 소소한 선물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전날, 아이들이 잠든 밤에 가만히 생각하니 아침에 깼을 때 생각한 선물만 있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겐 안심이 되면서도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히 24시간 하는 슈퍼마켓에 가서 작은 플라스틱 인형이 랜덤으로 들어 있는 초콜릿을 샀다. 급히 준비한 선물이었지만 크리스마스 아침에 포장을 뜯는 아이들의 손길은 왁자지껄 흥겨웠다.
그래서 그 후부터 나는 작고 소소한 물건들을 몇 가지 더 준비하고 있다. 문구용품이나 작은 피규어 인형, 만들기 용품 등 몇 천원쯤 되는 물건들을 여러 개 주문한다. 아이들의 성향을 생각해서 같은 것으로 몇 개, 다른 것으로 몇 개 주문한다. 그리고 택배 아저씨가 오면 세탁기에 넣었다가 포장을 한다. 붙박이장 위로 올라갔던 선물은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돌연 자취를 감춘다.
아이들이 몇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던 큼지막한 선물은 거실에 있다. 그리고 선물 옆에 비밀 쪽지가 비밀스럽게 남겨져 있다. 비밀 쪽지에는 작고 소소한 선물들이 있는 비밀 장소들이 적혀 있다. 물론 ‘비밀’이라는 단어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장소들을 알기 위해서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구하러 가기 위해 가시덤불을 지나가야 하는 왕자의 심정처럼, 고난과 역경이 뒤따라야 한다.
1. 호두까기 인형은 **음악. 토요일마다 문화센터에서 하는 것은? 문화센터에 갈 때마다 들고 가는 것은?
2. 밤마다 침대에 같이 눕는 것은? 요일마다 다른 **을 꺼내기 위해 여는 곳은?
3. 빗방울 전주곡을 작곡한 사람은? 그 사람은 어떤 악기를 연주했지?
4. 보너스! 아빠의 뺨에 뽀뽀하세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의 문제들을 내는 것이다. 정답은 발레, 인형, 피아노. 아이들은 발레 가방 속에서, 인형 서랍에서, 피아노 의자 안에서 선물을 찾아낸다. 그리고 나는 전날, 미리 선물 하나를 아빠에게 건넨다. 선물을 주는 기쁨이 아빠로부터 아이들에게 전해지도록.
아이들은 문제를 푸는 동안 즐겁고, 문제를 못 맞히는 동안 싱크대 문을 열고 이불 속을 뒤지면서 선물을 찾고 싶어 호들갑을 떨면서 설렌다. 그리고 선물을 찾았을 때 정말 기뻐한다. 자신들이 말한 선물은 잊고 생각하지도 못한 선물을 뜯느라 작은 두 손이 바쁘다. 필통, 스팽글 수첩, 열쇠고리 등 집에 넘쳐서 소중한 줄 몰랐던 것들이 약간의 수고와 위트를 겸비하면 소박한 행복이 되어 돌아온다.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허공에 대고 중얼거린다. “이번에도 비밀 선물이 있을까?” 허공 옆에 엄마가 앉아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나는 모르는 척 대답한다. “글쎄…….” 나는 슬며시 웃는다. 올해도 얼른 숨은 선물 찾기를 위한 문제를 내야겠다. 요리조리 생각을 굴려봐야겠다.
눈이 오지 않는 겨울이지만, 눈이 오지 않고 캐럴이 거리에서 울려 퍼지지 않는 크리스마스지만, 아이들의 크리스마스는 알록달록 빛나야 한다. 빛나면서 빛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