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당신 다음엔 무엇 47

by 강윤미
셰이프 오브 워터.jpg 그림 metaphor






아름다운 것이 소용돌이치면 쉽게 잠들지 못한다. 겨우 잠이 들 때쯤 아이가 뒤척인다. 뒤척이는 소리에 잠이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나는 아름다운 여운을 다시 마음에 불러 모은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집중해서 빠져든 영화였다. 소소한 일상을 다룬 영화를 즐겨보는 내가 사랑에 빠지기 힘들 법한 종류의 영화여서 볼까 말까 망설였는데, 나는 이런 영화에도 감동하는 사람이었다. 기괴한 것이 아름다울 수 있구나. 비현실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이구나. 추하고 더러울 수 있는 모습은 인간의 모습 중에 가장 오래된 고독 같은 것이구나. 이해가 갔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로테스크한 장면들 때문에 불편할 줄 알았는데 나는 불편까지도 사랑해버렸다.


방문을 잠그고, 욕조의 물과 세면대의 물을 모두 틀어놓고 두 생명체가 끌어안는 사랑. 물은 넘치고 넘쳐 물의 세계로 그들을 이끈다. 물속에서 자유로워지는 사랑. 물속에서 치유되는 사랑.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랑은 물속에서 물을 만나고 사랑으로 승화된다. 물은 가장 오래된 미래다.

우리는 모두 물속에 있던 때가 있었다. 엄마의 몸 안에서 우리는 인간이 되어갔다. 물의 포옹 안에서 사람의 형체가 되어갔다. 물은 그림자 같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까마득하게 잊는다. 우리의 몸에 그림자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렸다.

도시의 삶은 그림자를 잃게 만들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 그림자를 만나지 못했다. 어릴 때 밤중에 부모님의 심부름을 이따금 갔다. 손전등을 켜고 마을 구멍가게로 가는 길. 무서워서 손전등을 켰고 무서워서 동생 손을 꼭 잡았다. 드문드문 보이는 가로등이 전부인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동그란 빛에 의지해 걸었다. 그때 나는 내 그림자를 만났다. 내 몸에 붙어 사선으로 길게 뻗은 채 괴물처럼 서 있는 그림자. 눈코입이 없고 말을 할 수 없지만 나보다 커서 어른 같았던 그림자. 그림자는 때론 길게 뻗어 내가 아주 날씬한 모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이르게 했고, 다리가 붙은 채로 몸통만 뭉뚱그린 모습으로 나를 덮치기도 했다. 동생과 걸으며 누구의 그림자가 더 크고 누구의 그림자가 못생겼는지 끊임없이 말을 나눠 가졌다. 혼자 가면 멀고 아득했을 길이 동생과 손전등과 그림자 덕에 나는 그럭저럭 그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컹컹 짖던 동네 개들이 그림자 속을 뚫고 들어오려 해서 난감할 때도 있었다. 대학 시절 자취방들이 모여 있던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때만 해도 그림자는 그럭저럭 내 곁을 붙어 다니곤 했는데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물속 깊이 잠수해버린 걸까.


상처 난 그녀의 몸은 물속에서 회복된다. 기괴한 생명체와 그녀는 물속 어디론가로 흘러들었다. 깊이깊이 빠져들었다. 물이 되었다. 물속에서 우리는 눈코입을 갖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물속에서 우리는 팔다리를 뻗게 되었다. 손과 발이 없고 눈코입이 아직 완성되기 전의 우리는 모두 괴물이었다. 우리는 물속에서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물속에 들어가 숨을 쉬듯 먹먹해졌다. 그리고 내 그림자가 보고 싶어졌다. 꿈속에서 가끔 만나는 과거의 나. 그림자가 나를 그리워해 꿈속에 찾아든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가 자다 깨서 엄마를 부르든 아무것도 부르지 않든 기척을 확인하고 싶어 하듯, 내 그림자가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냥 괴물이라고 말하면, 말도 안 된다고 해 버리면 공기 중으로 흩어져버릴 여운. 나는 기꺼이 괴물을 괴물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가령 새 구두를 신고 돌아다녀서 발꿈치가 다 까졌을 때 살은 못생겨지고 붓고 불쑥 붉어진다. 내 몸 어딘가에 괴물이 살아서 아주 가끔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다시 새 살이 붙어 그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괴물의 방식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림자와 양수의 기억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시를 쓰고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 됐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보르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