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택배

당신 다음엔 무엇 52

by 강윤미
엄마의 택배.jpg 그림 metaphor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나의 택배 인생은 시작되었다.


기숙사 입소 전날, 미리 도착한 나의 상자. 상자 속엔 내가 덮을 이불과 내가 입을 옷들, 그리고 내가 읽을 책과 내가 신을 신발이 들어 있다. 상자 하나여도 충분한 인생이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종강하면 기숙사도 퇴소해야 했다. 다시 고스란히 상자에 들어간 물건들은 섬으로 간다. 분실의 위험이 있는 데다 많은 기숙사생의 짐을 보관할만할 여력이 없는 기숙사에서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퇴소하는 날이 되면 큰 택배 트럭이 기숙사 앞에 택배를 받기 위해 대기한다. 학교생활에 적응될수록 짐은 늘어난다. 상자 하나로 시작됐던 스무 살의 인생은 두 상자, 세 상자로 불어난다.


배정받은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서야 룸메이트를 확인할 수 있다. 좋든 싫든, 한 학기 동안은 같은 방을 써야 한다. 가림막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자는 패턴과 데리고 오는 친구들의 양상이 같을 수 없으며, 수다의 농도가 다르고 취향과 관심사가 당연히 다른, 모르는 사람과 매번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실을 겪어가며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였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글을 쓰는 일을 불가능하게 했다. 시를 쓰고 싶어 입학했지만, 책상에 앉으면 등에 붙어 있는 시선이 낯간지러웠다. 룸메이트는 스탠드 불을 켜고 다른 방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했는데, 나는 당연히 잠들 수 없어서 깊이 잠든 척해야 했다. 왜 수다는 새벽에 절정을 이루는 것일까. 룸메이트가 본가로 가는 금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나는 긴 호흡을 내쉴 수 있었다. 기숙사생들이 기차나 버스를 타고 본가로 가는 금요일 오후부터 기숙사는 텅 빈다. 슬리퍼를 신고 기숙사 복도를 걸어갈 때, 내 슬리퍼에서 나는 소리가 몸을 비운 북소리처럼 복도를 메운다. 나도 이따금 비행기를 타고 섬으로 가고 싶었다.


시를 쓰기 위해 자취를 시작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다섯 군데의 방을 옮겨 다녔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는 방법도 모르고 시작한 자취 생활.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학교 앞 중고가게에 가서 산 작은 텔레비전과 작은 냉장고, 작은 책상이 내 방의 첫 손님이었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김치를 보내주셨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엄마의 파김치. 나는 엄마의 파김치만 있으면 참 맛나게 밥을 먹었었다. 엄마의 김치는 특별한 걸 넣지 않아도 맛있다. 특별한 것이 없어도 내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녀의 딸이기 때문일 거다.


엄마는 김치 옆 남은 공간에 늘 두루마기 휴지 하나, 치약 하나, 주방 세제 하나라도 꽉꽉 채워서 택배를 보내주셨다. 바다를 건너 내가 있는 곳으로 오기까지의 긴 여정을 대비해 상자 위아래와 옆을 테이프로 몇 번이고 붙이고 보내 주셨다. 엄마의 택배는 내가 결혼해서 큰아이가 아기였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내가 전화를 걸면 엄마는 김치의 안부부터 묻곤 했었다. 우리 집 냉장고에 김치가 얼마나 남았는지, 너무 많이 익지는 않았는지 물어왔다. 김치로 시작해서 김치로 끝나는 안부.


언젠가부터 엄마의 택배는 중단되었다. 관절이 안 좋은 엄마에게 김치 부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식들을 집에서 떠나보낸 부모님은 조금씩 마트에서 김치를 사다 드신다. 엄마가 김치 양념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지만 나는 만들어볼 시도하지 않는다. 그건 내 김치이지 엄마의 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의 택배가 중단되면서 이상하게 엄마와의 통화도 드문드문 멀어져갔다. 딸은 이제 섬사람이 아니므로 엄마의 김치를 잊고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여기고 있는 것일까. 가까이 살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는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나는 내 딸들이 어느 만큼 키가 자랐고 어떤 음식을 잘 먹으며 무엇을 할 때 가장 크게 웃고 이상한 표정을 짓는지 엄마에게 일일이 보여줄 수 없음을 너무 잘 알아 버렸다. 나는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 때문에 외롭고 어떤 일 때문에 괴로운지 엄마에게 말하기보단 말하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편한 감정으로 각자의 삶을 지탱하는 일임을 너무 잘 알아 버렸다. 이제 나는 엄마에게 필요한 말만 카톡으로 전하고 엄마도 내게 그런다. 우리는 그런 모녀가 되고 말았다.


친정에 쉽게 왕래하지 못하는 딸의 삶은 왕래하지 못해도 괜찮을 만큼 겉으로는 아주 단단해 보여야 한다. 단단한 상자 속에 감춰진 여러 갈래의 마음들이 테이프로 꽁꽁 싸매진 채로 있는 것이 여러모로 서로에게 좋다. 말하다 보면 가고 싶고, 말하다 보면 내 딸들을 보여 주고 싶고, 말하다 보면 나도 ‘엄마’라는 것을 잊고 당신의 딸로만 머물고 싶다고 다 쏟아부어 버릴까 봐 목소리를 잊기로 했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어떤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나는 엄마에게 전화할 뻔했다. 작가는 엄마의 파김치를 먹고 있는 장면을 썼지만 나는 엄마의 집 담장을 아무 연락 없이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드나드는 딸의 인생이 부럽다고 말하고 싶었다.


배추김치는 조금씩 사다 먹을 만했는데, 파김치는 정말 엄마의 파김치가 아니면 안 됐다. 엄마의 파김치를 잊고 지낼 만큼 맛있는 파김치를 아직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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