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9: 잉여로운 제주 여행, 여유 챙기기
엊그제 도착한 것 같은데 벌써 12일이 지났다.
오늘로써 11박 12일의 여행을 마무리한다.
지금 제주는 비가 온다.
아쉬움 없이 떠나라고 그러는 건지, 날씨가 미련을 떨구게 등을 밀쳐낸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면 도리어 너무 아쉬웠을 것이다.
벚꽃은 곳곳에 피어있었지만 만개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집 앞에서 벚꽃 ‘꽃엔딩’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잉여로운 하루를 보냈다.
이정표를 보고 들어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바로바로 들어가 실컷 봤다.
제주 밭담공원은 꼭 거쳐 갈 곳은 아니지만, 지나다 내려서 산책하기엔 괜찮은 곳이었다.
난산리 다방에서 봤던 귀여운 돌 캐릭터가 여기에 여러 개 있었다.
아마 여기서 벤치마킹 한 건가?
밭담테마공원 주차장에서 한 시간 넘게 잠이 들었다.
감기 기운 탓인지 자꾸 나른하고 졸음이 쏟아졌다.
숙소를 정리하고 나오는데 그새 정들어서 많이 아쉽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최대한 깨끗하게 정리하며,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있을까 기약 없는 인사를 돌담 건너 무밭에도, 방의 천장에 뚫린 조명 담당 창문에도 건넸다.
공항 근처까지 오는 내내 일부러 해안가를 따라 드라이브하며 바다를 오래도록 담았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 은희의 집으로 차를 몰아 돌아갔고, 나의 첫 제주 여행지였던 함덕 서우봉 해안에 들렀다.
언제 봐도 멋진 그곳을 지나도 배는 고프다. 복진 식당에서 톳 칼국수를 먹었다.
반죽에 톳이 들어간 칼국수는 전복과 새우가 어우러져 해물 칼국수처럼 푸짐했다.
다음으로 용연교, 용두암, 이호테우 해안, 월대천까지 지그재그로 생각나는 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용두암 근처 주차장에서 다시 한 시간 넘게 쉬었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다니니 시간이 참 잉여로웠다.
남은 시간 동안 '바이 제주'에 들러 소품도 구경하고 선물도 산 후 렌터카를 반납하려고 했는데, 내비게이션은 렌터카 회사로 나를 먼저 안내했다.
아뿔싸, 또 주의력 부족이다.
다시 핸들을 돌려 '바이 제주'로 향하며, 자꾸만 반복되는 사소한 실수들에 서글프게도 내 나이 듦을 실감했다.
다시 마주한 '바이 제주'는 몰라보게 큰 매장으로 변해 있었다.
비 오는 날이라 한산한 매장을 보며, 이 정성스러운 공간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오래도록 잘 운영되기를 마음 깊이 빌었다.
빗줄기가 굵어져 더 이상의 이동은 무리였다.
바로 옆 스타벅스 제주해안도로 DT점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바로 지금, 창밖의 풍경을 마주하고 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공항을 향해 낮게 내려앉는 비행기가 어우러진 풍경은 어떤 문장으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장관이다.
직원에게 제주에서만 파는 메뉴를 주문하고 싶다고 했더니 '인절미 말차 라테'와 '당근 현무암 케이크'를 추천해 줬다.
그대로 주문해서 먹어보니 제주의 색을 닮은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이 생각하던 딱 그 맛이다.
잘 먹고 잘 쉬어서 얼굴은 동그래지고 바지는 터질 것 같은데, 감기 때문에 컨디션은 저조하다.
살짝 지루할 뻔했던 잉여로운 하루의 끝에서, 창 너머 보이는 절경이 잘 가라고 작별 인사를 해준다.
그리고 빗줄기는 계속해서 굵어졌다.
잘 가라는 거지?
이번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 하나.
나는 한 시간만 넘어도 운전하기를 피곤해하고,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혼자서도 멀리 나갈 수 있음을 경험했다.
고속도로와 휴게소, 졸음쉼터가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제 두려워 말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나서서 즐겨야겠다.
제주야, 너 덕분에 잘 쉬다 간다.
마음의 여유를 가득 챙겨간다.
6월에 수국 축제가 열리면 다시 올 수 있으려나.
내일이라도 당장 올레길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제는 정말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참, 제주에서 만개한 벚꽃은 못 봤다. 벚꽃 엔딩은 집 앞에서.
공항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 앞 벚꽃이 만개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