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치원 원장 선생님

빨간 BMW

by 니니


독감과 감기로 띄엄띄엄 유치원에 가던 아이가 오래간만에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등원을 했다.


아이가 다니는 국제 유치원 (한국에서는 어린이집에 해당, 영어 유치원의 성격을 띤 곳) 에는 여러 대의 등원차량이 있고 매주 차량종류와 탑승시간에 변동이 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오는 차량은 대개 두 종류인데 오늘은 처음 보는 SUV 차량이 아이들 앞에 멈춰 섰다.


빨간 BMW 한대

그렇게 난 오늘 처음으로 아이 유치원 원장 선생님을 보았다.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니트에 화려하지만 고상한 프린트의 실크 스커트. 풍기는 분위기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아했고 고급스러웠다. 부티는 돈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귀티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누군가 그랬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지만 한국과 일본, 중국에 살며 다양한 사람을 보며 느낀 점은 사람의 인상과 분위기는 아무리 치장을 한다고 해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인상과 분위기. 예쁘다 보다는 멋졌다.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로는 해외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국제 유치원을 경영하고 있는 수재라고 한다. 현재 해당 유치원은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고, 국제 유치원이 여럿 있는 이 동네 그리고 미친 물가의 상하이에서 아이들이 줄지 않고 운영이 되는 것을 보면 분명 그녀는 일머리가 있고 센스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밝은 미소로 학부모들에게 인사를 건넨 후 빨간 BMW를 부드럽게 몰아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갔고,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상황, 환경적 이유로 커리어를 중단하고 전업맘, 전업주부로 산지 어느덧 4년 반.


임신과 동시에 미국 회계사(USCPA) 시험준비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질질 끌고 있고, 작년부터는 중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무언가'를 완전히 손 놓고 있진 않지만 '이게 나의 커리어다, 이게 나의 일이다'라고 할만한 일은 4년 반 째 일시정지 중이다.


국제 유치원의 원장인 그녀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커리어라는 단면만 보았을 때 당장 지금의 난 가진 게 없는데, 그녀는 가진 게 많아 보였다. 자신의 일터와 공간이 있고, 자신이 보낸 하루와 수고에 대한 물질적인 대가를 얻는다.


육아라는 게 참.

자녀의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누군가에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 사람을 ‘키워내는’ 소중하고 귀중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 일을 할 때처럼 들인 나의 시간과 수고에 대해 눈에 보이는 ‘물질적 대가’가 없기에 종종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게 된다.


‘넌 가치 있는 사람이니? ’라고


겨우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일생 중 고작 4년을 천천히 가고 있을 뿐인데, 가끔씩 ‘경단녀‘ 와 ‘엄마’ 그리고 ’ 30대’라는 타이틀로 스스로를 재단하고 재촉할 때가 있다.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너의 수고와 노력으로 아이가 쑥쑥 커가는 모습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지. 아이가 커가는 많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행운인데 ’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 보아도 열에 한두 번은 위로되지 않을 때가 있다.


2-3분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순간을 다시 맞이하리라 다짐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란 어떤 순간일까?


아이를 낳고, 24시간 365일 아이와 함께하며, 삶의 터전을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기면서 나의 가치관과 삶의 우선순위가 많이 바뀌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을 하고, 상사에게 격려와 칭찬을 받고, 프로젝트를 하며 얻는 타인의 인정과 평가만이 나를 반짝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의 소중한 아이, 가족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인 남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과 감정, 맛, 온기, 그리고 공기 속 냄새까지.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이 소중함을 진심으로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들은 결코 편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고, 내 인생에 그런 순간이 있었음에 감사하다.


나를 이해하니,

나는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온전히 나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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