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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Jun 01. 2018

내가 기억하는 형 2

형은 머리가 좋았지만 공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마루,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는 책상은 그저 탁구대에 불과했습니다. 볼품없는 책상 두 개를 길게 붙이면 그럴듯한 탁구대가 만들어졌으니까요. 서랍 하나 없는 책상, 일단 책꽂이가 초라하게 올려져 있는 책상은 우리가 원했던 책상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생각이 기발했을지는 몰라도 공공 도서관에나 있을 법한 책상을 집으로 들인 건 큰 실수였습니다. 물론 형편이 넉넉지는 못했지만 궁색해 보이는 책상은 그 누구에게도 앉을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숙제를 할 때도 우리는 방바닥에 앉거나 엎드려서 했습니다.


1978년 형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늘 밖으로 나돌던 형의 얼굴은 쉽게 보기 힘들었습니다. 어스름 어둠이 내리면 그제야 형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말수가 별로 없었던 형은 밥상에서도 조용했습니다. 식사를 마치면 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가곤 했지요. 형은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형은 육백만 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을 즐겨 봤습니다. 형은 특히나 빠삐용을 좋아했습니다. 주말의 극장인가 명화 극장에서 방영해준 빠삐용을 보고 무척이나 감동을 받은 듯했습니다. 빠삐용의 두 주인공 스티브 맥퀸, 더스틴 호프만의 이름까지 외울 정도로 열정적이었죠. 형은 더스틴 호프만이 감옥 안에서 바퀴벌레를 잡아먹는 장면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았습니다. 그 긴 러닝타임 동안 감동받은 장면이 그 장면이라는 게 우스워 보였지만 왠지 형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어쩌면 형이야말로 진짜 빠삐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형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급하게 마감하고 어디론가 날아갔으니까요. 오래전, 형을 땅속에 홀로 남겨두고 산을 내려올 때 노란 나비 한 마리가 저를 따라왔습니다. 옅은 노란색 나비였습니다. 춤을 추듯 작은 나비는 제 주위를 맴돌며 발걸음을 같이 했습니다. 언젠가, 나비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나비가 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비가 형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형이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형이 뭇 내 아쉬워 저를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사도 어떤 말도 없이 떠나간 형을 그렇게 나마 볼 수 있어 위로되었습니다. 형은 제 마음을 확인했는지 허리춤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머물다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나비를 보며 저는 '형, 잘 가.'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잊지 않고 저를 찾아온 형이 고마웠습니다.


형은 늘 바쁘게 살았습니다. 자신의 짧은 생을 예감하고 있었는 듯, 형은 급하게 살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결혼도 학생 신분일 때 했습니다. 물론 아기도 일찍 낳았습니다. 미대 재학 중에 전문 서적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형은 성격이 급하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뭔가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삼십 년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었나 봅니다. 남들보다 길지 않았지만 형은 시간을 알차게 쓰고 갔습니다.


저는 이제 마흔여덟이 되었습니다. 형보다 벌써 십팔 년을 더 살고 있습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저보다 사 년 일찍 태어난 형보다 더 살고 있는 저의 모습이 과연 맞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형이 보고 싶어 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형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지는 느낌입니다. 수줍게 웃음 짓던 형의 미소가 그립습니다. 우리 형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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