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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May 06. 2018

내가 기억하는 이별

1.  

바지춤 주머니에는 달랑 오십 원짜리 동전 하나뿐이었다. 엄마 얼굴이 아른거렸다. 나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돈을 구해야 했다. 공병은 이미 다 갖다 팔았고, 있으나 마나 한 돼지 저금통은 진작에 배를 갈라 돈을 만들 방법이 좀처럼 없었다. 할머니와 삼촌이 떠오르긴 했지만 현실 가능성이 없었다. 삼촌은 직업도 없이 빈둥빈둥 놀면서 막노동판을 전전했고, 할머니 또한 백 원을 얻어 내려면 엄청난 빗자루 세례를 감수해야만 했다. 돈은커녕 본전도 못 찾을 것은 당연했다. 일요일이라 수선집 심부름 역시 없었다. 오락할 돈이 필요하거나 배가 고플 때면 수선집 길목에 앉아 구슬이나 딱지를 가지고 놀았다. 한 참을 놀다 보면 높게 올라있는 창문이 열리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두 컴컴한 좁은 계단을 단숨에 올라 가벼운 합판 문을 열면, 방 안 가득 쌓인 옷 더미와 쾌쾌한 석유 냄새가 먼저 나를 반겼다. 산처럼 높은 형형색색 보따리를 등지고 빠르게 도는 재봉틀 위에 갖가지 옷자락이 요란을 떨고 있었다. 풍금을 치듯 아줌마의 움직임은 부드러운 반면 기계에 매달린 뾰족한 바늘은 쉴 새 없이 옷을 찔러댔다. 빠른 속도로 왔다 갔다 하는 바늘을 바라볼 때면, 간혹 손가락을 넣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살집 넉넉한 아줌마의 지시를 받은 나는 곧바로 이문 시장으로 내달렸다. 두세 번 우리 동네에서 이문 시장까지 아줌마가 건네준 옷을 갖다 주면 적게는 백 원, 많게는 이백 원까지 벌 수 있었다. 용돈이 박한 나에게는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평일은 그렇게라도 돈을 구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일요일이라 수선집이 조용했다. 주소와 전화번호도 몰랐지만 내 마음은 엄마를 보러 가야겠다고 점점 굳어 가고 있었다. 서대문 어딘 가였고, 한 번 가보았으니 근처까지만 간다면 쉽게 찾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동전을 움켜쥐었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조금 전과 달리 두 다리가 무거웠다. 윗동네로 이어지는 주름진 콘크리트 언덕길 초입에 다다르자 더 이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늘 다니던 길이었지만 그 길이 낯설고 멀게 느껴졌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길 사거리를 지날 때쯤 마음을 정했다. 오십 원 밖에 없었지만 그 선택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 등 뒤로 우리 집이 멀어지고 있었다. 검은색 제비 한 마리가 지면에 닿을 듯 말 듯 나보다 앞서  빠르게 날아갔다.

고개 넘어 얼마 못 가, 내 시선이 오른쪽 후미진 곳에 고정되었다. 뭔가에 끌린 듯 내 눈동자가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돌덩이가 쌓여 있는 그곳, 거짓말처럼 오백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기적이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심장이 쉴 새 없이 요동쳤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안 보였다. 불안했지만 허리를 숙였다. 내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지만 내 오른손은 정확히 오백 원짜리를 집어냈다. 돈을 움켜쥔 순간, 시간이 멈춰 버린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방이 어두웠다. 내 작은 몸뚱이를 중심으로 회색 어둠이 나를 감쌌다. 귓속에서 전기 소리와 같은 고음이 들렸다. 얼굴은 뜨거워지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댔다. 내 두 다리가 내리막길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목덜미에서 뻐근함이 느껴졌다.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잡혀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속도를 못 이기고 휘청댔다. 하지만 내 두 다리가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무서웠지만 우리 동네가 멀어질수록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돈을 주웠다. 파출소에 갖다 주고 칭찬받을 생각은 없었다. 이 돈의 주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겁이 났지만 들키지만 않는다면 갖고 싶었다. 엄마를 찾아 가는데 보태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정신없이 달려 도착한 곳은 동네를 벗어난 큰 찻길이었다. 나를 쫓아온 사람은 없었다. 아직까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지만 가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시내로 가는 버스에 무작정 올랐다. 버스는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뚫린 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창문이 열리자 세찬 바람이 얼굴에 부딪혔다. 내 얼굴을 강하게 때리는 바람과 함께 불안감도 조금씩 날아갔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곳은 서대문뿐이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엄마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어 물어 서대문 큰 도로에 다다라서, 지난번 엄마에게 왔을 때 형과 갔었던 오락실이 보였다. 여기서 어느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엄마가 사는 집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엄마가 있다고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엄마의 집을 찾아보았다. 기억을 되살려 걷고 또 걸었지만 집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큰길로 다시 나왔다. 아직까지 날이 밝았지만 불안감이 몰려왔다. 계속 걷기만 하면서 시간을 죽일 수는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앞에 파출소가 보였다.   

새시 문을 천천히 밀고 파출소에 들어서자마자, 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빠르게 닫혔다. 그 소리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들어온 나를 다시 밖으로 밀쳐낼 것 같았다. 파출소 안은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내 눈이 어떤 순경 아저씨와 마주쳤다. 나는 용기를 내서 서대문에 살고 있는 엄마를 찾아왔으며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했고, 나는 이문동에 사는데 하면서 안 해도 될 소리까지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댔다. 순경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며 두서없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주었다. 얘기가 오고 간 후, 아저씨는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서는 조금만 있으면 엄마가 올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금세 자리가 편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엄마가 수줍게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엄마는 순경 아저씨에게 연신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는 내 손을 잡고 파출소를 빠져나왔다. 어디론가 걸어가는 내내 엄마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오고 가는 차량들 소음에 묻혀서인지 불편함은 없었다. 엄마가 나를 중국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짜장면을 한 그릇을 시켰다. 잠시 후 짜장면이 낡은 나무 테이블에 올려지자 엄마가 코를 훌쩍거렸다. 그 소리가 내 고개를 숙이게 했다. 분홍색 가재 수건은 계속해서 엄마의 코와 눈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나는 말없이 짜장면을 입에 넣었다. 잠시 후 내 두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나는 표나지 않게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엄마가 엽차를 내 쪽으로 밀었다. 엄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였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나도 모르게 벌어지려는 입을 침 삼키며 닫았다. 엄마의 코가 빨갛게 달아 올라 있었다. 중국집을 나와 엄마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를 거닐었다. 엄마가 사준 짜장면은 맛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꿈을 꿨나 보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사방이 어두워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형광등을 켜자 하얀 불빛에 눈이 부셨다. 바닥에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싱크대로 가서 수돗물을 들이켰다. 갈증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머리 위로 수돗물을 흘려보냈다. 물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소름이 돋았다. 소름은 팔목에서 시작되어 양쪽 어깨를 따라 목 위로 올라왔다. 차가운 물이 정수리를 지나 양쪽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마부터 머리 끝까지 깨질 듯 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은 조금 전과는 다른 통증이었다. 머리가 얼고 있는 듯했다. 아픈 머리를 차가움이 덮었다. 그 차가움은 나에게 어떤 생각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 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콧등을 타고 떨어지는 물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눈물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수돗물을 잠갔다. 빈 집이라 수건이 없었다. 나는 양쪽 손을 번갈아 움직이며 머리의 물기를 털어냈다. 그리고 덩그러니 버려진 침대로 가서 누웠다. 조금 아픔이 가신 듯했으나 차가움이 사라지자 머리가 다시 아파왔다. 내 두 발 너머 보이는 창문으로 동이 트고 있었다. 방 안 가득 채우고 있는 냉기가 온몸에 전해졌다. 나는 돌아 누워 몸을 웅크렸다.     


1990년 가을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준우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어제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을 만났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울예고 무용과 2학년인데, 오늘 그 아이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한 시까지 독서실 앞에서 보자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가만히 소파에 앉았다. 내 마음속으로 쓸쓸함 비슷한 게 밀려왔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기분은 허전함 같은 거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올라오는 불편한 마음을 쉽게 떨쳐내기 힘들었다. 내가 지금 준우를 부러워하고 있음을 그 기분이 알게 해 주었다. 나를 초대한 준우가 고마웠지만 나는 뭔가를 걱정하고 있었다. 또 그 걱정이라는 것이 내 시기심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옳지 않은 생각임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쉽사리 잠재울 수 없었다. 분명 이렇게 올라오는 생각은 내 의지와 별개였다.   

준우는 1,2등까지는 아니었지만 10등 안에 드는 모범생이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다방면으로 상식이 풍부했다. 소설을 좋아했으며 연애편지를 비롯 글쓰기에 소질을 보여 나는 준우로부터 가끔 도움을 받았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지만 늘 170이라고 주장하며 키에 대해서는 약간의 민감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준우에게 키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글솜씨만큼 말솜씨 또한 뛰어나고 잘생긴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기에 그 부분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준우의 진한 눈썹과 쌍꺼풀 없는 눈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른 때와 달리 기분은 이상했지만 한편으로 내 마음도 설렜다. 꽤 까다로운 준우가 그렇게 호들갑 떨며 말했다는 사실이 뭔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그 아이가 궁금했다. 괜찮은 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준우에 비해 외모나 말솜씨가 부족해 미팅이나 이런저런 만남에 있어서 모든 인기를 준우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여러 번 자격지심 비슷한 것을 느꼈지만 그런 생각은 오히려 나를 더욱 초라하게 몰아갔다. 한두 번은 부러움이라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기심으로 변해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 시기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늘만은 나도 멋있게 보이고 싶었다. 얼마 전 구입한 청바지와 분홍색 남방을 입고 집안 구석구석을 서성였다. 약속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있었지만 더 이상 집에 있기 힘들었다. 나는 집을 나섰다. 내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흥분 되었다. 발걸음 또한 가벼웠지만 그 가벼움 속에는 분명 불편함도 같이 있었다. 나는 내 부족함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이런 내가 싫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몰려오는 생각을 인위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시기심은 내가 간절히 원하는 부분이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마음과 달리 내 코 끝을 스쳐가는 바람이 상쾌했다.   


일요일 낮이라 독서실 주변이 조용했다. 준우는 그 아이가 이 근처에 산다고 하며 독서실 주차장에서 먼저 만나자 했다. 그 아이의 집이 내가 다니는 독서실에서 가깝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마음을 안정시키려 주차장을 이리저리 걷고 있을 때 입구로 들어서는 준우의 모습이 보였다.  

“승준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준우가 나를 불렀다. 다른 때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성큼성큼 내 앞으로 걸어왔다. 물 빠진 청바지에 하얀색 폴로셔츠를 입은 준우의 모습이 깨끗해 보였다. 구릿빛 얼굴을 하얀 셔츠가 단정하게 정리해 준 듯, 준우의 얼굴이 침착해 보였다.  

“담배 있냐?” 입가에 손을 갖다 대며 준우가 물었다.  

담배가 없었다. 나 역시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담배는 그 아이를 만난 다음에 피우고 싶었다.   

“그래? 이따 피우지 뭐. 그럼, 우리 한번 가볼까?” 하며 준우가 내 어깨에 힘껏 팔을 올렸다.   

준우는 신나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우리는 그 아이에 대해 얘기하며 나란히 걸었다. 얼마 못 가 작은 슈퍼 앞에 멈춰 섰다. 준우는 대각선으로 보이는 빌라가 그 아이가 사는 집이라고 했다. 복층구조로 된 청담동에서 꽤 유명한 빌라였다. 개인 정원 같은 녹지와 빨간 벽돌로 마감된 건물이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 다르게 운치 있었다.   

준우의 얘기를 듣고 있을 때, 진흥빌라를 등지고 한 여자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작지 않은 키에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예뻤다. 나는 잠시 정신이 팔려 준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순간 나는 그녀가 준우의 여자 친구가 아니기를 바랐다. 만약 그녀가 여자 친구라면 더욱 초라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조했다.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던 불편함은 어느새 내 마음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빠.” 하며 그녀가 준우를 불렀다. 나는 깜짝 놀라 몸 둘 바를 몰랐다.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어. 은경아.” 그녀를 등지고 서있던 준우가 고개를 돌려 답했다.   

“어제 별 일 없었어?”  

“무슨 일이요?”  

“어제 무용학원 안 갔잖아.”  

“아, 그거……괜찮아요, 선생님에게 적당히 둘러 댔어요.” 하며 그녀가 멀뚱히 서있는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당황한 나는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몰랐지만 태연한 척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내 팔과  두 다리가 경직되어 있음을 느꼈다. 온몸으로 어색함이 퍼져나갔다.  

“참, 인사해. 얘가 내가 말한 승준이야.” 내 불편함을 눈치챘는지 준우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빠, 안녕하세요.”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빠’ 소리가 듣기 좋았다.  

“네……에, 안녕하세요?” 나는 ‘오빠’ 소리에 잠시 넋을 잃고 있다 얼떨결에 인사했다.   

“여기는 서승준이고 이쪽은 김은경. 그리고 나는 이준우. 하하하.” 준우가 어색함을 이기려는 듯 약간의 농담을 섞어 나를 소개했다. 준우가 주선자가 되어 그녀를 나에게 소개해 주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준우가 부러웠다. 그 점이 늘 힘들었지만 나는 다른 쪽으로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우리를 태운 택시는 압구정동을 향해 달렸다. 도로에 차들이 별로 없었다. 택시는 넓은 길을 막힘 없이 달렸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길게 뻗어 있는 도로를 바라보았다. 반쯤 열려 있는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더위를 머금은 바람이었지만 시원함을 느끼기 부족하지 않았다. 뒷자리에서 둘이 주고받는 얘기가 바람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나는 애써 못 듣는 척 차창 밖을 바라보았지만 둘의 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 마음속에는 분명 부러움과 초라함이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과 함께 그것들이 날아가기를 바랐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내 몸과 마음에 젖어드는 부정적인 생각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것이었다. 가끔씩 내 마음과 다르게 떠오르는 생각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각인하곤 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드는 생각 때문에 자신을 경멸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만드는 것이란 사실을 이해해야 했다. 나를 미워할 수만은 없는 문제였다. 생각의 근원은 나였고, 바로 내 자신이었다.   


우리는 자주 미팅 장소로 이용했던 야간비행이라는 카페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하에 위치했지만 분위기가 편안했다. 준우가 커피 세 잔과 담배 한 갑을 주문했다.   

어제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났다고 했지만 둘은 많이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둘 사이에 어색하게 껴서 말 붙이기가 힘들었다. 그 어색함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커피잔만 올렸다 내렸다 했다. 혼자 대화에 끼지 못하고 혼자만의 썰렁함에 냉기가 흐르고 있을 무렵 그 아이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나에게 물었다.  

“오빠는 어디 사세요?”   

“예? 저는 집이 논현동이에요.” 나는 고마움을 느끼며 답했다.  

“어, 저도 논현동 살았는데요……”  

“아, 그러세요?” 뜻밖의 반가움에 내가 말했다.  

“야! 무슨 존댓말이냐? 서로 말 놔. 불편하잖아.” 준우가 볼멘소리를 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요, 승준 오빠 우리말 놔요.” 하며 그 아이가 내 쑥스러움을 정리해 주려는 듯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 시선이 그 아이의 손가락에 멈췄다. 하얀 손이 길고 예뻤다.  

“어……그래.” 하며 머뭇거리다가 은경이의 가냘픈 손을 어색하게 잡았다. 따듯했다. 부드러운 손이 한순간 나의 초라함을 잊게 해주었다. 얼굴이 뜨거웠다.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음 느꼈다. 나는 어색하지 않게 그녀의 손을 놓았다. 담배를 물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작은 성냥갑을 집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잠시 후, 백열등을 향해 구불구불 올라가는 푸른빛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길게 이어진 고운 연기는 백열전구를 덮고 있는 노란색 갓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다시 한번 깊게 담배 연기를 들이켰다.


하얀 피부에 긴 생머리를 한 은경이의 얼굴이 여고생다워 보였다. 내가 동경하던 예쁜 얼굴과 비슷했다. 대화 내내 은경이는 내가 소외되지 않도록 나를 배려했다. 싱거운 내 얘기에 미소를 보였고, 템포와 리듬감을 잃고 가라앉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 쑥스러움에 오랫동안 은경이를 쳐다보기 힘들었지만, 내 눈에 잠시 머물다 간 은경이의 얼굴은 참 예뻤다. 나는 자꾸만 그녀 모습에 빠져 들었다. 아무런 이유도, 어떤 바람도 없이 내 앞에 앉아 있는 은경이를 바라보고 있는 순간이 나를 나답지 않게 했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나는 둘 만의 시간을 위해 자리를 피해 주기로 했다. 아니, 둘이 아니라 나를 위해 일어나기로 했다.   

“나, 다른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갈게.” 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에게 약속이란 없었지만 은경이에게 내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오빠 벌써 가게요?” 아쉬운 듯 은경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나답지 않은 말을 다시 내뱉었다.  

“미안, 둘이서 재미있게 놀아.”   

“알았어 인마.” 준우가 손을 들었다.  

“다음에 보자, 은경아.”   

“네. 좋아요, 오빠” 은경이의 투명한 피부가 백열전구 빛을 받아 더욱 고아 보였다.  

“저녁에 놀이터에서 보자.”   

놀이터는 준우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지트였다. 방과 후 독서실 밖에 갈 곳 없는 우린 그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담배를 피웠다. 그 맛도, 왜 피우는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담배는 어쩌면 어른에 대한 동경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우고 재미난 일을 기다렸다. 늘 보는 얼굴, 늘 같은 일상, 새로울 것 없는 날의 연속이었지만 우리는 항상 뭔가를 기다리곤 했다. 신나는 일이 생기기를 바라곤 했다.


밝은 햇살에 눈이 부셨다. 아직까지 밖이 이렇게 환할 것이라고는 미쳐 생각 못했다. 마음 한구석 허전함을 떨칠 수 없었지만 따뜻한 일요일 오후가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집에 가기 싫었다. 딱히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몰랐지만 나는 무작정 집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걸었다. 학력고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어 지금 독서실을 가든 안 가든 별 의미가 없었다. 또 이렇게 화창한 날 답답한 독서실에 처박혀 있을 걸 생각하니 그 시간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발걸음 닿는 대로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지만 내 발걸음이 멈추는 곳이 목적지였다. 나는 성수대교 사거리를 지나 압구정 역을 향해 걸었다. 밝은 햇살은 계속해서 내가 걸어가는 거리를 비춰 주었다.  


은경이와 준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로를 마주하고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준우였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쓴웃음 지으며 생각을 접었다. 먼 하늘 위로 솜털 같은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준우는 좋은 친구다. 음악에 빠져 청계천에서 레코드 판 밖에 살 줄 몰랐던 나에게 친구가 되어줬다. 언젠가 준우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준우를 떠올렸다. 항상 자신감 넘치고 잘생긴 준우를 닮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허점을 보이기도 하고 자기 자만에 빠져 욕먹을 행동도 했지만 난 준우가 좋았다. 내 눈에 비친 준우는 장점이 많은 아이였고 무엇보다 나에게 친절했다.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어느 장막 속에 갇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친구가 준우였다. 내 모습을 새롭게 발견해 준 것 역시 준우였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여드름이 한두 개씩, 그리고 목소리마저 두꺼워지면서 밝았던 외모와 마음은 여드름과 함께 어둠 속에 갇혀 버렸다. 그 이후로 준우를 만나기까지, 나는 나만의 그늘 속에서 음악만을 위안 삼아 홀로 시간을 보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친구들과 시내로 영화를 보러 가는 게 ,  그 당시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홀로 버스를 타고 청계천으로 가서 음반을 샀다. 그리고 방안에 혼자 틀어박혀 새벽이 올 때까지 음악을 들었다. 사춘기를 잘 넘겨 오기는 했지만, 나는 그 전과 다르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고, 버스에서 내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소심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교정을 내려가는데, 문득 내 곁에 아무도 없음을 느꼈다. 어울리지 않고 음악에 빠져 홀로 지내는 동안 친구들이 모두 떠나갔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혼자 교정을 내려가는 것이 창피해 남은 고1 몇 달 동안은 늘 남아서 청소를 했다. 그게 아니면 무슨 급한 일이 있는 척 교정을 전속력으로 달려 내려가곤 했었다. 고2가 되어서 만난 친구가 준우였다. 같은 반이었던 준우와 친해진 건 사소한 말다툼 때문이었고, 그 이후로 준우와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준우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털어놓은 첫 번째 친구였다. 내 얘기를 들어준 후, 준우는 더욱 더 나를 존중해 주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고마움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였다. 오랜 시간을 걸어와 허기가 졌다. 나는 ‘이모네’라고 쓰여있는 분식집에서 만둣국을 먹고 지하상가 여기저기를 배회했다. 일요일 늦은 오후라 지하상가 내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사람들과 섞여 바쁜 듯 움직였지만 사실 난, 시간적으로 여유로웠다. 나는 지하상가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가람 문고로 들어갔다.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서점 특유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언젠가 맡아보았던 그 냄새가 잠시 추억을 상기시킬 듯 말 듯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은 채 허공으로 사라졌다. 한가람 문고는 시내 대형 서점에 비해 그리 규모가 크지 않지만 일대에서 제일 큰 서점이었다. 종로에 있는 대형 서점 못지않게 다양한 책이 전시돼 있었다. 책을 가까이했던 성격이 못 돼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 몰랐지만, 나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내 방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나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수많은 책 중에 그런 책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어디서부터 둘러봐야 할지 몰랐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소설 코너나 에세이 코너에서 한 두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이 책 저 책을 들었다 놨다 했다.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또다시 소설 가판대에서 이 책, 저 책 기웃거리고 있을 때 ‘별’이라고 쓰여있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언제인가 국어책에 수록되어 공부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갑자기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무감이나 공부를 떠나 순전히 소설로서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양쪽으로 음식점이 즐비한 지하상가 길을 지나 얼마 못 가, 작은 분수대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비닐봉지에서 책을 꺼내 ‘별’이라고 쓰인 페이지를 찾아 읽어 내려갔다. 인적 없는 곳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생활하는 목동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목동이 느꼈었을 외로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목동의 그것이 같아 보였다. 나는 어떤 외로움 때문에 사랑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성 친구를 통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잠시나마 나도 끝없이 펼쳐진 초록 들판 어딘가에 있었다. 드넓은 들판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어김없이 어둠이 내려오면 내 몸도 마음도 그 어둠에 동요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책을 덮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했다. 책을 비닐봉지에 넣으며 자리를 일어났다. 도로를 달리는 버스며 택시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운행해야 할 만큼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바지 주머니 속에 한 손을 넣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어두운 도심, 인도 한복판 위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어지러운 불빛만이 내 몸을 감쌀 뿐, 별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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