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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Jul 12. 2019

마흔, 나를 위해 펜을 들다

프롤로그, 마음을 정화하는 글쓰기

 둥지를 잃은 한 마리 새처럼 낯선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옆구리에 두꺼운 봉투를 하나 끼고서 어딘가 있을 신문사를 찾아 떠돌았습니다. 누런 봉투 위에 집사람이 써준 단정한 글쓰기 눈에 들어왔습니다. 집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사람의 글씨가 그녀의 눈물로 보였습니다. 누군가 먼저 올려놓은 돌탑 같은 응모작들 위에 '중앙 장편문학상 응모작품'이라고 쓰인 저의 소설을 올려놓았습니다. 신문사를 빠져나왔지만 특별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가슴 한구석에서 먹먹함이 올라왔습니다. 바람에 떠밀려 어디론가 떠가고 싶었습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당차게 회사를 나왔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소설이 아니었나 봅니다. 상실감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 자신과 타협했습니다. 천재가 아닌 이상, 단 한 번에 쓸 수 없다고 위로했습니다. 소설의 제목은 '별'이었습니다. 비록 세상의 빛을 보진 못했지만 저에게는 소중합니다. 까만 하늘 빛나는 별처럼, 저 또한 빛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고 싶습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온종일 뭔가에 홀린 듯 썼던 소설은 내 안에 알 수 없는 간절함이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어떤 마음에 이끌려 쓸 수밖에 없었던 글이었습니다. 글로써 부족했지만 적지 않은 분량을 쓴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쓸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 일이었으니까요.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기쁨은 잠시였고, 저는 비문 오문 가득한 글을 손봐야 했습니다. 아직 글이라 말할 수 없어서 수없이 고쳐야만 했습니다. 초고, 퇴고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저는 또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홀로 걷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능력의 한계를 느끼곤 했지만 조금씩 깨끗함을 찾은 글이 저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묵묵히 고쳤습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썼지만 힘들지 않았습니다. 뭔가를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시킨 일은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따라 움직인 시간이었습니다. 결코 헛되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는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즐거움이 있었거든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다듬었습니다. 쓰는 것만이 글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글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소설은 저의 눈과 마음을 만족시켰습니다. 미흡했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글을 보며 마음을 다졌습니다. 어떤 확신도 없이 매달렸지만 행복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숨어서 쓰는 시간이 싫었습니다. 당당해지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소설 하나를 가슴에 품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겁이 났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세상은 냉정했고 이내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쓴 소설은 세상을 아픔으로 새겼습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았습니다. 경력이 있어서 이직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초조함이 밀려올 때마다 글을 쓰면서 버텼습니다.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쓸 수밖에 없었고, 아침이면 출근하는 사람처럼 노트북 하나를 가방에 넣고 커피숍과 도서관을 전전했습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글을 썼습니다. 글이 없었다면 지난한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쓸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현실을 잊기 위해 고개 숙여 쓸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정신은 더 이상 피폐해지지 않았습니다.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무의미한 삶을 살았습니다. 글쓰기를 몰랐다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남들처럼 특출난 재능은 없었지만 내 안의 소리를 그대로 적는 것을 즐깁니다. 그것이 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누군가의 가슴에 닿을 글이 말입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솔직히 잘 쓰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멋진 사람이란 멋진 아빠, 멋진 남편입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입니다. '내 안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라고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이 책을 구상하고 집필하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머릿속에 든 생각을 꺼내 키보드로 두드리면 그것이 글이 되었고, 지금의 결과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전업 작가도 글쓰기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10년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불과 10개월 만에 완성해낸 책이 맞지만, 사실 10년 이상에 걸쳐 쓴 글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결코 쓸 수 없었을 테니까요. 오랜 시간 홀로 글을 쓰면서 알게 모르게 만들어진  경험이 있었기에 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짧은 시간 글을 썼다는 것에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지만  출간을 위해 계약서를 쓰고 다시 원고를 다듬으면서 들게 된 생각입니다. 어렵지 않게 빠르게 쓰였지만, 수많은 아픔과 좌절의 결과가 바로 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특출난 재능은 없지만 제가 아는 것을 썼습니다. 마음과 몸이 느낀 것을 적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책은 오랜 시간 글을 쓰면서 느끼고 터득한 글쓰기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밝힌 것처럼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들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남아있었기에 그것을 꺼내 적었습니다. 즐겁게 쓴 저의 글쓰기가 이 책에 모두 담겨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제가 의지할 곳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생각을 따라 적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기댈 곳은 내면밖에 없었으니까요. 저는 그저 내면이 주는 소리를 소중히 적어보았습니다.


글쓰기는 내면으로 들어가는 열쇠이고, 이 책은 제가 찾아낸 열쇠인 셈입니다. 그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과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 적혀있습니다. 누군가 이 책의 여정을 좇다 보면 자신만의 또 다른 여정을 찾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진심을 여기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것이지만 사실 글쓰기에 대해 알려주는 책은 아닙니다. 그와는 다르게 누구나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떠올려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쓰고자 하는 마음의 씨앗을 심어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시대가 변했습니다. 요즘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때입니다. 하지만 글쓰기가 어려워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많습니다. 당연합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오랜 교육의 시간 동안, 글쓰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배웠습니다. 즐거운 글쓰기가 아니라 괴로운 글쓰기를 배운 게 문제입니다. 글쓰기가 즐거운 일이라고 알려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책의 중심 줄기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입니다. 익히 알고 있는 어려운 글쓰기가 아니라 즐거운 글쓰기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쓰는 과정을 통해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저의 경험이 여기에 녹아있습니다. 쓰느 순간을 즐기지 못하면 오랜 시간 글쓰기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과정 안에 상상할 수 없는 만족이 있기에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누구나 '글쓰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라는 명제를 몸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에는 자발적으로 펜을 들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오로지 목적은 하나입니다. '누구나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불과 20년 전만 해도 글쓰기는 우리네 삶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서 잠시 글쓰기와 멀어진 것일 뿐, 언제나 우리 가슴 안에는 '글쓰기 욕망'이 숨 쉬고 있습니다. 누구나 과거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고, 그리움의 대상은 모두 과였습니다. 글쓰기를 통하면 그 무엇보다 쉽고 빠르게  과거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쉽게 글쓰기를 일상으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욕망의 불씨는 타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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