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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Jun 11. 2018

내가 기억하는 형 4

저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형 덕분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팝송을 들었습니다. 그냥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모았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하는 수준이었지만, 소유의 기쁨을 만끽하기에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도 우리 집에는 전축이 없었습니다. 물론 집집마다 전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음악에 대한 형의 열정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있어야만 했죠. 아버지는 뽕짝밖에 몰랐기에 전축 같은 전자기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형편을 떠나서 그 점이 아쉬웠습니다. 형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아버지를 졸라 구입한 삼성 컴포넌트가 있었지만 미련을 버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형도 그렇고 저 역시 머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으니까요.


팝송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형은 어쩔 수 없이 LP가 아닌 테이프를 구입했습니다. 퀸, 듀란듀란, 폴리스, 컬처 클럽, 록웰, 가제보, 보니 테일러, 가자 구구, 라이오닐 리치, 유리스 믹스, 홀 앤 오츠, 마돈나, FR 데이비드, 신디 로퍼 그리고 마이클 잭슨. 형은 지구, 오아시스, 성음, 예음 레코드에서 발매하는 다양한 앨범을 끊임없이 사 모았습니다. 비록 테이프일지라도 말입니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궁금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쌓여 가는 형의 수집품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물론 듣는 재미도 있었죠.


1980년대는 음악 감상이 몇 안 되는 취미거리 중에 하나였습니다. 취미를 물어보면 너도나도 음악 감상을 얘기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가요보다 팝송을 듣는 사람이 많았던 시기였죠. 그때는 지금과 달리 팝송이 꽤 인기가 많았습니다. 텔레비전의 단골 CF 역시 오디오였습니다. 세탁기나 냉장고만큼 흔히 볼 수 광고가 고가의 전축이었을 정도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음악을 듣고 사모았던 시절입니다.


인켈과 태광은 오디오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지만 삼성이나 금성에 비견될 정도로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아남전자 역시 한몫 거들었죠.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생각나는 광고가 있네요. 아남전자의 '홀리데이’라는 제품입니다. 가수 김수철 씨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검은 LP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 CF 였는데 오디오만큼이나 획기적인 광고였죠. 제품 역시 국내 최초로 프런트 로딩 턴테이블 방식을 채택한 상품이었습니다. 매우 탐나는 오디오였지만 쉽게 꿈꿀 수 없는 꿈같은 오디오였습니다.


형은 애초부터 삼성 컴포넌트가 아니라 전축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저야 형 때문에 음악을 듣게 되었지만 형은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음악을 찾아들었죠. 저처럼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홀로 찾은 겁니다. 그런 형이 테이프밖에 듣지 못하는 컴포넌트에 만족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컴포넌트 역시 중학생 신분인 형에게 귀한 선물이었지만 그 시간이 오래갈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리다는 이유로 컴포넌트를 사주었지만 형의 마음 잡아주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컴포넌트 역시 고가의 제품이었지만 거기엔 하나가 빠져있었던 거죠. 형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그것이 말입니다.


형은 일요일 두 시면 어김없이 컴포넌트 앞에 앉아서 김광한의 골든 팝스를 들었습니다. 같은 시간 때, 옆 방송국에서는 김기덕 씨가 진행하는 두 시의 데이트도 있었지만, 형은 골든 팝스를 들었습니다. 빌보드 차트 위주로 비슷비슷한 노래가 선곡돼 나왔지만 녹음을 위해서는 골든 팝스가 최적이었죠. 그 이유는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완벽한 녹음의 관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잡음도 없이, 오로지 노래만을 녹음을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DJ의 숨소리마저 배제하고 오직 원음 그대로의 소리를 녹음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일요일 두 시는 형에게 있어, 음악을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음악을 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DJ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시점과 노랫소리가 서서히 작아지면서 DJ의 목소리가 다시 나오려는 시간은 형에게 있어 매우 예민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만은 절대로 형에게 말을 붙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숱하게 녹음을 해본 저 역시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노래 외 어떤 소리라도 들어가는 순간, 그 노래는 가차 없이 버려집니다. 순도가 낮아지기 때문이죠. 언제 또 기회가 찾아올지 알 수 없기에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원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한들 늘 공테이프가 준비돼 있는 것도 아니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순간입니다.


녹음을 하는 형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힘들어진 때가 있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던 팝송 테이프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죠. 고등학생이 되어 그런가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 역시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동안 늘지 않던 팝송 테이프 옆에 LP 한 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그 유명한 앨범이 말입니다. 턴테이블 하나 없는 형의 방에, 커다랗고 반짝반짝 빛나는 LP가 어색하게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죠.


날이 갈수록 팝송 테이프 대신 LP로 된 앨범이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마돈나, 컬처클럽, 듀란듀란, 홀 앤  오츠, 가제보의 또 다른 앨범들이 말이죠. 한동안 저는 의아한 눈빛으로 형의 바뀐 소장품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형은 일종의 시위를 하고 있는 거였습니다.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죠. 전축을 사달라고 말입니다. 먼저 저질러 본 겁니다. 얻어내든 아니든 어차피 듣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기에, 일단 저질러 보자는 마음이었겠죠. 손해 볼 장사는 아니었으니까요.


결국 아버지는 백기를 들고 말았습니다. 어느 토요일, 늘 바쁘기만 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집으로 와서는 형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어스름 날이 저물 무렵 형이 들어왔습니다. 그때가 1985년도 5월쯤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며칠이 지난 후, 형 책상 바로 옆에 4단 은색 전축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태광 에로이카의 전축이 말입니다.


형은 원하는 것이 생기면 가져야 했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먹어야 했죠.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참을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죠. 원래 태생 자체가 그런 성향으로 태어난 겁니다. 저는 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가지고 싶은 것은 가져야 직성이 풀리니까요. 형은 가질 수 있다면, 무리가 아니라면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스피커를 통해 홀 앤 오츠의 Out of Touch가 흘러나옵니다. 그 당시 형 때문에 알게 된 음악이죠. 아마도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전축이 도착했던 날 밤, 형은 이 노래를 처음으로 틀었을 겁니다. 제가 보는 앞에서 말이죠. 형은 조심히 판을 꺼내, 어떤 의식을 진행하는 사람처럼 검은 LP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죠. 그리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 위에 바늘을 내려놓았습니다. 소리골을 따라 우아하게 돌고 있는 검은색 판을 잠시 바라보고는  방바닥에 앉아 앨범 자켓을 감상했습니다. 형이 생각납니다. 노래가 잠시나마 저를 그 시절로 데려다주네요. 부족하지만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음악이 남아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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