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추억만으로 정말 괜찮을 수 있을까? / 스포 포함
지난 1월, 씨네랩 서포터즈 활동 일환으로 영화 <로봇 드림>의 블라인드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사전 검색을 통해 얻은 결과는 로봇, 의인화된 동물, 애니메이션, 무성영화가 전부였는데, 모두 평소 접하지 않는 생소한 소재이기 때문에, 영화관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로 인해 잠이 오면 어쩌지(......)와 같은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했던 고민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영화는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닿을 듯 안 닿을 듯 자꾸만 틀어지고 더 엇나가는 상황을 본다는 건 그만큼 힘을 쓰게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그 어디에도 사람이 존재하지는 않고, 심지어는 동물과 로봇이라는 타종족관의 관계 맺기이지만 저는 이 영화가 하나의 거대한 비유라고 느꼈습니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어쩔 수 없이 몸이 멀어져야 할 때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모두 우정이든 사랑이든 어떠한 관계에서 이러한 경험을 겪은 적 있을 것입니다. 처음 갈라졌을 때는 서로만을 떠올리며 다시 만날 일을 고대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서로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혹은 그 부재를 채우려고 의미 없는 일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만큼 우리를 채워주는 상대를 만났다고 착각하거나, 정말 그런 상대를 만나기도 하죠.
영화에서는 이러한 멀어짐의 과정을 '도그'와 '로봇'의 이야기로 보여줍니다. 충분한 연료 없이 물에 너무 많이 닿은 '로봇'은 고장이나 해변에서 꼼짝할 수 없게 되고 '도그'는 수리를 약속하며 떠납니다. 하지만 해변은 폐쇄되고 둘은 재회까지 긴 시간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 던져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자유로이 다닐 수 있고 '로봇'이 없는 시간을 다양하게 채우려고 노력하는 '도그'보다는 한 자리에서 막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로봇'에게 애처로움을 느꼈습니다. 제목 그대로인 <로봇 드림>처럼 '로봇'은 계속해서 '도그'와 머무는 집으로 향하는 꿈을 꿉니다. 바다에서 건너온 토끼들에게 도움을 받아 돌아가기도 하고, 에메랄드(=뉴욕) 시티로 향하는 노란 벽담길로 향하기도 합니다. 막연한 희망의 꿈을 꾸던 '로봇'은 소소한 성장을 지켜보기도 하고, 몸이 분해되는 고난을 겪다 새로운 친구에게 수리를 받고 새 삶을 살게 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결말 부분이었습니다. 둘이 결국 만나고 말 것이라는 제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듯이 이들의 결말은 각자를 추억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때 주제곡인 <September>에 맞춰 다른 곳에서 각자 춤을 추는 장면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영화 홍보 문구에서처럼, <라라랜드>와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리게 하는 주제 구성이 좋았습니다.
<로봇 드림>과 같은 영화를 보고 나면 제가 결국 뒤에 두고 가야 했던, 그리고 서로 어쩔 수 없이 멀리하게 된 옛 인연들이 생각이 납니다. 마냥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노래로서 추억하며 이별 속에서도 춤을 추는 '도그'와 '로봇'처럼 저도 제 나름대로 어떤 매개체를 통해 행복하게 추억하게 됐습니다. 오늘 밤은 그 사람들이, 그 물건들이, 그 장소들이 모두 더 안온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