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율의 마더 메이킹, 오정연의 미지의 우주를 중심으로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2016년 강남 묻지 마 살인 사건, 2020년 n번방 성 착취 사건 등 여성 인권을 재고하고 사회에 보호를 촉구하는 여러 젠더 관련 사건이 일어났다. 이와 더불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대대적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 등 페미니즘 대중화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그렇게 지금의 여성들은 차별이 아닌 평등을 주장하고, 더불어 사회에서 당연한 규율처럼 행해지던 관습적 여성 노동의 대대적인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양상은 여성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러한 시대적 전개 속에서 작가들은 저마다의 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의 악습을 따르지 않고자 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자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건 “82년생 김지영”이다. 이 소설에서는 여성 주인공이 결혼, 출산, 육아를 겪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겪는 사회 현상과 활동, 심적 고통이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해당 작품은 출간 이후 다수의 여성 독자 소비층에게 사회적 큰 반동을 일으켰다.
또한 2010년대 후반부터 출판계와 문학 장에서는 페미니즘 SF 장르가 눈에 띄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흐름에 발맞춰 한국의 SF 작가들은 단편집의 형태로 다양한 작품들을 출간했다. 특이한 지점은 SF 도서의 출판량 및 판매량 증가와, SF 여성 독자들의 호응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라딘에 의하면 SF 소설 독자 중 20대, 30대 여성 독자 비율은 10% 내외로 증가했다. 사실 한국 문단 내에서 SF 장르는 비주류 장르였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 대중적 장르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특히 여성 중심 서사 SF 소설이 특정 연도와 시기에 부각을 드러냈다는 점은, 결론적으로 페미니즘 SF는 “지금, 여기”를 시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SF 여성주의 서사가 왜 다양한 여성 작가에게 쓰여지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독자들에게 왜 효용 가치를 인정받았는가? SF는 기존과 다른 형태의 미래를 논의하거나 제시하기 좋은 장르의 특성이 있다. 심완선 SF 칼럼니스트는 ‘성차별 철폐의 역사와 SF 문학사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는 ‘SF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세계를 바꾸는 장르’이고, ‘성별과 사회구조는 변화를 말하는 데서 중요한 주제’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소설 작품들은 우리가 상상이 충분히 가능한 미래의 소재를 바탕으로, 변화된 사회 모습을 그려내며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일지 재고하게 한다. 더불어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삶의 조건은 크게 개선되었고, 우리는 이에 관한 윤리적 이슈를 자연스럽게 성찰하게 된다. 즉, 기술과 과학이 우리 삶에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상호작용됨에 따라, 현존하는 사회적 문제를 SF의 장르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사유하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급진적으로 흘러가는 현재에 있어서 SF는 실로 여성의 미래를 이야기하기에 알맞은 장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에 응답하듯이 문학 연구 부분에서도 여성, 페미니즘 SF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담론이 어떤 사회적 맥락으로 소설 내부에 적극 개입되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현재 한국 페미니즘 SF가 문화적인 동시에 사회적 논의와 기여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고 보고, 텍스트와 얽힌 한국 사회의 단면을 함께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본고에서는 여성 SF에 주목하면서도 현대 사회 관습적 젠더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적용이 되는 여성 노동 문제를 다루는 소설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여성의 대다수가 선험적으로, 혹은 직접 겪게 되는 ‘엄마’라는 보편적 젠더 개념은 여성에게 폭력적으로 행해지는 여성 노동과 결을 함께 한다. 그런 점에서 연구 대상으로 선정한 텍스트는 김하율의 「마더 메이킹」과 오정연의 「미지의 우주」다. 이 두 편의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두 작품은 SF 장르 특성을 운용하며 페미니즘의 흐름 상에서 파생된 주요 이슈, 그중 출산과 양육이라는 부분을 통해 여성 노동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유의미하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어쩔 수 없이 과학적 기술이 담긴 약물로 모성과 엄마 되기를 탑재하게 되는 <마더 메이킹>과,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직접 엄마 되기를 선택하고 모성을 발현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미지의 우주>라는 두 대립적 서사와 작품 내 세계관의 사회 구성으로 한국 여성 SF 내 여성 노동의 현재를 자세히 탐구하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하율의 「마더 메이킹」에서는 여성이 신체적 특성으로 사회에서 억압받고 차별을 당하는 구조를 뒤집어 남성이 소외된 존재의 자리에 놓이게 되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선천적 생물학적 특성을 뒤집는다는 SF의 특성으로, 우리 사회의 내포된 젠더 격차를 확연히 드러내는 서사 효과를 지니게 된다. 그 동시에 여성이라는 젠더에 꼬리표처럼 붙은 차별과 혐오를 느끼게 되며, 단순히 거꾸로 뒤집는다는 것으로 어떠한 폭력적 사태가 ‘지금, 여기’에 벌어지고 있는지 말한다.
오정연의 「미지의 우주」에서는 화성 테라포밍을 이룩할 정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정상성에서 탈락되어 특수 가정이라고 명명된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워지는 여성이라는 틀 안에서 여성의 삶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건조한 톤으로 쓰여,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달라지지 않은 견고한 사회적 폭력을 이야기한다. 이는 비단 소설 내부 캐릭터의 갈등 상황이 아닌, 현시대의 워킹맘이자 싱글맘인 여성들에게 부여되는 젠더적 폭력성 또한 드러나게 된다.
위 텍스트들의 공통적인 시사점은 개인과 사회의 결합이다. 구체적인 인물의 한계 조건과 발달 과학기술의 인위적 현상을 통해 전체를 드러냄으로써 의미 지평을 한없이 확대시킨다. 본 연구에서는 위의 내용을 자세히 서술하며, 해당 작품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드러내는지 면밀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구조적인 갈등과 혐오가 담긴 사회의 단면을 진단하는 작품 내 정치적 사유를 분석한다.
국립국어원 표준 대국어 사전에 의하면 모성은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을 의미한다. 이러한 본능이라는 표현은 모든 것을 다 제치고서라도 당연히 우선순위에 두고 응당 그 몫을 다 해야 할 하나의 강제로 이어진다. 사회는 모성을 본능이라고 일컬으며 차별적 인식으로 육아 노동을 강요하게 된다. 특히 사회와 문화 전반의 인식에 있어서 모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아이가 모체에서 열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머물다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모성을 본능 자체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이러한 ‘모성’이라는 것에 대한 언어적 의미 규정은 김하율의 「마더 메이킹」에서도 드러난다. 소설에서 기술자 ‘밥’은 ‘새끼같이 연약한 것을 연민하고 보호하려는 헌신과 인내를 의미하고 여성만의 소유물은 아니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모성 호르몬 생산 제작에 돌입한다. 그리고 모성의 성분은 작품 내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되며, ‘밥’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원초적 본능에 가까운 강렬한 ‘마더 메이킹’을 완성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걸 주입하게 될 대상은 여자들이지.”
“모성을 말입니까?”
“너무 관념적으로 생각할 거 없어. 상상해 봐. 이 감정 호르몬제를 맞게 되면 말이야. 자신의 아이를 끔찍하게 위하면서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수 있는 헌신이 준비 태세에 있고, 인내심이 강철처럼 강해지며, 아이를 물심양면으로 보호하고 키우게끔 양육자들, 그러니까 여자들을 조종하게 되지. 어떤가, 레시피가 머릿속에 막 떠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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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옥시토신 소금과 프로락틴 후추를 살짝 가미하고 도파민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짜잔! 강력한 모성 호르몬제 완성이요.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만들어진 모성』에서 모성을 근대적 역사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가부장적 가치와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강조되며, 여성의 삶을 가정이라는 틀 안으로 제한했다는 것이다. 남성이 사회적 직업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가정이라는 안식처를 꾸리는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관습적 가족상은 이때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성’으로 여성에게만 양육이라는 노동의 짐이 지워진 것이다.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듯 ‘밥’은 임상 실험자로 자신의 아내 ‘리’에게 모성 호르몬을 주입하려고 한다. 이는 여전히 양육이라는 돌봄노동과 집안일 가사노동은 여성만의 노동으로 치부되는 경향을 드러내는 서사다. 실제로 ‘성인지 통계로 보는 서울 청년의 일과 삶’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 양육 맞벌이 부부에게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하루 평균 가사노동 2.3배, 돌봄 시간 1.6배 길었다. 가사 분담에 대한 인식에서도 ‘아내가 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은 여성 10.7%, 남성 18.1%와 같은 결과를 보였다. 또한 여성의 취업률은 73.4%로 남성보다 22.1% 낮았으며, 비취업률 그리고 휴가를 비롯한 일시휴직률은 여성이 4.3%의 남성보다 18% 높았다. 이는 여성이 출산과 양육으로 경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 평균 연령을 기점으로 일·생활 양립과 관련한 직장 만족도는 여성은 점차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남성은 30대에서 잠시 하락했다가 40대에서 다시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즉,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이 높아진 상황에도 인식이나 제도적인 면에서 대대적 변화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 대상군인 사회진출 여성은 커리어를 통한 성취와 아이를 완벽하게 잘 돌보는 이상적 어머니상 사이의 큰 괴리와 좌절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이상적 어머니상에 대한 비난과 예찬의 교차로 규율과 통제성은 더더욱 커진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현대사회 여성들은 떠맡게 된 어머니로서의 노동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스스로 내면화하며 주체성을 잃게 된다. 시대가 지나도 성별 분업과 사회구조가 유사한 세태로 유지되고 대물림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작품 속 등장하는 여성인 ‘리’도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
아내는 출산 후 머리카락이 속수무책으로 빠지고 붓기는 빠지기도 전에 살이 되어버리고 늘어난 뱃가죽을 가로지르는 거뭇한 임신선과 튼살의 흔적들을 보며 절망했다. 그중 가장 괴로워한 것은 바로 ‘모성’이라 불리는 감정이었다.
“난 모성이 없는 거 같아."
어느 날 아내가 고해성사를 하듯 말했다.
“아기가 안 예쁜 건 아니지만 솔직히 버거운 적이 더 많고, 축복이라 생각하지만 짐이라고 생각한 적이 더 많아. 이거, 정상 아니지? 엄마라면, 모성이 있다면 애가 예뻐 죽고 본능적으로 피가 막 땡기고 그래야 하는 거잖아. 그치?”
출산 휴가를 끝내고 복귀했을 때 리는 자신이 일과 아이, 어느 하나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킴은 모성 때문이냐고 물었고, 리는 성격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표를 제출했을 때 킴은 잡지 않았다. 그후 밥과 리 두 사람은 의도적으로 회사의 이야기를 저녁 식탁에 화제로 올리지 않았다. 회사에서 리의 야기를 암묵적으로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엿다. 넘버원으로서 리의 존재는 그렇게 사라졌다.
“마더 메이킹이 아니라 메이드 메이킹 같은데.”
‘리’는 ‘밥’과 같은 회사에서 유망한 직장인이었지만, 결혼 후 출산으로 ‘엄마’가 되었다. 본인이 하던 일에 몰두하던 ‘리’에게 이것은 재앙이었다. ‘리’에게 있어 엄마란 ‘24시간 근무에 야근수당은커녕 연봉 협상은 안 되고 경력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닌’ 3D 직업이었다. 때문에 ‘리’는 호르몬제를 ‘밥’에게 주사하고, ‘밥’은 달라진다. 모성 호르몬이 ‘밥’에게 발동된 것이다. ‘밥’에게 있던 일 욕심은 사그라들고 ‘밥’은 아이에 집중하며 회사를 자주 결근하게 된다. 모성 호르몬제의 성공적 실험 완수를 보여주며 소설은 끝난다.
「마더 메이킹」에서는 모성 호르몬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무성 생식이 가능한 인간으로의 진화는 없다. 그리고 여성이 출산을 지금과 같이 맡는 미래 사회에서 마치 당연하다는 듯 여성 대상 모성 주입을 바탕으로 여성에게 돌봄 노동을 강요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출산율은 입동이 지난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정부는 여러 정책을 내놨으나 큰 호응을 얻진 못했다. 급기야는 전국 가임기 분포도에 이어 난소 나이 분포도를 만들어 발표했다. 이제 1년에 한 번씩 난소 나이를 검사하는 것은 의무가 되었고 매년 검사를 갱신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었다. 자동차 정비검사보다도 더 자주 돌아왔다. 일부 여자들은 폐경이 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을 둘러싼 사회는 저출산 극복 대책으로 전국의 ‘가임기 여성’ 수를 집계한 ‘출산지도’를 만든 세력과 오버랩되며 동시대성을 드러낸다. 모성을 강요하는 부당함을 개선할 의지도 정책도 없는 사회의 무조건적 예찬은 ‘마더 메이킹’이 아닌 ‘메이드 메이킹’을 모성애라는 명분 아래 만들어낸다. 육아와 관련된 모든 노동을 모성을 이유로 엄마에게 떠넘기는 것이 가장 값싸고 손쉬운 방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결국 모성 호르몬 주입의 수혜자로 엄마인 ‘리’가 아닌 아빠인 ‘밥’을 설정함으로써 당장에 여성에게 둘러싼 문제를 미러링하며 지금을 한국 사회를 낯설게 보여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밥은 익숙해졌다. 아이를 품에 안고 어를 때면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중략) 밥은 아이와 함께 있길 원했다. 리가 마더 메이킹 때문이냐고 물으니 솔직히 모르겠다고 답했다. (중략) 실제로 밥은 아이의 키와 몸무게, 먹는 양과 기저귀 교환 횟수, 대변의 점도와 형태, 냄새까지 빠짐없이 매일 상세히 기록했다. 그 기록들을 보고 있노라면 실험 일지에 적어 놓은 데이터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대상을 키우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의 컨디션은 안 좋아 보였다.
이와 같이 작품은 거리두기를 통한 생소함으로 모성의 어긋난 지점을 드러낸다. 모성으로 인한 육아 노동을 아버지가 담당하게 되었을 때 불러일으키는 기묘함이 있다면, 이 반대로 어머니에게 모성을 강요하게 되는 현 세태가 정말 옳은 것인지 재고하게 되는 것이다.
오정연의 「미지의 우주」는 더 확장된 세계인 화성에서 예전의 세계인 지구로의 귀환을 그리는 미혼모의 이야기다. 주인공 ‘미지’는 화성 이주 2세대로, 지구로의 단기 이주를 준비하다가 딸 ‘우주’와 함께 건너가려는 과정에서 차질을 빚는다. 소설 내 세계관으로는 화성의 테라포밍이 직간접적으로 이미 드러나 있고, 지구와의 연락이 용이한, 발달된 통신망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 양육의 지점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는 설정이다.
작중 ‘미지’는 ‘우주’의 입소 대기 신청을 위해 개인 정보를 입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보호자 2’를 빈칸으로 두자 신청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두 명의 보호자가 없이 한 보호자만 존재하는 경우에 권리 제한을 두는 것이다. 자격 요건조차 충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미지’는 화면 아래 작게 위치한 ‘특수가정’이라는 선택지를 발견하고, 한 부모 가정을 비롯한 엄마, 아빠, 자식으로 구성되지 않은 가정들이 특수한 가정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어느 한 형태의 가정에서 벗어나면 정상성에서 벗어난 가정으로 명시하고 판단한다는 편견을 드러낸다.
4년 반 전, 미지는 사귀던 남자와 헤어진 직후 임신 사실을 알았다. 생부에게 이를 알릴 필요도, 의무도 없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싱글맘이 됐다. 성을 물려준 아이의 풀네임을 일상적으로 부르면서 미지는 딸에게 그것의 특별함과 각별함을 의식적으로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 특수함을 낙인찍을 권한을 국가에게 준 적은 없었는데. 일별의 힘든 선택 버튼으로 존재하는 특수함을 통해 개인의 결정을 이처럼 소소하게 모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는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말한다. 그 외에도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제8조),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9조)는 내용도 담겨 있다. 즉 ’가족‘이라는 단어의 올바른 지점을 혼인과 출산 그리고 해체되지 않은 구성원으로만 판단하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혼인하지 않았거나 이혼이나 사별과 같은 경우로 가족이 해체된 경우, 특수성을 가진 가족으로 분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행법의 이러한 편견 조장은 사회 전반적인 인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은 공공기관 웹사이트 홍보물에서 가족의 다양성을 헤치는 요소가 82개의 웹사이트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추석 맞이 나눔을 진행한다는 보도 자료에서 '밀키트를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 전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회 취약계층이라는 단어로 해당 가정들을 명명함으로써 편견을 드러내는 지점인 것이다. 가정의 형성 방식이 다양해지는 현대에 특정 형태만을 당연히 여기는 고정관념이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이를 ‘특수가정’이라는 틀로 표현하며 ‘보호자 1’과 ‘보호자 2’, 그리고 아동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일반적인 경우의 가정이라는 미래 사회의 어긋난 틀을 제시한다.
‘정상 가정’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싱글맘’ ‘미지’는 화성에서의 생활 전반에 있어서도 불평등을 겪는다. 더불어 화성의 ‘정상 가정’ 속 한국 엄마들은 은밀하게 그 예외인 ‘미지’를 자신들에게서 배제한다.
“오늘 퇴근이 이르셨나 봐요. 우주를 직접 데려오신 거 보면.”
형식적이나마 말을 건넨 이는 여느 때처럼 다율 엄마였다. 놀이터의 인간 보호자 대부분은 남편의 이직으로 화성행을 택한 여성이었다. 우주가 놀이상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미지는 그 그룹에 속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아이의 상급학교 진학, 남편의 직장 내 처우, 화성 적응에 필요한 건강 및 피부 관리 등 지구 출신 여성 양육자 그룹의 시시콜콜한 화제 중 무엇 하나 미지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직접적으로 큰 갈등을 빚어내지는 않지만, 일종의 계급 분리와 같이 ‘미지’에게 아파트 거주자 전용 커뮤니티와 같은 ‘정보’를 쉽게 제공하지 않는다. 과학의 발전에도 개개인의 정보력이 무언가를 판가름하는 사회에서 ‘미지’는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도움을 받는다. ‘미지’는 홀로 아이를 키우며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때문에 ‘엄마’라면 가지는 정보들에 어느 정도는 무지할 수밖에 없는데, 작품에서는 화성으로 이주를 하는 세대에도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나 배려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각각의 가정이라는 차원에서의 양육이 여전히 강조되고 사회의 공공적 양육은 실현되지 않는 시대로, 기술만이 발전한 세계의 여성 노동 현실은 비관적일 것이라는 예견적 서사로 작가는 현재를 말한다.
“그거 중앙지구 가족체험과학관에서 기념품으로 나눠주는 거야. 시설 이용하려면 남자 어른 대동이 필수라던데...”
어느새 친구와 어울린 우주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아득했다.
“우리도 조만간 또 가볼까 하는데 다음 주말에 우주 데려가줄까? 이제 한국 가면 우주한테 아빠 필요한 일이 더 많아질 거야. 여기 있는 동안이라도 이용해야지.”
한국에서 온 이들은 싱글맘을 향한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여성의 육아노동 비율이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인의 육아 현장에서 미지와 우주는 평범하게 녹아들었다. 미지가 이런 통찰을 한탄과 흥미를 섞어 털어놓으면, 혜리는 매번 한국 아빠의 전통적으로 불량한 육아 태도를 성토했다. 그랬던 혜리가 짐짓 선심을 쓰듯 하며 미지가 최선을 다해 지킨 가족이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미지’는 아이를 혼자 낳고 키우기로 결정한 여성으로 위 작품과 달리 ‘모성’이라는 감정이 일종의 코르셋으로 작용되지는 않는다. ‘미지’는 아이를 안정적으로 양육하고자 하는 욕망과 자세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오후부터 취침 시간까지 미지는 양육 로봇의 도움을 받으며 홀로 감당해낸다. ‘우주’를 먹이고 씻기며 환복을 하고 학습과 놀이까지 담당한다. 육체적인 노동 또한 문제적 부분이지만 여기서 ‘미지’가 가장 힘겨움을 느끼는 것은 아까의 상황에서 연장된 정신적 노동이다. ‘미지’는 육아의 힘겨움을 덜어내기 위해 육아 로봇을 도입했지만 로봇은 어디까지나 도움 도구일 뿐 ‘미지’의 근본적 여성 노동을 변화시켜주지는 못했다. 작중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미지’는 다른 가정과 본인의 가정이 다르며 그 때문에 아이에게 충분한 가정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무의식적 죄책감을 정신적 피로로 드러낸다. 이 피로감은 앞서 겪은 화성 한국 엄마들의 적대감과 소외, 그리고 이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는 부수적 감정 노동 또한 한 데 섞인다. 제목인 ‘미지의 우주’는 주인공 ‘미지’와 딸 ‘우주’를 말하기도 하지만, 결국 주제적인 지점에서 살펴봤을 때 평등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나의 세계에 대한 막연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슐러 르 귄은 SF는 미래를 예언하는 것보다, 현재를 기술하기 위한 사고실험이라고 밝혔다. 화성 이주나 물질적으로 모성을 만들어내는 먼 미래를 가정하지만 현실을 조망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사변 소설’로서의 문학적 작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페미니즘의 부흥 이후 한국 문학의 흐름에 있어서 페미니즘 SF가 급부상한 것은 젠더적인 사고 실험의 한 측면이며, 이는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페미니즘 SF 속 동시대성을 파악하는 것은, 페미니즘 SF가 가지는 실천성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대상 작품들은 SF 장치로 젠더적 폭력과 불평등을 투명화시키며, 이러한 전략은 효율적인 비판 그리고 성찰로 작용하게 되었다. 더해 모성이라는 주제 속에서 인물은 재구성되어 새로운 주체성을 가지며, 탈바꿈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두 작품들은 특히나 모범적 대안이나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특정 발달 사회의 ‘실패’한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비관적인 미래와 해결이 어려운 곤경을 제시하며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방향성을 말하는 서사적 전략을 취하게 된다. 해당 작품들은 ‘엄마 호르몬’이라는 복잡한 화학적 반응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고, 화성에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이 발전된 미래 사회에서 오롯하게 여성 노동의 문제는 전혀 개선된 사항이 없는 채로 부정함이 계승되는 비관적 미래를 그린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 여전히 한국의 여성 노동 현실은 더 은밀히 행해지고 심화되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현대 사회의 모든 지점을 해결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기술 만능적 사고에도 제동이 걸리는 특이 사항이기도 하다.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주입하면 일이 풀릴 거라는 대안이나 해당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이 전무후무한 막연한 테라포밍 사회를 그리며 이런 지점들이 과학만 발전하면 자연스레 풀릴 수 있을 거라는 낙관 또한 지워버린다. 즉, SF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현실의 녹록치 않은 점, ‘비관’이라는 것이 주제 자체인 것이다.
또한, 살펴본 작품들은 모성과 여성 노동을 ‘위대하고 성적인 의무’라는 식으로 미화하고 주입하여 방관한 사회의 서사적 전복과 대응으로도 볼 수 있다. 충분히 예견이 되거나 큰 미래를 그리지만 상상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전망을 보여주며 은폐하고자 했던 문제의식을 직관하도록 하려는 작가의 이야기 서술방식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여성 작가들은 페미니즘 SF를 통해 여성 노동의 미래 상황이라는 사유를 전개하며 현재 펼쳐지는 사회 문제를 여과 없이 바라보기를 촉발한 것이다. 이러한 완벽에 가까운 첨단 사회의 균열 지점을 보여주며 여성 노동 문제에 안이할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바뀔 필요가 있음을, 미래가 이렇게 흘러가지 않게 지금 당장 바뀌어야 할 당위성에 대해서 말한다.
가장 달성하기 어렵지만 결국 최고의 지향점은 사회적, 시민적으로 여성 노동에 대해 평등을 이뤄내고 여성에게만 전담되던 노동을 공평히 나누는 것이다. 여성의 것으로 치부하고 미루거나 대체하지 않고 인류의 공존과 성찰 그리고 공동체적 시민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하면 불평등하게 이뤄지지 않을지 성찰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 노동을 호르몬제를 통해 반강제적으로 전담하게 하거나 개인의 사소한 차원에서의 문제 상황 처리는 근본적인 해결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확장된 시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사유가 되지 못해 예견된 실패를 첨예하게 말하며, 여성 노동의 현실을 조망하며 문제점과 해결 방향을 살펴보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 ‘한국 여성 SF가 말하는 여성 노동의 동시대성’ 효용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과거와 더불어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역동하며 효과적으로 보여진다. 시대의 당연한 상식이나 어쩔 수 없는 보편성으로 여겨지는 체계가 차별적 의미를 지닌 특수화라는 것을 보여주며 대안을 모색하지 않았을 경우의 한계점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때문에 작가들은 작품으로 동시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세계를 재편하는 역량이 발현된다.
실현되지 않았으면 하는 미래를 그려내는 한국 여성 SF는 서론에서 밝혔듯 페미니즘과 SF 미학의 결합으로 의미를 만든다. 서사를 통한 상호작용은 우리가 내릴 미래의 결정에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그 자체로 동기부여가 된다. 고로 특정한 제약이 있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SF 소설은 망상으로만 지나지 않는다. 세계에 대한 부정을 통해 여성의 서사를 펼치는 한국 페미니즘 SF는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길이다.
참고 문헌
기본 자료
김하율 외 6인,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 中 <마더 메이킹>, <미지의 우주>, 에디토리얼, 2019
논문
강은교·김은주, 「한국 SF와 페미니즘의 동시대적 조우: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와 듀나의 「두번째 유모」를 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 2020.
정은경, 「SF와 젠더 유토피아」,『자음과 모음』42호, 2019, 22-35쪽
인아영, 「젠더로 SF하기」,『자음과 모음』42호, 2019, 46-58쪽
안서현, 「여성 SF가 사유하는 돌봄의 익숙한 미래」
뉴스 기사
임지영, 「’과학소설‘ 전성시대, 왜 지금 SF일까?」, 『시사IN』, 2020.11.26
「서울 젊은 맞벌이 엄마 가사노동 하루 114분, 아빠는 49분」, 『한국경제』, 2022.11.22.
임재우, 「법으로 이혼예방? 시대착오적 ‘건강가정기본법’ ... 개정논의 시작부터 ‘전운’」, 『한겨례』, 2021.5.17
계승현, 「“부모 있는 가족만 정상?” 공공기관 사이트 82곳에 편견 요인」, 『연합뉴스』, 2023.01.31
키워드: 여성 SF, 페미니즘 SF, 소수자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