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 가이, 그리고 인권과 존엄
프리 가이 (Free Guy, 2021)
Life is just a game? And I'm not a real mankind?
데드풀로 유명한 라이언 레이놀즈와 킬링 이브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인 조디 코머가 주연을 맡은 sf 액션 코미디 영화. 기본적인 정보 -게임 속 npc가 자신이 사는 게임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가 인지된 상태에서 시청하는 바람에 걱정했지만, 다행히 영화가 풀고자 하는 이야기와 주제는 "주변을 이루는 모든 것이 가짜임을 깨닫고 그것을 탈출한다"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평소 없어서 못 사는 주제이므로......
Meet a Guy! He's a Non Player Character
매일 같은 커피를 마시며, 일하는 은행은 늘 강도에 당하는 평범한 삶
가이는 평화롭게 탱크가 도로 위를 나다니는 "프리 시티"에서 일상을 보내는 소시민 은행원이다. 그의 데일리 루틴은 간단하다. 우선, 잠에서 깨면 머리 맡에 놓인 금붕어에게 인사한다. 그 다음, 옷장 안에 무수히 똑같이 늘어진 연한 파란색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는다. 기상 예보가 아닌 살인 예보를 들으며 매일 같은 시리얼을 아침으로 먹는다. 그리고 카페의 유일한 메뉴인 크림 하나, 설탕 둘이 들어간 미디엄 커피 한 잔에 이상한 농담을 곁들이며 맛보고는 업무를 시작한다. "좋은 하루 보내지 마세요, 최고의 하루를 보내세요!"라는 말로 고객들을 상대하다가 보면, 코스튬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시민들이 은행을 턴다. 그리고 본인의 절친인 경비원 버디와 나란히 누워 본인의 평생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퇴근을 하면, 해변에서 버디와 맥주를 한잔 마시며 마무리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전부였다.
그리고 가이의 인생의 큰 변수가 생긴다. 처음 보자마자 가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느리게 울려퍼지게 하는 여자가 나타난다. 꿈에 그리는 완벽한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늘 무기력하게 엎어져 있던 그는 강도 플레이어의 선글라스를 빼앗게 되고, 이는 그의 성장의 도움 발판이 된다. 곧 그녀를 만난 가이는 여타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빼앗고 죽여서 레벨을 올리는 것이 아닌, npc에게 무차별적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플레이어들을 저지함으로써 전무후무한 레벨업, 즉 성장을 이루게 된다. 프로그래밍된 경우가 아닌 버그 혹은 에러로 인한 자유 의지로 npc에 불과했던 가이는 자아가 생긴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가짜라면?
그렇다면 나도 역시 가짜인가?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존재가 자아를 가지게 되며 인간과 별 다를 바 없는 본인이 진정 인간이 아닌지, 즉 가짜인지 고민을 하며 되려 인간성에 대한 의미를 묻는 것. 이런 식의 명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sf 영화 -매트릭스, 공각기동대, 블레이드 러너, 트루먼쇼, 바이센테니얼 맨 기타 등등- 가 자동으로 연상된다.
만일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그저 정해져 있는 거라면? '나'라는 존재가 정말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형놀이의 부품에 불과하다면? 그렇다면 '나'는 가짜인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 자신의 시작점이 프로그래밍된 ai라는 이유로 살아온 모든 삶은 거짓이 되나? 그렇다면 내가 만일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직접 꾸려나가기를 시작한다면? 오래된 주제이자 질문을 영화 프리 가이는 관객에게 한 번 더 던진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본인이라고. 주된 스토리도 아니고 사소하게 넘어가기는 하나, 깨달음을 얻은 가이에 의해 자극을 받은 다른 npc 캐릭터들도 본인의 주체성을 지니게 된다. 바리스타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카푸치노를 만들고, 플레이어들에게 트로피처럼 주어졌던 금발이 미인 캐릭터는 본인이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성차별과 가부장제의 폐단을 풀어낸 책을 출간하기도 한다. 주어진 삶에서 벗어나 그들이 진정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달아가며 하나씩 그 사명을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의 메타포와 논의는 굉장히 동시대성을 가진다. 오래된 주제가 새롭게 다가오는 데에는 여태껏 우리 인류가 쌓아온 과학의 발전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 그 너머의 지적 존재에 대한 가능성을 사유하기 시작하며 그 존재에 대한 복지 또한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포스트휴머니즘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몸을 벗어나 과거의 인간상에 저항하고, 사물까지의 새로운 지적 존재를 용인하는 것이다.
영화 중반 본인의 세계가 가짜라는 판단 하에 충격을 받은 가이는 친구에게 이 세상이 모두 가짜라면 어떨 거 같냐고 버디에게 질문한다. 친구 버디는 "바로 여기, 바로 지금 이 순간은 진짜야." 라고 말하며 곤경에 빠진 친구를 도와주기 위한 이 시간과 대화가 진짜임을 말한다. 버디라는 인물을 통해 진정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드러나는 부분이다. 영화는 서로 관계를 맺고 통하는 말들이 진실하다면, 그 존재 또한 -시작이 가짜이고 현실의 존재가 아닐지언정- 그 존재 또한 진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게임 밖의 현실 사람들은 1년의 10억명의 npc를 죽일만큼 인격체로의 존엄을 지키지 않지만, 포괄적인 실천이성의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이 제작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과 동일한 인격적 지위를 인공지능에게 부여하지 않을 수 없게 영화는 스토리를 이어간다.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것은 0과 1이 전부가 아니며 본체 재료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일지라도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나라는 구축점을 만드는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와 프리 시티
결국 함께 살아가게 될 '우리'
이런 점에서 SF를 좋아하고, 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반하는 거다. SF는 현실과 거리를 두고, 우리를 낯설게 하지만 이런 환경이 현실과 거의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이질적 세계관과 그래픽을 바탕으로 현실 세계의 악질적인 부분을 비판하고 반추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GUY"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하고자 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 목표로 두는 것,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주체적인 생각과 행동을 삼는 모든 존재가 현실의 "가이"가 될 수 있음을 말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마치 사고 실험 같은 가상의 이야기지만 지성과 감성을 바탕으로 한 자의식이 있는 인공지능은 자율성을 언젠가는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존재로의 존엄을 인정할뿐만 아니라 언젠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을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와 동일하거나 그에 준하는 인격적 존재를 존중하며 공감하며 연민하는 능력이 필수적이게 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 링크로 트랜스휴머니즘에 한걸음 더 나아간 현 시대에, 포스트휴먼에 대해 개방적이며 존엄성의 지위를 인정할 태도를 가지는 것은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라고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