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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소 Feb 12. 2024

환승 연애와 나는 솔로는 그 자체로 현대 연애관이다

바우만의 '액체 사랑'을 곁들인 이야기


  근 몇 년간, <환승 연애>를 비롯한 여러 일반인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주로 솔로인 출연자들이 일대일 연결에 집중하던 당시의 연예 예능 포맷과는 결이 다르다. 이제는 이미 헤어진 연인이 함께 출연하여 여러 새로운 상대를 접하며 끝날 때까지, 혹은 끝나고 나서도 여러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변했다. 만남 자체도 가변적인 상황과 주변부적일 것으로만 생각하는 여러 조건을 생각하며 상대를 바라본다. 무엇보다도 각각 일 대 다수의 대응이라는 복합성으로, 현대의 안정적 관계의 불가함을 드러내는 유동적 인간관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를 바우만의 이념과도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바우만은 끝없이 변하는 개인의 정체성과 유동적인 성질의 사회로 안정적이지 않은 관계, 고정되지 않는 세상에 대해 논했다. 더불어 그는 ‘액체 사랑’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켜, 개개인의 관계에 단단히 고정된 사랑이 추구되는 것이 아닌, 자유롭게 흐르는 연애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그의 개념에 의하면, 액체 시대의 액체 사랑은 예전 시대의 사랑보다 훨씬 힘겨운 것이다. 사랑의 유지가 필요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인 걸 서로 알기에 각자는 서로를 손해보지 않을 정도까지만 투자하려는 것이 현대 연애관이다. 합리적 이익과 욕구 충족의 관계 맺기로 손익의 계산이 분명하고 사람을 대체되는 소비 대상으로 보는 이 흐름은, 지금 우리에게 분명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액체 사랑’에 관한 재고

  바우만은 액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당연하고도 어쩔 수 없는 흐름이지만, 희망을 상실한 현대사회에서 충족 불가한 욕구를 사랑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으로 논했다. 서로에게 원하고 바라는 것이 많지만, 사람이 너무도 가변적이라 혹시라도 있을 위험을 피하는 비관적 관계 맺기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한 대응과도 같이 이어지는 것이 바로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이다.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 초반 저출생을 막중한 국가의 위험으로 판단하고 획기적인 지원책을 제시해왔다. 특히 앞서 언급한 시민연대계약의 경우, 이성이나 동성간 결합(동거)를 결혼을 이룬 가정과 다름없이 동일한 취급을 하고 혜택을 주며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러한 정책 도입에는 프랑스 내에서 사실혼 동거인, 혼외 출산, 미혼모와 미혼모를 비롯한 탈정상적 가정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사회적 분위기가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비단 이런 풍조는 프랑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GEN Z의 연애 가치관 또한 여기서 더 발전된 행태를 보인다. SITUATIONSHIP 이라는 용어로 어떠한 관계에 놓여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연인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의 관계로 서로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연애까지는 무겁고, 어떠한 약속이나 책임을 지기도 어렵다는 가치관으로 로맨틱한 상황 정도까지만 서로 합의 하에 용인하는 관계다. 다수와 시츄에이션십을 맺을 수 있다는 것도 특징적인 구분이 된다. 이렇게까지는 아니지만, 현재의 우리나라에서도 위와 같은 열린 사고의 가시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의 인식변화

  지난달 17일에서 24일 전국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는 국민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례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결혼제도(ex) 사실혼)에 관한 문항을 처음 추가했다.              

  해당 조사에서 80%를 넘길 정도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결혼제도의 다양한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긍정적 의견을 보였다. 그리고 해당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한 파생 질문인 ‘“프랑스의 ‘팍스(PACS)제도’ 도입하면, 저출산 극복에 도움 될까”에 관해서는 80%에 가까운 정도로 긍정적인 답변이 도출됐다.

  때문에 저출산위에서는 인식변화에 발맞추어 다양한 제도 도입에 관한 논의를 보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조사는 동거 커플을 비롯한 다양한 관계 맺기를 하나의 방향성으로 보는 조사인 동시에, 이에 임한 국민들이 더 자유롭고 다양하게 결혼 외의 제도도 한 가정으로 인정받고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으로의 변화를 꾀한 것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인식조사다.

 그렇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비혼 출생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며, 한국의 혼외 출산율은 2021년 기준 2.9%에 불과하다. 더불어 법적 혼인 부부가 아니라면 난임 지원이나 출산 관련 지원을 받지 못하는 영향 또한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 현재 예전보다는 확실히 다양한 관련 제도의 도입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관련 제도

  최근 국토교통부에서는 출산 관련 주거 비용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대출이나 청약과 같은 부분에서 신생아를 출산한 가구에 파격적인 혜택을 준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만일 연 소득이 1억 3000만 원 이하의 출산 가정이 9억 원 이하 집을 구매하면 최대 5억 원의 저리 대출이 가능하다. 해당 대책의 가장 큰 특징은 출산에 포커스가 잡혀있다는 점이다. 결혼 가정만이 아닌 동거 혹은 사실혼과 같은 다양한 결혼 형태에도 큰 다름없이 지원한다는 점이 해당 대책의 가장 큰 특이점이다.

  또한, 올해에는 가족제도 변화 역사에 있어 큰 시작점을 이룩한 해다. 4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생활동반자등록법 대표 발의에 이어, 5월에는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이 가족구성권 3법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발의안에는 동성혼 법제화 및 인정의 민법 개정안, 생활동반자 등록 특별법 제정, 비혼 출산 지원 모자보건법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도 앞서 생활동반자등록법을 제안한 적 있다. 이외에도 민법에서의 가족 범위에 관한 조항을 폐지, 동성혼 법제화, 연대관계인을 지정(돌봄, 정보 제공, 의료, 장례)할 것 등 다양한 흐름의 변화를 반영한 관계 맺기를 강조해왔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들은 국민 청원에서도 등장하며, 이것이 비단 관련된 단체 혹은 전문가들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현재의 의의다.

     



견고한 것을 녹이는 사랑

  바우만은 고체의, 단단한 과거의 생활방식과 현재의 유동적 사고는 대비된다는 것을 밝히며 근대 액화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는 모든 견고한 것은 녹아버린다는 마르크스의 표현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바로 여기서 새로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지점이 있다. 단단한 것과 흐르는 것의 이분법적 개념 설명은 두 경우가 극단에 놓인 배타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게 된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회변화 파악은 전체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는 해 주지만, 사소하고도 여러 복잡한 일이 얽히는 낭만과 사랑이라는 부분에 흑과 백 둘 중 하나라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제는 마치 봉건적 가치로의 회귀처럼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라는 관계를 특정한 흐름(결혼, 출산 등)에만 편입시킬 것이 아니라, 여러 범주와의 타협과 새로운 대안 혹은 그 너머의 범주로 새로운 인식을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시대의 ‘사랑’과 ‘낭만’을 위하여

  생활동반자등록법안과 관련하여, 이것이 기존의 혼인제도와는 다르다는 점이 분명해야 한다. 새로운 혼인 관계인 것이 아닌, 유동적인 시대에 발맞춘 서로 간의 계약이며 두 사람 간의 관계 맺기인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두 인물 간의 예전보다 자유로운 관계 맺기로 서로 돌봄과 의사 조력, 상호 간의 부양이 가능한 새로운 관계성이 등장해야 한다.

  사랑과 낭만에서도 생존과 결합, 그리고 사회적 권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과거의 단단한 구조와 이어지는 현재의 제도는 어느 정도 배타성을 지니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가족이라는 개인 간의 관계 형성을 인구 수 증가를 위한 도구로 삼거나, 가임기 여성 지도와 같은 여성을 출산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 혹은 경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소모적 존재로 인구를 바라보는 국가의 기조는 분명한 반성이 필요하다. 낭만과 사랑을 그 자체로만 논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보편적인 의미로 변화해야 긍정적 흐름을 가질 수 있다.

  다양화된 사랑을 반영하여 개개인 간의 보다 더 자유로운 결합, 더불어 동성혼이 법제화된다고 해도, 이는 아주 일부분적인 문제를 해결할 뿐이다. 폭넓은 시야로 낭만과 사랑 너머의 공동생활과 연대라는 전면적 요소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인구 수 혹은 경제적 차원에서 변동적이며 불안정한 사랑을 도구화할 것이 아니라, 이에 저항해 다양한 ‘사랑’의 상황을 적용하여 인류 모두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참고문헌

토마스 레온치니, 「액체 세대의 삶」, 김지우 역, 이유출판, 2023     

남수현, “[단독] 60대 이상도 무려 84%가 "다양한 결혼제도 인정해야"”, <중앙일보>, 2023/11/27,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0266#home     

나영정. “생활동반자법은 누구를 대변하는가? 퀴어가족정치의 장, 사회적 재생산 위기에 응답하다⑥”, <여성주의저널일다>, 2023/09/20, https://www.ildaro.com/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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