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처럼 쓰는 나만의 기록
언제부터였을까.
메모장 대신 진짜 종이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스마트폰엔 늘 메모장이 있고,
노트북엔 워드 문서가 있지만,
나는 문득 손으로 꾹꾹 눌러 써내려가고 싶어졌다.
기계가 아닌 나의 손이,
기억을, 감정을,
그리고 나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이혼 후 처음 몇 달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도, 가족에게도,
감정은 최대한 담담하게 정리된 문장으로만 전달했다.
“잘 정리됐어.”
“서로 조용히 끝냈어.”
“아이들도 잘 이해해줬고.”
그 말들은 사실 반의 반도 진심이 아니었다.
그저 말하는 내가 어색하지 않기 위해 만든 껍질이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속이 비어졌다.
다 쏟아낸 줄 알았는데,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한 말들이 안에서 퍼져갔다.
그 말을 어디에도 놓을 수 없어
처음엔 낡은 다이어리를 꺼냈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쓰던,
한쪽 귀퉁이에 크레파스 자국이 남아 있던 노트.
그 위에 썼다.
처음으로 내 감정을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오늘 울었다. 괜찮은 척하느라 너무 피곤했다.”
그렇게 한 줄이 시작이었다.
SNS에 글을 올리면 반응이 따라온다.
‘좋아요’ 수, 댓글, 공감 이모티콘.
그것들은 때때로 위로가 되지만,
어쩔 땐 내 감정에 가격표를 붙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감정은 몇 개의 공감을 받을까?’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좋아할까?’
‘너무 우울하게 보이진 않을까?’
그 질문들이 피곤했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을 다시 꺼냈다.
“혼자 사는 건 괜찮다.
그런데 혼자라는 걸 매일 실감하게 만드는 세상이 버겁다.”
“마트에서 마주친 가족 단위가 나를 작게 만들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없는 걸 모를 텐데,
나는 그들 속에서 내가 없음을 자꾸만 깨닫는다.
이런 문장은 SNS에 올릴 수 없다.
누군가는 “힘내세요”라고 말할 테고,
누군가는 “그런 글 자꾸 쓰지 마요”라고 충고할 것이다.
혹은 아무 말 없이 지나칠 것이다.
그 침묵이, 말보다 더 아플 때가 있다.
하지만 일기장 속에서는
나는 아무렇지 않게 울 수 있고,
비틀거리는 말도 쓸 수 있다.
틀린 문법이어도,
두서없는 감정이어도,
그 누구도 수정하지 않는다.
그 공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니까.
2023년 1월 9일.
그날은 유난히 춥고, 또 유난히 외로웠던 밤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지하철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그날은 달랐다.
불 꺼진 집,
젖은 코트를 벗으며
나는 엉겁결에 울었다.
그냥, 주저앉았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무너지게 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어쩌면 눈이었을지도,
그냥 그 날의 침묵이었을지도.
그날 밤,
나는 일기장을 꺼내 처음으로 여러 장을 썼다.
손이 아플 정도로,
그동안 참았던 모든 문장을 쏟아냈다.
“괜찮다고 말하지 말 걸.
도와달라고 한 번이라도 말해볼 걸.
그랬다면 지금 이 밤이 조금은 덜 차가웠을까.”
그 글을 쓰고 나니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은 것도 아닌데
내가 나를 토닥인 기분이었다.
그 이후, 일기장은 나의 작은 병실이 되었다.
상처가 도지는 날이면
나는 조용히 그곳으로 들어가 앉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너 참 밝아졌다.”
“이혼 후 오히려 더 단단해진 것 같아.”
“혼자서도 잘 살아가네.”
그 말들은 고맙지만,
어쩔 땐 그 말들 때문에 더 말할 수 없어진다.
‘나는 밝지 않다’
‘단단한 척할 뿐이다’
‘혼자 잘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냥… 버티는 거다’
하지만 그런 말은
이제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그저, 일기장에 쓴다.
진짜 나는 거기에 있다.
쓸쓸한 날엔 휘갈겨 쓴 글씨로,
희미한 희망이 보일 땐 조심스럽게 눌러쓴 글씨로,
아무도 몰래 그렇게 살아간다.
지금도 매일 쓰는 건 아니다.
어떤 날은 몇 줄, 어떤 날은 몇 장.
어떤 날은 몇 달을 비우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펜을 잡는 순간,
나는 ‘괜찮은 척’을 내려놓고
조금은 진짜 나와 가까워진다.
오늘은 이렇게 쓸 예정이다.
“조용히 무너지지 않아준 나에게 고맙다.
다시 일어날 생각을 해줘서 고맙다.
내일은 조금 덜 외롭길 바란다.
그래도, 오늘까지 잘 버텼다.”
이 글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겠지만,
이 글 덕분에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