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사소한 의식들
혼자가 된 지 4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괜찮아지는 대신 고요해졌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하루는
때때로 자유였고,
때때로 참을 수 없는 고독이었다.
나는 그 고독을 견디기 위해
아주 사소한, 나만의 ‘의식’을 만들었다.
금요일 저녁 7시.
회사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세수하고 머리를 묶은 뒤
주방 선반 맨 위에 있는 작은 유리병을 꺼낸다.
그 속엔 내가 아껴두었던 향초가 들어 있다.
이름도 모르는 브랜드,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해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주문한 작은 초.
나는 조심스럽게 그 초에 불을 붙인다.
불꽃이 일렁이는 순간,
마음속에서도 뭔가 ‘환기’되는 기분이 든다.
불꽃은 크지 않지만
그 안엔 내 하루의 무게가 담겨 있다.
이혼한 후 처음 맞이한 금요일 밤은
너무 조용해서 무서웠다.
모든 사람들은 ‘불금’을 즐기고 있을 텐데
나는 전등도 켜지 않은 거실에서
식은 국과 밥을 대충 비우고
티비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날,
아무 이유 없이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향초 하나를 샀다.
“불빛이라도 있으면 덜 외롭겠지.”
그 생각 하나로.
그리고 그 이후,
매주 금요일 밤마다 나는 향초를 켠다.
이 작은 의식은 내게
“잘 버텼어, 이번 주도”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 위로를,
내가 나에게 주는 방식이다.
이혼 후 처음 맞이한 생일엔
휴대폰이 조용했다.
생일인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있었지만
다들 조심스러웠는지 연락이 없었다.
아이들은 대학 기숙사에 있었고,
부모님은 “괜찮지?”라고 짧게 물었을 뿐이다.
그날 나는
퇴근길에 케이크 가게에 들렀다.
“몇 인용으로 드릴까요?”
“그냥… 제일 작은 걸로 주세요.”
작고 귀여운 케이크에 초를 하나 꽂고
불을 켠 다음
노래도 부르지 않고
그저 촛불을 잠깐 바라보다가
숨을 불어 껐다.
그때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조용하지…”
그러면서도
이 조용한 생일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한 날로
기록된 하루.
그날 이후,
나는 매년 나 혼자만의 생일 의식을 지킨다.
작은 케이크 하나,
향초 하나,
그리고 일기장 한 장.
내가 나를 축하해주는 법을
그제야 배웠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혼자 있는 삶은 '루틴'이 없으면 금세 무너진다는 걸.
아침에 눈뜨자마자 창문 열기.
커피 내리는 동안 음악 틀기.
식물에게 물 주기.
주말엔 책상 정리하기.
이 모든 건
누가 시킨 것도,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를 위해.
혼자인 내가 나를 보듬기 위해
스스로 만든 작은 규칙들.
특히 ‘침대 정리’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루틴이다.
이혼 후 몇 달간은
침대를 정리하지 않았다.
아무도 볼 사람이 없었고,
정리한다고 해서 누군가 칭찬해주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어느 날,
하루 종일 찌뿌둥한 기분으로 퇴근해 집에 돌아와
침대가 엉망인 걸 보고
그게 유난히 지저분하고 외롭게 느껴졌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매일 아침 이불을 정리했다.
마치 나에게
“오늘 하루, 잘 해보자”라고 말하듯이.
그 후로
침대 정리는 하루의 출발점이 되었다.
혼자 있다는 건
누구와도 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자유는 처음엔 두려웠지만
익숙해지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선물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에 잠들고,
원할 때 밥을 먹고,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나면
그냥 울면 된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왜 우는지,
왜 조용한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됐다.
예전엔
늘 누군가와 시간을 맞추기 위해
나를 희생했다.
아이들, 배우자, 가족, 회사…
지금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늘은 나를 위한 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게
나만의 조용한 의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혼자 사는 거, 외롭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나는 잠시 생각한다.
외롭다는 말은 맞지만,
불행하다는 말은 틀리다.
나는 혼자이기 때문에
내 감정에 더 예민해졌고,
내 마음을 다독이는 방법을 알게 됐다.
향초 하나,
케이크 하나,
침대 정리,
일기 한 장.
누군가에겐 사소하고 시시한 일이지만
이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향초를 꺼낸다.
그리고 불을 켠다.
작은 불빛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한다.
“이번 주도 수고했어.
잘 버텨줘서 고마워.”
누구도 모르는 의식이지만
내 삶을 지켜주는
조용한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