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을 넘어 자기이해로
“그땐 정말, 내가 나를 너무 미워했어.”
지금의 나는 웃으며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한때는, 거울 속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거울에 비친 건
이혼한 여자,
가정을 지켜내지 못한 사람,
혼자 남은, 조금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이혼 후 가장 힘들었던 건
세상이 나를 동정하는 것 같다는 느낌보다
내가 스스로를 동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왜 못났을까.”
“왜 그때 참지 못했을까.”
“왜 조금 더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혼자 사는 집,
누군가의 인기척이 사라진 식탁,
말을 건넬 사람이 없는 밤.
이 모든 상황을
나는 내 실패의 증거처럼 여겼다.
그래서 자신을 안아주는 대신
나는 나를 벌하고 있었다.
기억을 꺼내 반추하고,
혼잣말로 자신을 꾸짖고,
과거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날들이 반복됐다.
친구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줘도
그 말은 내 안에서 튕겨나갔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를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봄날이었다.
따뜻한 햇살이 거실로 깊숙이 들어왔고,
나는 작은 카페에서 샀던 꽃 한 송이를 유리병에 꽂고 있었다.
그때 문득,
아무런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다.
슬픈 일도, 아픈 일도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오래 울었다.
조용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그리고 울음을 그친 후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나는 그렇게 잘못했을까?”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게 아닐까?”
그 질문은 낯설었지만,
의외로 가슴에 툭 떨어졌다.
맞다.
그때의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웠고, 지쳐 있었고,
모든 걸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웠던 것뿐이었다.
내가 했던 선택이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건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용기를 가졌다.
그 순간부터,
조금씩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혼 후,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
“이젠 나 자신을 사랑해.”
“자기 돌봄이 중요해.”
“너 자신을 가장 아껴야 해.”
그 말은 쉽지만,
정작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 방법을
하루하루 조금씩 실험하며 찾아갔다.
처음엔 아주 사소한 것부터였다.
좋아하는 색깔의 립밤을 발라보기
꽃집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꽃 한 다발 사보기
주말엔 내 입맛에 맞는 브런치를 차려보기
침대에 눕기 전, 오늘 잘 버틴 나를 토닥이기
이런 것들이
어쩌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내 감정을 조금씩 복원시켰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 스스로에게 말했던 한마디다.
“고생했어. 그리고… 미안했어. 그동안 널 너무 몰아붙였구나.”
그 말에
눈물이 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본 게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나를 미워하던 시간을 조금씩 놓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혼자 산다.
아침엔 혼자 눈을 뜨고,
퇴근 후엔 불 꺼진 집에 들어간다.
가끔은 외롭고,
가끔은 괜히 눈물이 맺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다.
그 행복은
누구와 함께라서가 아니라,
이젠 내가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창밖의 노을을 혼자 보면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지금 이 순간, 나는 충분해"라고 느낄 수 있는 지금이
어쩌면 내가 오랜 시간 찾고 있던 평온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사랑은, 타인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에게 허락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은
나 자신이 얼마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를 조금 사랑하게 되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불안정하고 흔들리지만
그런 나마저도
나답다고 말해줄 수 있는 나.
그게 지금의 나다.
나는 더 이상
누구보다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제 나는
어제보다 더 나를 잘 이해하고,
오늘 하루를 성실히 느끼는 사람이 되려 한다.
혼자여도 괜찮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알아보고,
지지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또 흔들릴 수도 있다.
눈물이 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땐 내가 나에게 말해줄 것이다.
“괜찮아. 넌 너답게, 잘 살고 있어.”
그렇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