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느낀다는 것

사수가 없어도 괜찮아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라는 데, 그게 뭘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추구할 수 있고, 그렇기에 정말 정의할 수 없다. '행복은 무엇일까?'에 대한 다양한 서적과 유명인의 의견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긴 인생을 시작한 사회초년생들이 건강한 멘탈로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짧게 논하려 한다. 상당히 개인적인 견해에 치중한 의견이지만, 꽤나 공감하는 분들이 많아 몇 자 적는다.


현실적인 사람이
행복도 잘 느낀다

목표 설정을 잘 한다는 것은 현실 감각이 있다는 의미다. 행복도 목표다.

경험적으로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비추어 볼 때, 확실히 현실 감각이 있는 사람이 행복도 잘 느낀다. 현실 감각이란 여러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주는데, 예를 들면 자신의 경제적 능력, 성격, 선호도, 트렌드, 이루고 싶은 모습 등 다양하다. 현실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곧잘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표는 현실적인 사람일수록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이 목표를 세우는 이유 또한 여러 가지다. 자기만족, 쾌감, 뿌듯함 등 정신적인 부분을 포함해 지위 상승, 경제적 여유 등 물리적인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한 일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들이 지속적으로 자극돼 자기 만족감, 즉 행복을 느끼는 사이클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가 만든 우상, 유명인, 특정인의 업적을 숭배해 좇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달성할 확률이 낮아 꽤나 자주 불행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높은 수준의 목표를 잡더라도 중간중간 행복을 느낄만한 중간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이 꼭 소소해야 할까?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다

소소한 행복이 대세? 개인 맞춤형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더 맞다

세상이 워낙 빡빡해 소소한 행복으로 자기 위안을 갖자는 트렌드가 대중화되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일확천금의 기회나 우리 윗 세대가 경험한 부동산 자산 증식과 같은 경험이 어쨌든 밀레니얼 세대에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늘만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자는 소확행 트렌드가 이미 번진 것 같다.


하지만 내 지인 중 일부는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한편으로는 위험해 보이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다시 말해, '현실의 나'와 '되고 싶은 나'의 괴리가 너무 크고, 연관성도 없는 사람의 욕망은 앞으로의 행복이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충분히 유능하지만 어둡고, 불만족스러워한다. 반대로 '현실의 나'와 '되고 싶은 나'의 방향성과 목표 설정이 적절한 사람은 인간적이다. 필요한 부분만 취하며 효율적으로 산다. 한편으로 부러운 마음까지 들 정도다.


행복은 그저 자기 분수에 맞기만 하면 된다. 무조건 높을 필요도, 무조건 소소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역시 여기서 필요한 부분은 '나를 잘 아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곳에서 시작한다.


진정 나 자신이
행복한지 돌아보자

행복의 방향성이 확실하다면 이력서를 수십개 쓸 일이 있을까?

종종 행복의 주체가 내가 아닌 타인인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것까지 뭐라고 할 일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행복의 주체를 '나 자신'으로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과연 내가 행복하기 위해 공부하고, 특목고를 가고, 대학을 가고, 직업을 선택해 왔는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부모님의 조언을 참고할 필요는 있지만, 부모님의 의견을 통해 결정된 부분과 나 스스로 결정한 부분의 균형이 적절하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학생들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만일 적절했다면 생각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그랬다면 수능 공부를 하는 수험생의 눈망울이 더욱 초롱초롱했을 것이고, 입사를 위해 들어본 듯한 회사에 수십 통의 원서를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크고 작은 행복과 만족감을 느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 확신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 당연히 자기 확신이 떨어지면 타인의 의견을 듣게 되고, 그만큼 나를 위한 행복 추구는 늦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부모님 말을 더 많이 들어온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짜릿함을 느껴보지 못해 나이가 들어도 타인 의존적이거나 타인이 지시하는 대로 행복을 추구해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종종 보여서 하는 말이다.


내가 행복하려면, 내가 추구할 행복에 대한 밑그림은 내가 그려야 한다.


그래도 행복하려면
돈이 중요하지 않나요?

맞는 이야기다. 나는 떼돈을 벌어본 적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 금수저도 아니지만, 장기적인 꿈과 행복 추구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려면 돈은 중요하다. 어른들이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마다 '돈' 이야기를 하시는 건 틀린 것은 아니다. 분명히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은 중요한 요소다. 이 물음에 대해 내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진 못했기 때문에 유명한 이론 하나를 소개하는데, 나도 이 이론이 맞길 바란다.


1974년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주창한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라는 것이 있다. 결론적으로,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며 인간의 기본 욕구가 충족된다면 어느 순간 소득의 증가가 행복과 정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소득의 일정 수준'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알 수가 없지만, 이 또한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미국인 1인당 실질 소득과 행복 수준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논란은 있겠지만,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반드시 '돈이 많아야 한다' 혹은 '돈은 신경쓰지 않고 내 갈 길 가겠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하자는 것이다. 열심히 경제 활동을 유지하며 나만의 행복 방정식을 찾아가는 것이 건강한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이전 08화좋은 상사를 구별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