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가는 대로 놓아주기
나에게는 지금이라도 당장 전화할 수 있는 가족이 있고, 오늘 당장 만나서 술잔을 기울일 친구들도 있지만, 그리고 내 옆에는 익숙한 책들, 손에 익은 연필, 따뜻한 커피잔, 노트북도 놓여 있지만, 눈을 감으면 바로 끝을 알 수 없는 차가운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언제 고독감을 느끼나요? 아니 거꾸로 물어볼게요. 언제 고독감을 느끼지 않나요?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연인과 함께 있을 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그 때는 내 옆에 누군가가 있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당신의 가족이, 연인이, 친구가 그런 확신을 줄 수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일거예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고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을 때에는 어떠한 소리를 듣나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나요? 나는 ‘위이잉~’하는 소리가 들려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법은 없죠. 빈 공간 속에서는 그저 ‘위이잉~’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아니 그 소리는 내 귀속에서 만들어지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위이잉~’ 하는 소리가 나는 걸까요.
눈을 감으면 어두움이 느껴지나요? 정말로 완전한 어두움인가요? 암흑이냐고요? 아닐 거예요. 가끔씩 어두움 속으로 반짝이는 게 느껴져요. 완벽한 암흑은 아니죠. 이건 빛 한줄기 없는 암실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예요. 눈 앞에서는 가끔씩 반짝이는 게 느껴져요. 우리의 시신경이 혼자 흥분해서 빛을 느끼는 거죠. 빛도 없는데 심심한 시신경이 빛을 받았다고 뇌로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시각 중추로 말이죠. 착각일 뿐이라는 거예요.
눈을 감아도 귀를 막아도 냄새는 느껴져요. 적어도 숨을 쉬고 살아 있는 한은 그렇겠죠. 이런 자극들이 정말로 완벽하게 사라지는 순간이 있을까요? 만약 없다면 상상해 보세요.
‘위이잉~’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 앞에 반짝이는 것도 없는 완벽한 암흑, 숨을 쉬지 않아도 되어서 아무 냄새도 느낄 수 없는 상황이요. 그리고 나 혼자 있는 거지요. 그러면 내가 여러 조각들로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나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지요. 저쪽에 있는 내가 나를 그리워해요. 하지만 이윽고 서로 볼 수 없는 거리까지 멀어져 가고 여기에는 나의 한 조각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그 한 조각도 부서지고 흩어지고 말아요. 점점 작게,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그렇게 마지막에 남아있는 것이 완벽한 고독감이지요.
(계속)
* 가끔은 눈을 감고 생각을 놓아주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그때그때 아무런 생각이든 떠오르게 하는 것인데요. 그러면 생각은 끈이 풀려 예측할 수도 없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어쩌다가는 이전의 흐름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다른 지점으로 건너뛰기도 하고요.
그러면 그것을 받아 적곤 합니다. 다시 읽어보면 두서도 없고 갈피도 잡을 수 없지만 그것이 규격화된 의식의 밑을 떠도는 무의식의 일부분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숨어있는 나의 무의식을 잠깐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지요.
때로는 글을 쓰다가도 심한 고독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 글은 그때 나의 펜을 자유롭게 놓아주어 써 본 것입니다.
* 사실은 쓰고 있던 소설의 결말부가 잘 풀리지 않아 잠시 시간을 끌기 위해 연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