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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Jan 15. 2022

고독함에 관하여-3

펜 가는 대로 놓아주기

새벽에 잠 못 들고 일해 본 적이 있나요? 없다면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새벽 3시, 모두가 잠이 들었어요. 내일은 휴일도 아니어서 사람들은 노곤한 몸을 쉬어야 해요. 일은 진작부터 내가 맡아서 하던 것이라서, 누가 대신 하기는커녕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고요. 마감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끝내지 못할 거 같아요. 그래도 누구를 깨울 수 없어요. 그 사람이 도와주고 싶다고 해도 그 일을 전혀 몰라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저 옆에서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만 있을 뿐. 그때 무엇을 느낄까요? 나는 끝없는 고독을 느낄 것 같아요. 밤하늘보다도 어둡고 겨울 밤보다도 차가운 외로움이요. 그냥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슬픔, 끝없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절망감, 무슨 짓을 해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처절한 포기, 이런 감정들이 모두 합해져서 한마디의 고독이란 느낌을 만들어요. 그것이 나를 조각내고 녹아버리게 하고 말거예요.


그렇다면 그런 고독함의 끝에는 무엇이 있나요? 몸서리 쳐지게 외로운 한 때를 보내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요?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허탈함이 감쌀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고통이, 혹은 절망이 기다릴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시간만이 남는 것 같아요. 흐르는 시간만요.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그러다 보면 나의 조각들이 다시 모이고, 냄새가 느껴지고, 소리가 들리고, 눈이 떠지면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인내심이 필요해요. 그 극한의 고독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에 허탈함, 절망으로 빠지지 않고 견뎌내는 나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거죠.


세상에는 나 하나밖에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살점을 떼어주신 부모님도, 내 살점을 떼어내어 만든 아이들도 도와주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요. 대부분이 그렇죠. 나 혼자 결정하고, 나 혼자 겪어야만 하는 일들이요.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누구에게 기댈 수도 없어요. 그런 것들에 마주치면 철저히 고독해지죠. 그래요. 고독함은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잘 느껴져요. 우리에게는 누구나 가까운 가족도, 친구도 있어요.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그중의 누구도 나와 같이 못해주는 경우가 많아요.


인생은 1인승 자전거예요. 누구와도 같이 탈 수는 없죠. 인생의 중간에서 배우자와 함께 2인승으로 갈아타는 것 같나요? 아니요, 1인승 두 개가 만나 같은 길을 가는 것뿐이에요. 그러다가 아이가 탄 1인승 세발자전거가 끼어들지요. 어느 정도 같은 길을 가다가 헤어져요. 그들이 또 다른 자기의 길을 만나 내 곁을 떠날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달리던 길을 영영 이탈해 버릴 수도 있겠지요.

길을 가다가 혼자서 넘어질 수도 있고, 또 넘어진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어요. 그 사람과 동행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줄 수는 있어도, 결코 그 사람과 같은 자전거에 올라탈 수는 없어요. 그래서 외로운 거예요. 나의 자전거는 오로지 내 다리의 근육으로 돌려야 하고, 또 계속 돌려야 넘어지지 않지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더라도 페달은 계속 밟아야 하는 거예요. 때로는 꽃길을 지나고, 때로는 비 내리는 벌판을 지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중간중간에는 어김없이 빛 한 점 없는 어둠이 찾아오고, 내 다리가 거꾸로 떠오르고, 내 몸이 허공으로 내던져지는 거예요. 그게 고독이고 그게 인생일 거예요.

(계속)


* 가끔은 눈을 감고 생각을 놓아주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그때그때 아무런 생각이든 떠오르게 하는 것인데요. 그러면 생각은 끈이 풀려 예측할 수도 없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어쩌다가는 이전의 흐름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다른 지점으로 건너뛰기도 하고요.

그러면 그것을 받아 적곤 합니다. 다시 읽어보면 두서도 없고 갈피도 잡을 수 없지만 그것이 규격화된 의식의 밑을 떠도는 무의식의 일부분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숨어있는 나의 무의식을 잠깐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지요.

때로는 글을 쓰다가도 심한 고독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 글은 그때 나의 펜을 자유롭게 놓아주어 써 본 것입니다.


* 사실은 쓰고 있던 소설의 결말부가 잘 풀리지 않아 잠시 시간을 끌기 위해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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