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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Jan 16. 2022

고독함에 관하여-4

펜 가는 대로 놓아주기

고독을 맞으면 어떻게 하나요? 나는 손을 멈춰요. 생각도 멈추죠. 그냥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버리는 거에요. 그리고 시간을 흘려 보내죠. 어차피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수동적인 것이지만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에요. 고독을 끌어 안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기다림 뿐. 특별히 누구를 기다리거나, 어떤 때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그 고독감이 스스로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시간이 가고 고독감은 끝나요. 그렇지요 시간만이 유일한 해결사예요. 


고독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나요? 나는 태어나기 전을 느끼고 죽은 후를 배워요. 내가 엄마 뱃속에 잉태되었을 때부터 나는 혼자였어요. 쌍둥이라면 달랐을까요?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탯줄은 나뉘어 있고 역시 1인승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까만 암흑 속, 거기서부터 나의 삶은 시작되었던 거죠. 그렇게 9개월을 견디고 태어나면 누군가 나를 반겨주고 돌봐주고 해요. 외로움을 잠시 잊고 사는 거죠. 하지만 고독이란 친구는 시도때도 없이 나를 찾아와요. 탄생의 이전을 상기시키는 것일까요.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연습시키는 것일까요. 


죽으면 얼마나 고독할까요? 만약 느낄 수 있다면요. 소리 질러도 들어줄 사람 없고, 허우적거려도 걸리는 곳 하나 없는 황량함.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내 귀에는 ‘위이잉’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아무리 동공을 벌려도 빛 한점 번쩍이지 않아요. 우주는 약과예요. 별이라도 볼 수 있어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말이지요. 죽음은 그것도 없어요. 정신을 놓아야 할거예요. 만약 정신을 차라고 있다면 정말 괴로울 거예요. 이미 엄마 뱃속에서 9개월 연습을 했잖아요. 기억이 안 난다구요? 아니요. 기억이 날 거예요. 기억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그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도 살면서 이미 몇 번 지독한 고독을 경험했을 것이거든요. 


흰 머그잔에 커피를 내렸어요. 머그잔 벽에 연한 커피 자국을 남기면서 줄어들고 있어요. 따뜻하던 온기도 점점 식어가지요. 커피는 고독을 불러내는 나팔수 같아요. 친구들과 마시면 마치 짜릿한 술 한잔처럼 흥을 돋구기도 하지만 혼자 있을 때 천천히 음미하면 그 역할이 정반대예요. 향이 무척 외롭지요. 맛이 무척 고독해요. 그렇게 혼자만의 의식 속으로 빠져들어요. 그리고 눈을 감아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아무 빛도 보이지 않고, 아무 냄새도, 커피향조차도 남지 않아요. 한번 해보세요. 이것은 행복한 고독감이에요 . 아무도 나를 간섭하지 않아요. 나는 여기에서부터 수백만 킬로 떨어진 곳으로 날아갈 수도 있고요. 저 대륙 건너에서 갑자기 발견될 수도 있어요. 누군가를 불러낼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고독한 여행이 더 감동을 주거든요. 언젠가 한번 가본 곳이라면 그 때의 경험을 다시 해볼 수도 있겠군요. 아직 못 가본 곳이라면 처음 맛보는 경험을 만들 수도 있어요. 

(계속)


* 가끔은 눈을 감고 생각을 놓아주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그때그때 아무런 생각이든 떠오르게 하는 것인데요. 그러면 생각은 끈이 풀려 예측할 수도 없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어쩌다가는 이전의 흐름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다른 지점으로 건너뛰기도 하고요. 

그러면 그것을 받아 적곤 합니다. 다시 읽어보면 두서도 없고 갈피도 잡을 수 없지만 그것이 규격화된 의식의 밑을 떠도는 무의식의 일부분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숨어있는 나의 무의식을 잠깐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지요. 

때로는 글을 쓰다가도 심한 고독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 글은 그때 나의 펜을 자유롭게 놓아주어 써 본 것입니다. 


* 사실은 쓰고 있던 소설의 결말부가 잘 풀리지 않아 잠시 시간을 끌기 위해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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