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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Jan 18. 2022

고독함에 관하여-6

펜 가는 대로 놓아주기

지금은 새벽 3시, 나는 너무 이른 커피 한 잔을 마주하고 우두커니 혼자 깨어 있어요. 내 주변에 나 말고 현실에 머물러 있는 이는 없는 것 같아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그저 귀 속에서 울리는 '위이잉'하는 소리뿐. 방의 등도 모두 꺼져 있어요. 이제 눈을 감아봐요. 그리고 우주를 떠올려요. 내 몸을 들어 그 공간 아무 곳에나 데려다 놓아요. 이제 내 몸은 떠오르고 뒤집히다가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 모르게 되었어요. 그렇게 무겁게 내 몸을 붙잡아 매어 두었던 중력도 느껴지지 않아요. 지금은 내 손끝이 어디에 닿고 있는지 내 다리가 어디를 디디고 있는지 느껴지지 않아요. 아니 내가 손발이 달려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예요. 망막에 반짝이는 자극은 별빛이라고 생각할래요. 숨을 멈춰 코끝을 간지럽히던 커피 향도 막아버려요. 이제 아무 냄새도 들어오지 않아요. 천천히 내 몸이 조각나기 시작해요. 내 영혼이 녹아내려요. 그렇게 나라는 존재는 점점 사라지고 사라지다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만 남아요. 그렇게 고독을 불러들여요. 


이런 순간이 오면 눈물부터 났어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상처들이 다시 덧나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 떠오르고, 또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했던 나 자신이 가여워서였어요. 울고 있는 나를 다독거리고,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위로하고, 나의 한 조각 옆에는 또 다른 나의 조각이 함께 있어줄 것이라 약속해 줬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렇게 쓰라렸던 상처도 나아지고 내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경험들이 진짜 일어난 일인지, 혹시 착각은 아니었는지, 겪지도 않은 일에 사무치게 느꼈던 감정인지 헷갈리게 되길 바랬던 거죠. 그저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이제는 실감할 수도 없는 그런 경험 말이에요. 심지어는 심한 상처가 남긴 도드라진 흉터들을 만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정할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해야 아픔이 씻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시간이 흘러요. 그러다 보면 멀리서 내 조각들이 다시 돌아와요. 그것들이 하나로 뭉치고, 호흡이 돌아오고, 잊었던 커피 향이 다시 느껴져요. 눈앞은 붉어지고 방안의 시계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와요. 이제 겨우 온전한 혼자가 되었어요. 그래도 나 혼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그래서 외롭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말이에요. 나는 여전히 나 혼자만의 길을 1인승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비틀비틀 나아가야 해요. 그 길을 벗어나야 할 순간이 오면 나는 죽음이라는 최악의 고독의 늪으로 빠져야 할 거예요.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어요.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제 아내예요.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녀의 손을 지그시 잡아요. 우리는 잠시 그렇게 멈춰 있어요. 그래요, 내가 잊고 있었던 게 있어요. 나는 고독할 때마저도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에요. 내 옆에는 내가 사랑하는, 아니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도 고독하겠지만 그것을 감추고 오히려 움츠리고 있는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줘요. 그들도 나처럼 아프겠지만 아픈 내색하지 않고 나를 안아주고 있어요. 그들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지만 오히려 나의 상처에 공감하며 약을 발라 주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배워요. 나는 고독하지만 세상은 고독하지 않다는 것을요. 내가 작아져 사라져 가고 있을 때에도 그들은 나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들이 했던 만큼 나도 그들 곁에 있어줘야 한다는 것을요. 


이제 당분간 고독을 잊어보려고 해요. 스스로를 가두고 학대했던 강박감에서 벗어나 두 팔을 벌려 보려고 해요. 그리고 벌린 두 팔 사이로 만들어지는 내 품에 안기는 어떤 사람이라도 꼭 껴안아 주려고 해요. 그들이 울고 있으면 같이 우는 대신 그 눈물을 닦아주려 해요. 그들이 아파하면 같이 고통을 느끼는 대신 치료해 주려 해요. 그들이 힘들어하면 그 짐을 대신 지어주려 해요. 그들을 가리고 있는 어두움의 장막을 걷어 따스한 빛을 쬐게 해주려 해요. 그것이 그들이 나에게 해주었던 것들이니까요.

(끝)


* 제가 가끔 하는 '생각 놓아주기'는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이 상상하는 과정입니다. 생각의 흐름에 아무런 제약도 가하지 않고 그냥 생각을 제 마음껏 흘러가게 놓아두는 것입니다. 보통은 논리라는 것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한 가지 생각을 구성하는 어떤 부분에 잠시 관심이 멈추면 그것에 관련되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 작용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가 뜬금없는 사고의 비약 같은 것도 일어납니다. 바로 전 생각과 지금 생각에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말 그대로 '생각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상태'말입니다. 이런 사고의 전개는 흔히 제정신이 아닌(?) 분들에게서 잘 나타납니다. 이 글은 그런 것을 받아 적은 것이라서 독자님들의 눈에는 제가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부제가 '펜(생각) 가는 대로 놓아주기'입니다. 논리와 이성에는 의도적으로 담을 쌓으려는 의도였기 때문입니다. 글이 너무 산만하고 혼란스럽다고 생각하실까 봐 드리는 변명입니다. 혼자만의 일기장에나 적어야 할 푸념일지도 몰라 죄송하기는 하지만 브런치에 일기를 실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없으니 만큼 용기 내어 한 번 끄적여 봤습니다.^^


* 사실은 쓰고 있던 소설의 결말부가 잘 풀리지 않아 잠시 시간을 끌기 위해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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