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함에 감사함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조금 특이하였다. 여러 가지 크기의 박스가 쌓인 것처럼 다양한 육면체가 서로 합쳐진 듯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커다란 직육면체가 가운데 위치하고 그 위에 그보다 작은 직육면체가 뒷줄을 맞추어 쌓아 올려져 이층을 구성하였다. 그 양측에는 비대칭으로 작은 정육면체가 들쭉날쭉 날개처럼 붙어 있어 우리 가족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었다. 건물의 외벽에는 다양한 모양의 조명등이 달려 있었다. 밤이면 그것들이 스스로의 몸통과, 그리고 인접한 골목길을 은은히 비출 수 있었다.
건장한 성인이라도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없을 만큼 적당한 높이로 쌓인 담벼락 안에는, 넓지는 않으나 아버지에 의해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정원이 있었다. 정원의 바닥은 특이하게도 한쪽 면의 가운데가 뜯겨나간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그 뜯겨나간 바닥은 작은 바위 계단을 통해 어두운 차고로 향하였다. 물론 정원은 무심하게 흙바닥을 드러내거나 삭막하게 시멘트로 덮여있지는 않았다. 그곳에는 키를 맞춘 고운 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 잔디밭의 모서리를 감싸듯 소나무 몇 그루와 향나무, 목련, 단풍나무, 고무나무, 배나무, 앵두나무,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앉은뱅이 나무들이 줄을 지어 심어져 있었다. 중간중간 어느 강바닥에서 찾아 옮겨왔음직한 작은 바위와 돌멩이들이 여백을 메꾸었다. 개나리, 코스모스, 장미, 작약 등의 꽃들도 즐비하게 심어져 있었는데 이러한 나무와 꽃, 그리고 돌의 배치가 아버지의 심오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집을 짓는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계절에 따라 나뭇잎이 어떻게 달리고 꽃들이 어떤 순서로 피었는지, 당시로서는 너무 어렸던 나에게 관심이 대상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내 누이, 그리고 동생과 맨발로 그 정원을 뛰어다니면서 애꿎은 나무줄기를 흔들고 죄 없는 꽃잎을 따서 날리며 아버지의 눈총을 받고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널따란 거실에 난 큰 미닫이 전창(全窓)은 정원을 향해 열렸다. 다시 말해 창문을 열면 정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무와 꽃의 향기를 담아 거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꾸로 그 내음에 혹한 아이들은 창문을 통해 정원으로 뛰어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정원과 집안을 오가며 뛰어놀았다. 창문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집의 모든 방은 햇볕을 잘 통과시킬 수 있는 널찍한 창들이 많았다. 그것이 집안 내부를 환하게 유지하고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무심한 듯 보였으나 내심은 그렇지 않았었나 보다. 정원의 한가운데에는 어울리지 않게 네모난 보도블록들이 멋들어지게 다이아몬드 형태로 비틀어져 징검다리처럼 띠를 이루며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흙바닥에 발이 더럽혀지지 않고 정원을 걷고 싶어 하던 어머니를 위한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그 길을 따라 정원을 가로질러 차고 위 장독대를 드나드셨다. 그리고 끼니때마다 퍼담은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그녀를 사랑해주던 아버지와 자식들의 음식을 만들어 내셨다. 해가 기웃기웃 질 무렵이면 어머니가 끓이신 된장찌개 냄새가 정원에까지 스며들었다. 그것은 우리들의 허기를 자극했고 "이제 그만 놀고 들어와 저녁 먹어라."는 어머니의 호출이 들리기 무섭게 우리는 씻지도 않은 더러운 발로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그 집이 어느 순간 기억에 떠올려졌다. 그것은 이미 중년에 이른 내가 새로이 살 집을 지으려 옛집을 상기하려고 하여서도, 많은 이들이 인생의 중반기에 흔히 경험하듯 어린 시절의 향수에 젖어 그때를 회상해 보고자 하여서도 아니다. 나의 일에 치열하게 집중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그 집이 생각난 것이다. 나는 어떤 환자의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치료하기 매우 어려운 질환을 가진 환자였고 나는 지금까지 나와있던 여러 가지 수술 방법들을 조합하여 환자에게 최적화된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낸 해법들은 복잡한 퍼즐의 아귀가 딱 맞지 않는 것처럼 찜찜하였다. 한 모서리가 비거나 겹친 것처럼 제대로 들어맞지 않았다. 이것이 만족스러우면 저것이 부족하고, 또 그것을 맞추고 나면 다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어정쩡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경우를 타개하는 방법을 하나 알고 있었다. 내게 익숙한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어떠한 기존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선입견을 배제하고 내 앞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를 펼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시도하였다. 하얀 백지 위에 파란 벽돌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