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를 찾아서' 되살리기 프로젝트
이 그림을 한 번 보시죠. 역시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입니다만 어딘가 좀 다르죠? 우선 인물들의 생김새나, 표정, 움직임의 세련됨이 좀 떨어져 보입니다. 하지만 색상은 더 화려하고 경계선은 훨씬 뚜렷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레오나르도가 그린 것이 아닙니다. 조반니 피에트로 리졸리가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1520년 경에 유화로 모사한 작품입니다. 그는 잠피에트리노라고도 불리는데 최후의 만찬이 제작되는 동안 레오나르도의 제자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와 함께 작업용 비계에 올라 함께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직접 그림 제작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레오나르도의 제자로서 그의 의중을 잘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에 의해 그려진 이 모사작은 지금까지 제작된 어떠한 모사작들보다도 원작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작품일 것이라 여겨집니다.
잘 아시다시피 최후의 만찬 원본은 잘못된 채색 방법때문에 초기부터 물감이 통째로 벽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급격히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이 완성되고 겨우 20년이 지난 뒤, 즉, 레오나르도가 살아 있을 때에도 이미 훼손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알아보기 힘든 그림이라는 말을 수차례 들어왔으며 1550년 경의 바사리는 심지어 '빛바랜 얼룩'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림의 정확한 묘사와 선명한 색채가 소실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이 그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약 22년 후) 그림 제작에 집적 참여한 레오나르도의 제자가 모사한 그림이라면 사진으로 찍는 것 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나마 가장 그럴듯하게 원본을 보여줄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어질 그림에 관해 설명할 때 잠피에트리노의 모사본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레오나르도의 원본은 오랜동안 말못할 풍파를 겪었습니다. 훼손된 그림을 복원시킨다는 미명하에 한참 실력이 떨어지는 여러 화가들에게서 모욕에 가까운 변질과 파괴를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후에 다시 설명드릴 예정입니다.
자, 그럼, 보다 선명한 잠피에트리노의 모사본을 바탕으로 댄 브라운이 주장하는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다빈치 코드'의 진위 여부를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더욱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필요한 부위를 확대하여 보겠습니다.
1) 예수의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사도 요한으로 알려져 있으나 외모는 여성이고 가슴이 있다. 이 여성의 정체는 마리아 막달레나(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녀는 예수의 바로 옆,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는 혼인하여 아이를 낳았다.
이 주장에 대해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수의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사도 요한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등장 인물들의 이름을 모두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던 폰테 카프리아스카의 모사본에서도 이 인물의 발치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성 요하네스, 즉 요한입니다.
또한 요한 복음서에 나온대로 유월절 만찬시에 "...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등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였다..."라고 나와있듯이 요한은 원래 예수의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댄 브라운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했던 인물은 역시 사도 요한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최후의 만찬의 중요한 참석자인, 그리고 원래가 예수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요한을 마리아로 둔갑시키면서까지 그녀를 몰래 이 자리에 출연시켜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마리아는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면 안되는 것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제자들의 성찬'이란 그림을 보실까요? 예수가 제자들을 위해 거행하고 있는 성찬식의 왼쪽 아래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막달라 마리아가 보입니다. 정말로 레오나르도가 그녀를 그림에 등장시킬 의도가 있었다면 이미 선례가 있듯 이러한 방식으로 함께 그려 넣을 수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요한이 원래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어서 가슴이 돌출되어 있는지 여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슴 부위와 비교해 볼 때 '와 정말 가슴이 여자처럼 솟아 있구나!'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외모가 여성스럽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사도 요한은 예수의 제자들 중 가장 어리며 예수가 가장 사랑한 제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미 레오나르도 이전 여러 화가들의 그림에서 여성처럼 곱고 가녀린 외모로 표현되는 경우가 흔하였습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레오나르도는 원래 남성을 여성의 외모처럼 그리는 예가 드물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그가 그린 '세례자 요한'이라는 작품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내려 주었던 분명한 남성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보고 그림 속 세례자 요한의 얼굴과 몸이 틀림없는 남성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저명한 미술 감정가였던 버나드 베런슨은 이 그림을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왜 이 살집 있는 여성이 남성미 넘치는 그을린 피부의 세례자 요한인 체하고 서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왜 위를 가리키고 자기 가슴을 만지면서 히죽거리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사도 요한도 레오나르도가 세례자 요한을 그려냈듯 중성적으로 성구분이 모호하게 그려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가장 중요한 예수와 마리아의 혼인 여부는 차차 거론하도록 하겠습니다.
2)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윤곽을 잇는 선은 M자 형태를 이룬다. 이 M은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 또는 결혼(Matrimony)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가 주장하는 소위 '막달라 마리아'(사실은 사도 요한)와 예수 사이에는 M자가 만들어 지는데요, 가장 큰 원인은 삼각형으로 그려진 예수와 사도 요한 사이에 V자 형태의 간격이 벌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다른 화가들이 그렸던 최후의 만찬 그림들에서는 보통 예수와 사도 요한 사이가 아주 긴밀하게 그려져 있지요. 요한 복음서의 내용에 기초하여 요한이 예수의 품안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흔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의 작품에서는 웬일이지 그 사이가 민망할 정도로 비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 앞서 설명드린 대로 이 그림의 장면이 예수가 유다의 배신을 예언하고 적어도 몇 초 후의 장면을 그려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서에 나와 있는 "...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등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쭤 보게 하였다...." 는 장면을 레오나르도가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더욱 극적인 구조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레오나르도가 되어 그림을 그린다 생각하고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사도 요한을 사이에 두고 한 자리 건너 앉은 예수님이 유월절 만찬 시간에 맛나는 식사를 하시다 말고 갑자기 "너희들 중 한 명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걸걸하고 직선적인 베드로가 사랑하는 예수님의 말을 듣고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물론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게 누구입니까?"라고 따지듯이 되물었겠지요? 하지만 요한 복음에서는 직접 물어보지 않고 요한을 시켜서 대신 여쭤보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지금 예수님 품에 안겨 졸고 있네요. 당신이 베드로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졸고 있는 요한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깨우면서 "이봐, 요한, 뭐하고 있어? 빨리 예수님께 그 제자가 누구인지 물어봐 달라고."하며 채근하지 않았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작품은 바로 그 순간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품에 안겨 있던, 혹은 등에 기대어 있던 요한의 몸은 베드로 쪽으로 당겨져 있으며, 요한의 귀는 베드로의 입에 가까워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와 요한의 밀착이 예수와 요한 사이에 커다란 빈 공간을 만들어 내며, 예수의 왼쪽에서 놀라 물러나고 있는 큰 야고보의 자세와 합쳐져서 예수를 중앙에 외로이 떨어져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그림으로 향하는 시선이 자연스레 예수에게 집중되게 하며 배신을 당할 예수의 외로운 운명과 앞으로 닥칠 십자가의 고난을 예언하는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막힌 표현이죠?
따라서 '다빈치 코드'가 주장하는 M자의 비밀은 막달라 마리아를 상징하기 위해서도, 숨겨진 결혼설을 은유하기 위해서도 아닌 것입니다. 레오나르도가 고심하여 만들어낸 천재적인 구도를 보고 음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억지로 만들어 낸, 한 번 듣고 웃어 넘길 만한 이론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말이죠.
(계속)
# 참고자료:
1. 최후의 만찬(레오나르도 다빈치). 하이덴라이히 지음/최승규 옮김/한명/2000년 12월
2. 다 빈치와 최후의 만찬. 로스 킹 지음/황근하 옮김/세미콜론/2014년 05월
3. 다 빈치 코드. 댄 브라운 지음/양선아 옮김/베텔스만/2004년 07월
4. 다 빈치 코드의 비밀. 댄 버스틴 엮음/곽재은, 권영주 옮김/루비박스/2005년 3월
5.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다빈치 코드의 비밀). 마가렛 스타버드 지음/임경아 옮김/2004년 08월
6. 서양 미술사. E. H. 곰브리치 지음/백승길, 이종승 옮김/도서출판 예경/1997년 5월
7. 세계명화비밀. 모니카 봄 두첸 지음/김현우 옮김/생각의 나무/2002년 4월
8.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재원아트북 편집부 지음/재원/2004년 09월
9. 레오나르도 다 빈치. 프랑크 죌너 지음/최재혁 옮김/마로니에북스/2006년 11월 9
10.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의 천재. 프란체스카 데블리니 지음/한성경 옮김/마로니에북스/2008년 0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