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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Feb 13. 2022

[한쪽 소설] 울보들아 들어라 -1

마키아벨리가 고(告)함

울보들아, 잘 들어라. 나 니콜로 마키아벨리(Nicolo Machiavelli)가 너희에게 고한다. 

너희는 나를 악마의 교사(敎師)라 칭한다. 내가 권력자들의 편에 빌붙어 그들이 너희를 속이고 부려 먹도록 간악(奸惡)한 지혜를 주었다고 욕한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독재자라도 차마 대놓고 그러지 못했던, 체면과 윤리로 묶여 있던 목줄을 풀어놓았다고 비난한다. 그들에게 제한 없는 면죄부를 주었다고 폄훼(貶毁)한다. 그들로 하여금 너희를 핍박하고 압제(壓制)하는 데에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연민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마음껏 폭주하게 만들었다고 증오한다. 너희는 그렇게 나를 깎아내리고 주저앉히고 돌을 던졌다. 그래서 너희들이 나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이더냐?  


나는 지금 내가 예견하고 희망했듯 지옥에 떨어져 찰나를 영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너희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내가 지은 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생전에 너희들에게 말하였다. 돼지들이 살고 있는 천국보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살고 있는 지옥에 가고 싶다고. 나는 위대한 선인(先人)들의 등 뒤에 서서, 발꿈치를 들어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어깨너머로라도 훔쳐볼 것이라고. 그것이 내가 이승에 머물 때에 한 일이고 지옥의 불구덩이에 엉덩이를 담그고도 하고 싶은 일이라고. 


너희들 중 많은 이가 나를 알고 있다. 나를 모르고 있는 이들이라도 나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 내 이름은 너희가 그리 애지중지 배우는 교과서에도 들어 있고, 너희가 매일 접하는 뉴스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심지어는 저희들끼리 찧고 까부는 시시껄렁한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이들의 허망한 농담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너희들은 내 이름이 나오면 틀림없이 내가 쓴 책 한 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호머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단테의 신곡,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처럼 나의 이름과 한 묶음으로 묶여 뇌리를 떠돌고 혀끝을 맴돌 것이다. 마키아벨리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더냐? ‘군주론(君主論,  Il Principe)’이다. 내 이름과 군주론은 헨델과 그레텔, 로미오와 줄리엣, 장화와 홍련처럼 하나만 따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끈끈하게 묶여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군주론을 아느냐? 그것이 언제, 누구를 위하여, 왜 쓰여졌는지 아느냐? 그것이 담고 있는 사상과 그것으로 전하려고 했던 나의 이념을 아느냐? 내가 쓴 다른 책들이 있다는 것도 아느냐? 그것들이 온전한 내 목소리로 무슨 외침을 지르고 있었는지 도대체 알고 있느냐?


어쭙잖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손을 들고 나서서 말할 것이다. 세상의 독재자들에게 용기와 면죄부를 주고, 그들이 인민(人民)을 짓밟고 영악하게 조정하는 빌미를 준 얄팍한 생각이 아니더냐고. 양의 가죽에 늑대의 영혼을 담아 그것의 젓을 빨려 다가가는 무지(無知)한 어린양들을 유혹하고, 해치고, 결국 그들의 영혼과 고기를 탐하려는 흉책(兇策)이 아니더냐고. … 너희들은 모두 맞았고 또한 모두 틀렸다. 너희들은 누구나 나를 알고 있지만 나를 전혀 모르고 있기도 하다. 뾰족하게 돋아난 빙산의 일각을 보고 시커먼 바닷속에 가라앉은 묵직한 9할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계속)


* '유다를 찾아서' 되살리기 프로젝트가 '유다를 찾아서'를 되살리기는커녕 함께 망해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ㅠㅠ 그래서 잠시 쉬고 다른 글을 하나 써볼까 해요. 이쯤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진중하게 한 가지 일을 밀어붙이는 성격이 아니고, 진력을 잘 느끼는 데에다가 하다 말고 여기저기 넘보는 타입이라서요.

이 글은 연세대 신학대학 김상근 교수님이 쓰신 책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마키아벨리',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메디치가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 '로마사 논고'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소설 비스무레하게 써보는 글이에요. 마키아벨리의 전기처럼 읽으실 수 있으니 부담 없이 재미있게 즐겨주세요.^^

'유다 되살리기'는 기분 내키는 대로 금방 또 연재할 겁니다. 브런치에서라도 그냥 제맘대로 자유롭게 살아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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