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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Feb 14. 2022

[한쪽 소설] 울보들아 들어라 -2

마키아벨리가 고(告)함

내가 이탈리아 반도 피렌체란 도시에 살던 때에 나의 조국 이탈리아는 힘없는 허약한 나라들로 갈갈이 찢겨 있었다. 북쪽에는 밀라노가, 동쪽에는 베네치아가, 남쪽에는 나폴리와 교황청이 무너져 가는 나라를 돌보지 않고 저희들의 욕심을 위해 이합집산하고 있었다. 피렌체도 마찬가지였다. 형제를 견제하기 위해, 동족을 치기 위해 소중한 땅 안으로 프랑스를 불러들이고 신성 로마 제국을 끌어들이고, 스페인의 함대를 맞아들였다. 우리들의 도시는 그들의 대포에 무너지고, 이탈리아 반도는 그들의 말밥굽에 짓밟혔다. 그들이 지나간 길의 흙먼지가 걷히면 그곳은 우리 동포들이 흘린 피로 젖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반성할 줄 몰랐다. 피가 통하지 않아 썩어가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내면서도 우리는 심장만 남아 뛴다면 살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였다. 떨어져 나간 팔과 다리가 목을 죄어오는 그물을 막아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나는 프랑스왕 루이 12세가 밀라노 왕국을 무너뜨릴 때에도, 탐욕에 가득찬 알렉산드르 6세와 그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가 우르비노를 침공할 때에도, '전사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전쟁을 일삼으며 교황령을 넓혀갈 때에도 그들을 마주하며 설득하였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비릿한 피냄새를 맡으면서도 무서워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창끝이 나의 고향을 향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리고 피어오른 불길이 나의 조국에서 하루빨리 진정되길 바랬다. 너희는 몰랐을 것이다. 내가 그들과 동시대에 태어나 지척의 공간에서 함께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을, 내가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유럽 땅 한 구석에서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아니, 이렇게 얘기해도 너희들은 실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탈리아 땅은 너희들과는 너무 멀고, 우리의 역사는 너희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너희는 내가 말한 이들을 잘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알려주마. 너희가 잘 아는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다비드’를 조각하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로 달려 한 나절 거리에서 내가 동경하던 체사레 보르자의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살고 있는 때에 가장 위대한 화가로 불리게 될 그도 그 당시에는 붓을 놀리지 않고 있었다. 일거에 많은 적군을 소탕할 수 있는 연발 대포를 생각하고,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탈 것을 만들려는 헛된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이 그렇게 추앙하고 격찬해 마지 않는 그들을 부리고 그림을 그리게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전 그들을 입에 담은 적도 내가 지었던 많은 책들에 올린 적도 없다. 내가 지은 그 많은 문장들 속에서도 단 한 번 그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으리라. 나는 그들보다 큰 꿈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사랑하는 조국, 이탈리아를 구하고, 도탄에 빠진 이탈리아의 시민들을 구하고, 나와 동시대, 아니 더 나아가서는 내 후손들에게 똑같은 비극이 덮치는 것을 막아주려 하였다. 나는 오히려 너희가 권력자에게 유혹되고, 죄책감에 고민하여 영혼을 갉아 먹히는 긴 밤을 막아 주려 하였다.


하지만 너희들은 그런 나를 오히려 어둠의 자식이라 비난하고 증오한다. 지금 너희가 받는 고통이 마치 나의 간계(奸計)한 사주에 의해 그리 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악마의 조언자(助言者)’라 손가락질 하고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았었더라면 세상이 이리 어둡지 않았을 것이라 한탄한다. 그것이 가당키나 한 말이더냐?


나는 지금 슬피 울고 있다. 내 피부를 그스르고 있는 지옥의 불길이 뜨거워서도, 나의 살을 꿰뚫고 있는 달군 쇠꼬챙이와 나의 뼈를 으스러지게 옥죄고 있는 녹슨 사슬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사람이다. 너희들은 나의 목소리를 제 멋대로 알아듣고 나를 ‘악마의 사주인(使嗾人)’으로 치부하였고,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권모술수를 일깨워 준 음흉한 참모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요즘 득세하고 있는 어줍지 않은 인생의 교사(敎師)들은 나의 책 ‘군주론’을 얄팍한 처세술의 교과서로 둔갑시켰다.


나는 억울하다. 그래서 이렇게 너희들에게 외친다. 나를 알고 나를 물어뜯으라. 내가 외치는 소리를 똑바로 듣고 나에게 돌을 던지라. 내가 너희에게 정녕 그러한 사람이거든 나도 나의 몸뚱아리를 너희에게 맡기겠다. 너희의 이빨에 내 살점이 뜯겨나가고 너희가 던진 돌멩이로 내 뼈가 으스러져도 나는 너희를 원망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의 말이 조금이라도 너희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면 그 때는 나의 진심을 이해하라. 나를 매도하지 말아라. 내 말을 가슴속에 새겨라. 

헛되이 울지 마라. 세상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니 울보들아 잘 들어라. 이제부터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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