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가 고(告)함
나의 시대, 피렌체와 이탈리아를 알기 위해서는 메디치 가문(House of Medici)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너희들도 이름은 이미 들어 봤을 것이다.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보티첼리,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아우르며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집안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피렌체는 건설되지 않았을 것이며 중세의 암흑은 결코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방패처럼 보이는 패널에 여섯 개의 둥근 공(palle)이 박혀 있는 문장(紋章)을 사용하였다. 메디치가 이탈리아어 메디치나(Medicina, 약, 의술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사람들은 그 가문의 조상들이 의약 관련 직종에 종사했었기 때문에 둥그런 환약(丸藥)을 문장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가문을 키운 은행업을 상징하는 동전의 모양이라고도 한다. 한미한 집안에 그럴듯한 전통을 입히기 좋아하는 이들은. 신성 로마제국을 열었던 샤를마뉴(Charlemagne)의 충성스러운 장군이었던 아베라르도 데 메디치(Averardo de'Medici)가 가문의 조상이며, 그가 철퇴를 휘두르는 거인 괴물을 막아내다 생긴 방패의 상처 자국으로 가문의 문장을 삼았다고도 한다. 하지만 '팔레'가 무엇에서 시작되었든 무슨 상관이랴. 그들이 350년 동안 피렌체를 지배하였고 이탈리아를 좌지우지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피렌체의 기록에 등장한 것은 12세기부터이다. 하지만 그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초 조반니 디 비치(Giovanni di Bicci de'Medici, 1360-1429)부터였다. 시장 한켠에 좌판을 펼치고 돈을 거슬러주던 미천한 환전상이었던 그는 피렌체에 메디치 은행을 열었다.
조반니 디 비치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피렌체의 조그만 점방(店房)을 교황청의 주거래 은행으로 키워냈다. 돈을 굴리던 그가 생명처럼 여겼던 것은 신기하게도 돈이 아니었다. 고객의 절대적 신뢰였다. 한 닢의 동전 값도 되지 않을 그깟 신뢰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넘겨짚지 말아라.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들려주마.
메디치 은행이 아직 동네 밖을 넘보지 못할 정도로 찌그러져 있던 1402년경이었다. 돈을 빌려달라는 손님 하나가 찾아왔다. 그의 이름은 발다사레 코사(Baldassare Cossa)였다. 나폴리 출신의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해적질이나 일삼던 자였다. 일찍이 그는 당시 세계 최고 대학으로 일컬어지던 볼로냐 대학의 법학박사 학위를 몰래 사들인 이력도 있었다. 요즘 너희들이 잘 쓰는 말로 '쓰레기'같은 인간이었다. 한 번 더러워진 손은 다시 더럽히기 어렵지 않다. 가짜 학위를 거둬들였던 그는 이번에 1만 두카트라는 거금을 빌려 추기경직조차 매입할 요량이었다. 교회가 타락했던 그때에는 가능했던 일이었다. 추기경에 오른 그는 승승장구하였고 마침내 1410년 교황 요한네스 23세로 등극하였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기스문트(Sigismund)는 종교적인 타락과 전임 교황의 독살 혐의를 물어 그를 폐위시키고 감금하였다. 그리고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였다. 요한네스 23세는 이미 권좌를 잃었고 빈털터리였다. 그가 행한 악행으로 빚어진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뻔뻔하게도 메디치 은행의 수장 조반니 디 비치에게 손을 내밀었다. 벌금을 지불할 수 있게 대출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너희들이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그리고 조반니 디 비치는 어떻게 했겠는가? 조금 더 들어보라.
조반니 디 비치는 웃으며 대출을 허락했다. 영원히 되돌려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 말이다. 그리고 폐위된 교황을 거두어 살피었다. 다음 해에 그가 죽자 피렌체의 두오모에 화려한 영묘를 꾸며 누울 곳을 마련해 주기까지 하였다. 그것도 거장 도나텔로를 시켜서 말이다. 은행은 당연히 거금을 잃고 막대한 부실 채권을 떠안았다. 어렵게 일으킨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그것을 조반니 디 비치가 고집한 것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그는 누구도 쉽게 얻지 못할 것을 일거에 이룩하였다. '메디치가는 어떠한 고객도 저버리지 않는다'는 신뢰를 만들어 냈다. 각국의 왕실과 교황청이 고객에 대한 그의 충정에 탄복하였다. 그리고 각자 큼지막한 돈 주머니를 싸들고 메디치 은행을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꿈꿨던 대로 교황청은 물론 유럽의 난다 긴다 하는 왕실과 귀족들의 돈을 거둬들였다.
너희들은 알고 있는가? 지금도 피렌체 두오모의 박물관에는 '세례자 요한의 손가락'이라는 것이 소장되어 있다. 큰돈을 떼먹은 교황 요한네스 23세가 미안했는지 죽기 전에 메디치 가문에 유물로 남긴 것이다. 나는 그것의 진위를 따지고 싶지 않다. 그것이 성스러운 요한의 손가락인들 아닌들 어떠하랴. 그것은 한 때 가톨릭 교회를 지배했던 교황이, 아니 세상이 메디치가에 바친 찬사였다. 메디치가가 세상과 맺은 인연을, 그리고 그들과 체결한 계약을 목숨 바쳐 지킬 것이라는 약속의 상징이었다. 그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한 메디치가는 그의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표상이었다. 그것은 성 요한의 손가락이라기보다는 메디치가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신뢰의 징표로 삼은 것이었다. 참으로 소름 끼치지 않는가?
울보들아, 너희에게 묻는다. 너희는 이제껏 누구에게 그런 믿음을 심어준 적이 있더냐? 정의는 사라졌고, 의리는 죽은 세상에 태어났다는 핑계로 너의 벗들을 감탄고토(甘呑苦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동지의 등에 칼끝을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가? 너의 몸을 만들어준 부모를, 피를 나눈 형제자매들을 해코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메디치가가 부를 이루고 권력을 쥐었다 해서 그들을 시기하지 말아라. 그들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 자신을 먼저 희생함으로써 기회를 잡은 것이다. 자신을 먼저 해침으로써 존경을 불러낸 것이다. 메디치가는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 나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