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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Feb 17. 2022

[한쪽 소설] 울보들아 들어라 -5

마키아벨리가 고(告)함

조반니 디 비치가 그의 생애 동안 가장 잘한 일은 메디치 은행을 세운 것도, 그것을 피렌체의 3대 은행으로 키운 것도, 세상의 신뢰를 독점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가장 내세울만한 일은 그가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1389–1464)라는 아들을 낳고 키운 것이다. 코시모는 그의 아버지가 교황의 자리를 잃은 요한네스 23세에 대한 대출을 주저할 때 그에게 용기를 준 인물이다. 고작 3만 5천 플로린이라는 푼돈으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굳건한 메디치가의 신용을 사 온 사람이다. 그것이 그의 나이 겨우 25세 때였다. 세상과 겨루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거래를 멋지게 성사시킨 것이다.


코시모 데 메디치 (Cosimo de'Medici), Agnolo Bronzino


그러나 그것은 찬란한 그의 업적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는 '피렌체의 메디치가'를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로 키웠다. 이탈리아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를 때가 되면 그의 동지들은 물론 적들조차 그를 찾아와 그의 결정만을 기다릴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이탈리아의 아버지'라는 존칭까지 얻게 되었다.


그는 일찍이 깨달았다. 메디치가의 사업이 커질수록 지키기만 하는 신뢰는 또 다른 창끝이 되어 자신을 겨눌 수 있다는 것을.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난세에서 그와 그의 아버지가 키워낸 가문과 도시를 지켜 나가려면 때로는 변덕을 부려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이제 단순한 사업가가 아닌 그가 거느리는 거대한 조직의 외로운 지도자라는 것을.


1420년 조반니 디 비치는 아들 코시모에게 은행을 물려주었다. 피렌체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로 성장한 메디치 은행의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시선은 따가웠다. 특히 피렌체 귀족들은 덩치를 키워나가는 신흥 귀족 가문을 견제하였다. 조반니 디 비치는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다른 이들의 질투가 자신들에게 지워지기 힘든 얼룩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의 아들이 자중하고 또 자중하기를 바랐다. 그는 죽으면서까지 이런 유언을 남겼다. 

"다른 사람들이 널 주목하게 만들지 말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라. 만약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면 꼭 필요한 곳에만 너의 모습을 보여주어라.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절대로 대중들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마라." 


1429년 조반니 디 비치는 눈을 감았다. 이제 가업은 코시모에게로 넘겨졌다. 코시모는 아버지의 유언을 잘 따랐다. 한 마디의 말도 신중하였고, 한 자락의 행동거지도 겸손이 묻어났다. 그는 피렌체 시내에서 이동할 때에는 절대로 말을 타지 않았다. 고귀한 신분으로 추앙받으면서도 지나다니는 시민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냥 걷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모자를 벗어 인사했다. 장거리 여행이 필요한 경우에도 말이 아닌 당나귀를 탔다. 누군들 이런 그에게 애정과 존경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선행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솔선수범하였다. 피렌체시가 운영하는 총예산의 몇 배나 되는 돈을 기꺼이 기부했던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의 은인자중(隱忍自重)은 한 때 메디치를 경계했던 우차노 가문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였다.


베노초 고촐리, 동방박사의 행렬, 1459-61, 가운데 검은 옷, 빨간 모자를 쓰고 밤색 나귀를 탄 인물이 바로 코시모 데 메디치를 그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질투는 물을 안 주어도 잘 자라는 잡초'였다. 피렌체의 여러 보수 기득권 세력들은 아직도 메디치가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중 가장 시기심을 드러냈던 것은 피렌체 정계를 좌지우지하던 알비치 가문이었다. 알비치의 수장 리날도(Rinaldo degli Albizzi, 1370-1442)는 당시의 기록에 따르자면 "남의 비판을 참지 못하고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신경질적으로 민감함" 사람이었다. 지도자로서의 자격도 없고 시민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막강한 재력이 있었다. 돈을 바탕으로 세습 귀족 세력들의 힘을 모았고, 그것으로 얌전히 숨을 죽이고 있던 코시모에게 시비를 걸어 여러 번 날카로운 칼끝을 겨누었다. 현명하고 자비롭던 원로인 우차노가 그 칼끝을 몸으로 막아주었다. 이유 없는 지원(支援)은 없다. 우차노의 도움은 코시모의 겸손과 선행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러나 우차노도 영원히 살 수 없었다. 그가 죽고 나자 알비치의 도발을 막아줄 방패막이는 사라졌다.

(계속)  


* 참고자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김상근 저/21세기북스/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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