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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Feb 18. 2022

[한쪽 소설] 울보들아 들어라 -6

마키아벨리가 고(告)함

우차노가 사망하자 알비치는 제맘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수족을 시뇨리아(signoria, 시 정부; 市政府)의 대표인 곤팔로니에레(대통령쯤의 직위)의 자리에 앉히고 코시모 제거에 앞장섰다. 눈치 빠른 코시모는 자신을 노리는 알비치의 독기(毒氣)를 진작에 눈치챘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고 그는 결단을 내렸다. 1431년 5월 피렌체에서의 모든 활동을 접고 그의 별장이 있는 한적한 시골로 낙향해 죽은 듯 기척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집요한 알비치와 시기심에 광분한 귀족들의 손에 놀아나던 시뇨리아는 온갖 누명을 씌워 그를 피렌체로 소환하였다. 코시모가 선택할 길은 두 가지였다. 그대로 다른 나라로 내빼거나 그를 집어삼키려는 이들의 냄새나는 아귀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그는 고민했다. 피렌체에는 적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책임져야 할 메디치가의 식솔들과 사랑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그는 기꺼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위험천만한 길을 택하였다. 코시모는 피렌체로 향하는 당나귀에 올라탔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화려한 피렌체의 저택이 아닌 시뇨리아 정청(政廳)의 차디찬 종탑 감옥이었다.


베키오 궁전. 피렌치 시 시뇨리아의 정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위에 뾰족한 종탑이 보이죠? 아마 저기에 감옥이 있었나 봅니다.


영어(囹圄)의 신세가 된다면 어딘들 춥고 배고파지지 않으랴. 그러나 코시모에게는 더 혹독하였다. 시원한 물 한 모금도, 따뜻한 음식 한 조각도 안심하고 입에 댈 수 없었다. 독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피렌체의 다른 귀족들과 같은 종류의 인물이었다면 이미 안락한 생활에 젖을 대로 젖어 참을성의 미덕이라고는 잃은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연 조반니 디 비치의 아들 코시모였다. 서슬 퍼런 감옥 생활을 참아내며 4주간을 버텨내었다. 하릴없이 시뇨리아의 처분만을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 그는 동생과 사촌들을 움직여 발 빠르게 대처해 나갔다. 


부패한 세력은 오히려 다루기 쉬운 법이다. 추잡하고 타락한 이들을 움직이게 한 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그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될 수 있다. 코시모는 알비치의 후원을 받고 있던 곤팔로니에레를, 도리어 거금을 주어 매수하였다. 그를 향해 날아오던 창들은 힘을 잃고 땅에 박혀 이제 그를 막아주는 방패가 되었다. 변심한 시뇨리아의 헌신 덕분에 코시모는 다행히 사형을 면했다. 대신 5년간의 추방령이 내려졌다. 그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피렌체에 남아 알비치의 계속된 음모에 떨고 있는 것보다는 안전한 곳에서 차후를 도모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코시모는 피렌체의 우방 국가였던 베네치아로 망명을 떠나게 되었다. 


울보들아, 너희들 중에 이렇게 묻는 자가 반드시 있으리라. "그렇게 피렌체 시에서 추방당할 것이었다면 진작에 시뇨리아의 소환에 불응하여 망명했던 것이 더 현명하지 않았겠는가? 그것이 앞을 내다보는 행위가 아니었던가? "라고. 당연히 그렇지 않다. 잘 보아라. 코시모는 사랑하는 피렌체와 그 시민들을 결코 배반하지 않았다. 일찍이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외치며 자신을 죽이려는 독배를 들이켰듯이 코시모는 피렌체 시민을 대표하는 시뇨리아의 명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도시를 존중하고 명예를 지키고자 하였다. 그가 추방당해 피렌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된 것은 피렌체가 그를 배신한 것이지 그가 피렌체에 등을 돌린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 만큼 향후에 피렌체가 잘못을 뉘우치고 변심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는 자랑스럽게 성문을 다시 들어설 수 있는 명분을 지켜낸 것이었다.


향내가 진한 화분은 어디에 두든 그 향을 잃지 않는 법이다. 베네치아에서 그는 칙사 대접을 받았다. 베네치아는 결백한 코시모가 곧 사면 복권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가 곧 다시 피렌체로 금의환향하여 베네치아와의 관계를 돈독히 이어나갈 가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코시모는 환대와 은혜에 대한 보답을 잊지 않았다. 그가 아끼는 건축가 미켈로초에게 명하여 산 조르조 마조레 대성당에 근사한 도서관을 건립해 주었다. 이 건물은 지금도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탄성과 존경을 자아내고 있다. 보아라. 부(富)는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다. 코시모는 돈을 버는 법보다 쓰는 법을 더 잘 알았던 사람이다.


베니스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왼쪽) 그리고 그것을 모네가 그린 그림 (오른쪽)

(계속)


* 참고자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김상근 저/21세기북스/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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