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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Feb 23. 2022

[한쪽 소설] 울보들아 들어라 -9

마키아벨리가 고(告)함

안정이 찾아왔다고 해서 권력자들의 자잘한 움직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밀라노를 제압한 베네치아는 이제 이탈리아 전체의 패권을 노리게 되었다. 베네치아가 독주한다면 피렌체도 위험해진다. 코시모는 좌절한 밀라노 군주 비스콘티와 그의 사위 스포르차 간의 화해를 주선하였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다시 내일의 친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급부상하는 베네치아를 견제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옆 나라 밀라노에 힘을 보태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비스콘티와 스포르차의 연대였고 이렇게 이루어진 화해는 비스콘티 사후에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밀라노의 공작 작위를 계승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코시모가 바라던 대로였다 


이제 반도 내의 세력 균형은 코시모의 손바닥 안에서 조정되었다. 누구도 코시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다른 나라를 넘보기 어렵게 되었다. 한 나라가 두각을 나타낸다면 코시모는 반드시 다른 나라들을 연합하게 하여 쉽게 견제해 올 것이다. 결실을 얻지 못할 것이 뻔한 군사력의 확장은 자원의 낭비, 의미 없는 국력 소비를 의미한다. 이제 비스콘티, 스포르차, 베네치아, 그리고 알폰소 모두 코시모에게 정치적인 자문을 구하는 신세가 되었다. 코시모는 그들의 고민을 듣고 그것을 중재해 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이제 아레나(arena) 중앙의 심판이 되어 사생결단을 결심한 검투사들의 싸움을 말리고, 그들이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것을 얻게 만드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런 그를 이탈리아 시민들은 '나라의 아버지(國父)'라 불렀다. 공정하고 노련한 심판을 공격하려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코시모의 피렌체는 이런 힘의 균형 속에서 마음껏 평화를 만끽하며 힘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코시모 데 메디치의 초상화

나는 일찍이 나의 저서 '피렌체사(史)'에서 코시모 데 메디치의 생애를 이렇게 평가하였다. 이것이 그에 대한 아마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는 대단히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외모는 중후하고 예의 바르고 덕망 넘쳤다. 초년은 고통과 유배와 신변 위협 속에서 지냈으나, 지칠 줄 모르는 관대한 성향으로 모든 정적을 누르고 백성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큰 부자이면서도 살아가는 모습은 검소하고 소탈했다. 당대에 그만큼 국정에 통달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변화무쌍한 도시에서 그는 30년 동안 실질적으로 피렌체를 지배했다." 


그렇다고 코시모를 단지 정치, 군사, 외교에만 힘을 쏟은 지도자로 기억한다면 매우 서운해할 것이다. 그는 책과 학문, 예술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신학, 문학, 역사, 철학을 배웠고,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아랍어를 익혔다. 학자와 예술인들과 사귀기를 좋아했고, 보석이나 돈보다도 책을 사랑하였다. 오죽하면 고문서를 수집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위험한 성지순례를 떠나려다 아버지에게 뒷덜미를 잡혀 무산된 적도 있었다. 이것이 한에 맺혔는지 나중에 그는 여러 학자들을 유럽과 비잔틴 제국에 파견하여 고문서와 책을 수집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모아진 자료들은 1443년 산 마르코 수도원에 메디치 가문 도서관을 건립하여 보관하였다. 여기에서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 사상이 재발견되었으며, 전성기 르네상스의 철학적 기초가 싹트게 된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지식 자체보다는 그 지식을 담을 새로운 틀을 만들려는 데에도 관심이 있었다. 코시모 이전 서부 유럽은 중세 스콜라 철학이 사상의 기조(基調)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의 뿌리는 현상에 대한 분석, 사물의 관찰,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였다. 그렇다. 너희들의 시대에서 유행하는 과학의 기초가 되는 사상 말이다. 코시모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동방 비잔틴 제국에서 유행하고 있던 초월적 사고, 감성적 직관, 창조적 영감이 강조되는 플라톤 철학을 들어오려 하였다. 그는 피렌체 외곽 시골마을 카레지에 별장을 신축하고 플라톤 아카데미를 세웠으며 초대 원장으로 마르실리오 피치노를 초빙하였다. 코시모의 파격적 후원과 피치노의 노력으로 플라톤 아카데미는 그리스어로 된 플라톤 전집을 라틴어로 번역하게 되는데 이것이 르네상스 운동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게 된다. 즉 전성기 르네상스가 추구했던 초월적이며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피치노의 신플라톤주의 미학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코시모는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사색하고 피치노 등과 토론하는 것을 진정으로 즐겼다. 그가 눈을 감은 곳도 피렌체의 궁궐이 아닌 카레지의 별장이었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그린 프레스코 안의 마르실리오 피치노


울보들아. 너희들이 오르지 못하는 것은 세상이 너희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는 것이라고 핑계 대고, 너희 입에 단물을 적셔주지 않는 한 입술을 핥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울보들아. 이것은 너희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 포르투나(Fortuna, 행운의 여신)가 디오니소스(술의 신)가 빚은 미주(美酒)에 몸을 담가 잠시 정신을 놓고 너희에게 찾아온다면 일말의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만약 너희들이 막대한 재산을 이루고 여기에 보태 자국(自國)은 물론 주변 국가들을 아우르는 힘을 얻게 되었다면 너희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너희도 코시모처럼 나라를 이끌어나갈 철학을 걱정하고 사상을 갈고닦는 데에 관심을 두겠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너희는 그저 쌓아놓은 금은보화와 권력을 향유하며 만용을 부리거나,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쾌락에 몸을 맡기려 할 것이다. 그것이 코시모와 너희들의 차이이다. 그것이 결국 이루어내고 성취하는 자와 시기하고 원망만 하는 자의 차이이다. 그 차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것이다. 그 차이가 위인(偉人)과 소인배를 가르는 날카로운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울보들아. 가진 자를 욕하지 말아라. 이루어낸 자를 시기하지 말아라. 그들이 너희에게 베푸는 작은 은덕에 고마워하여라. 그리고 그들을 도와 너희와 너희 가족들을 더 평안하게 하는데 힘써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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