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가 고(告)함
1464년 코시모 데 메디치는 숨을 거둔다. 피렌체의 소박한 시민으로 살았던 그는 죽을 때도 겸손하였다. 생의 마지막을 감지한 그는 피렌체를 떠나 카레지의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죽음을 준비하였다. 그의 바람대로 학자, 예술가 친구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다가 그들의 품에 안겨 임종을 맞는다. 장례도 유언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만큼 유복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그에게도 죽을 때까지 해결하지 못한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후계자 문제였다.
그에게는 피에로(Piero di Cosimo de'Medici, 1416-1469)와 조반니(Giovanni de'Medici, 1421-1463)라는 아들 둘이 있었다. 장남인 피에로는 메디치가의 유전병인 통풍을 심하게 앓고 있는 병자였다. 능력은 고사하고 제 몸하나 건사하기 힘들어 병상에 누워있는 날이 더 많았다. 할 수 없이 차남인 조반니를 후계자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그가 그만 아버지를 1년 앞서 세상을 떠났다. 코시모는 피에로의 아들, 로렌초(Lorenzo de' Medici, 1449~1492)에게도 잠시 눈을 돌렸다. 한 세대를 건너 양위(讓位)할 생각마저 가진 것이다. 하지만 로렌초는 당시 15세로 너무 어렸다. 어쩔 수 없이 병약한 피에로가 아버지를 이어 메디치가를 이어받는다.
나의 저서 피렌체사(史)에서 조반니 이래 4대의 메디치가 인물들에 대해 기술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메디치가를 일으키고 성장시킬 수 있었던 능력과 미덕들에 관하여 논하였다. 사람의 재능이라고 하는 것은 저마다 매우 여럿이어서 한 두 가지로 평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나의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억지로 그렇게 하였다. 다음과 같다.
조반니의 양질, 선량
코시모의 현명
피에로의 인간성
로렌초의 위대, 화려와 신중, 냉정
이것들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주신 가장 대표적인 능력들이다. 혼란의 시기로부터 위업을 시작할 때, 키울 때, 전성기를 이루고 유지할 때에 필요한 지도자의 자질은 그때마다 서로 다르다.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재능이 발현되어야 그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가령 창업의 시기에 인간성을 가진 이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시기에 냉정함을 가진 이가 인정받기는 힘들 것이다.
놀랍게도 메디치가의 초창기 4대는 한 사람도 거르지 않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기본적인 지도자의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중 한 사람이라도 교만하거나, 흉폭하거나, 혹은 무능력하였다면 선대가 이룬 업적은 대를 잇지 못하고 위축되어 소멸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가르치고 부탁한 기본적인 소양을 지키며 가문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였다. 자신의 안온(安穩)과 쾌락은 돌보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재능들이 각자의 시기에 가장 필요하고 어울리는 것들이었으며, 그것들을 최대한 발휘하여 맡겨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너희들은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피에로의 '인간성'이 메디치가의 찬란한 업적을 이루는 데에 어떠한 도움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특히 나의 책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읽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 당신은 분명 이렇게 말했소. '품성이 온화한 사람은 리더십에 도전을 받기 마련이다.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을 당해내기 어렵다. 착한 사람은 갈등이 초래하는 대결국면의 긴장감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나쁜 사람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그런 상태를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습관적으로 갈등을 회피하는 착한 사람은 대결국면에서 패배하기 쉽고, 결국 성격이 모질고 품성이 나쁜 사람이 주도권을 잡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가 원본의 해당 부분을 기억하지 못해서 일단 김상근 교수님의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의 해당 부분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나중에 찾아서 원본으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할진데 따뜻한 인간성을 가졌다는 피에로는 어떻게 가업을 이어나갔다는 말이오?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독한 사람에게 무릎을 꿇었어야 옳지 않소? 이렇게 앞뒤가 다른 말을 하고, 필요할 때마다 상반되는 논리를 마구 가져다 붙이니 당신이 욕을 먹는 것이오."
그것도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피에로는 가업을 말아먹을 만큼 오랫동안 살지 못하였다. 그의 아버지 코시모로부터 그의 아들 로렌초에게로 메디치의 수장 자리를 넘겨주기까지 약 5년 동안만 생존하였다. 둘째로 그 5년의 기간 동안 메디치가에 필요했던 것은 범접하지 못할 카리스마도, 냉정함도, 그리고 위대함도 아니었다. 그 위기의 시기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관용과 인간미였다. 정말 우연히도 그는 그의 시대에 그가 가진 따뜻함을 발휘하여 가업을 공고히 하고 그의 아들 로렌초의 시대에 꽃을 피우게 될 화합과 인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것이 하느님의 배려이든 아니면 그에게 맡겨진 운명이든 상관없다. 그는 병마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그의 역할을 맡겨진 이상으로 해내었고 그의 아들 로렌초를 '위대하게' 키워냈다. 자, 이제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