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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Feb 25. 2022

[한쪽 소설] 울보들아 들어라-11

마키아벨리가 고(告)함

위대한 부모에게서 강한 자식이 자라나기는 무척 힘들다. 위대한 부모의 그늘에 가려진 자식들은 비록 그들의 능력이 상당하더라도 그것이 단지 부모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난데없는 무시와 질타를 당하기 일쑤이다. 흔히 그들은 위대한 부모와 비교당하게 되고, 부모와 주변의 지나친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해 마음속에 열등감을 쌓아간다. 열등감은 자기 비하(卑下)를 부르는데 그것이 정신적 혹은 육체적인 결손과 합해진다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할 것이다. 코시모의 아들 피에로가 그러했다. 그는 나름대로 지도자의 능력을 쌓아 왔으나 피렌체 시민들의 기대는 그보다 훨씬 더 컸다. 그의 친절한 성격은 나약함으로 비쳤고 가문의 내실을 다지려는 차분함은 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버지 코시모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짓눌려 있던 반(反) 메디치 세력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피에로가 정권을 이어받은 지 겨우 2년이 지나자 그들이 행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메디치 반란 사건(1466)이었다. 권력이 메디치가로 집중된 참주정(僭主政) 체제를 시기하고 여러 귀족가가 힘을 나눠가지던 과두정(寡頭政) 체제로의 복귀를 원하던 몇몇 가문이 팔을 걷어붙였다. 병약한 메디치가의 수장을 제거하고 권력을 나누어 가지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 음모의 주동자는 피티가(家)의 루카(Luca Pitti, 1398-1472)였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피렌체의 서기장까지 지낸 바 있던 피티는 또 다른 피렌체의 명문가 자제였던 니콜로 소데리니(Niccolo Soderini) 등과 모의하여 피에로 암살 계획을 세웠다. 카레지 별장에서 요양하고 있던 피에로를 살해하기 위해서 반란군을 규합하고 인근 도시국가인 페라라에 지원군까지 확보해두었다. 피티가 반란군을 이끌고 피에로를 암살하면, 페라라의 군대가 피렌체를 무력으로 접수하여 쿠데타를 완성한다는 계략이었다. 메디치가의 은덕을 입은 자들이 해서는 안될 비열한 배신행위였다. 물론 이것은 세상의 평가이며 나,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비열함을 탓하지는 않는다.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하느님조차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배은망덕(背恩忘德)한 행위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음모는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주도면밀(周到綿密) 해야 하고 신속해야 한다. 계획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적절히 판단하여 임기응변(臨機應變)할 수 있는 냉철함도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피티 무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암살과 반란 음모는 사전에 피에로에게 포착되었다. 카레지 별장의 침상에 누워 있던 피에로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급히 피렌체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칼을 빼 든 반란군이 피에로의 귀환을 눈뜨고 지켜볼 리는 없었다. 그들은 카레지에서 피렌체로 향하는 길목에 군사를 매복시키고 경황없이 지나가는 피에로 일당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록 암살 계획은 누설되었으나 차선책으로 피에로와 그의 아들들을 제거한다면 중심을 잃은 메디치가가 스스로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메디치가는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피에로에게는 비록 어리지만 당차고 결단력 있는 아들 로렌초가 있었다. 이 열 입골 살의 청년은 스스로를 미끼로 삼아 반란군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그 기회를 틈타 아버지 피에로를 피렌체로 복귀시킨다. 피에로는 급하게 정부군을 동원하여 로렌초를 쫒고 있는 반란군을 진압한다. 작전의 실행은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았다. 하루아침에 메디치 정권을 뒤엎으려던 반란군들은 반대로 한나절만에 진압되어 버리고 만다. 주동자인 루카 피티와 니콜로 소데리니는 체포되었다. 그동안 코시모의 평화로운 통치에 젖어있던 피렌체 시민들은 이러한 안정을 어지럽히려는 반란군의 모의를 용서하지 않았다. 게다가 메디치가에 의해 임명된 시뇨리아(Signoria, 정부)라면 어떠한 결정을 내렸겠는가? 당연히 그들 모두에게 사형이 언도되었다.


보티첼리가 메디치가의 인물들로 채운 동방박사의 경배. 가운데 붉은 망토를 걸친 이가 피에로, 맨 왼쪽 끝 칼을 세워 쥔 이가 그를 구한 아들 로렌초이다. 


내가 말한 피에로의 인간성은 여기서부터 빛을 발한다. 그는 메디치가에 대한 도전을 적들의 피로 보상받기를 원치 않았다. 피가 피를 부르는 복수의 악순환(惡循環) 고리를 시작되기 전부터 끊어내려 하였다. 그는 반란자들의 즉각적인 사면을 결정하였다. 당시로서는 정말 놀라운 사건이었다. 도대체 자기를 죽이려던 자들을 용서한다니 말이다. 아마도 그는 분열된 사회를 봉합하고 피렌체시(市) 전체를 통합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죽을 줄로만 알았던 루카 피티는 큰 감동을 받았다. 피에로 앞에서 자신의 불경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평생 그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다. 피에로는 잔인한 맞대응을 거둬들임으로써 더 큰 것들을 얻어내었다.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눈 자들을 가대(假貸)하고 '너그러운 통치자'라는 명성을 들었으며 시민들의 칭송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피에로의 관용을 마음속으로까지 이해했던 사람들이 흔치는 않았으리라. 다행히 그중의 한 사람은 그의 아들 로렌초였다. 그는 아버지가 내린 사면 조치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만이 정복할 줄 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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