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가 고(告)함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다. 파치가의 음모가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파치가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로렌초를 함께 죽이지 못한 것이 패인이다. 좀 더 살인에 익숙한 사람이 로렌초의 암살을 맡아 정확하고 신속하게 실행했어야 한다. 만약 성당에서 그의 숨통을 끊었더라면 희망을 잃은 시민들은 우리를 따랐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분루(憤淚)를 삼킬 것이다.
"우리는 너무 암살에만 전념하였다. 로렌초와 줄리아노만 제거하면 일이 끝날 줄로만 알았다. 중요한 것은 거사(擧事) 이후 시민들을 선동하고 반대 세력을 진압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대비하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나는 알고 반역자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다. 아마 너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군주론 19장 '경멸과 증오'를 읽었다면 말이다. 나는 거기에서 모반에 대해 다루었다.
"모반에 대한 최선의 대책 가운데 하나는 군주가 백성들로부터 증오를 사지 않는 일이다. 모반을 꾀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군주의 시해가 민심에 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시해가 백성의 분노를 사리라는 것을 알면 이내 주저하며 단념할 것이다. 모반은 커다란 어려움과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메디치가는 이런 면에서 모반의 싹이 뿌리를 내릴 만한 토양을 전혀 만들지 않았다. 선대로부터 약 백 년간을 그들은 피렌체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왔다. 자신들이 일궈온 사업으로 시민들의 배를 채워주었으며 그들이 어려울 때 자신들의 곳간을 풀어 나눠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거만하지 않았고, 몸을 낮추어 시민들의 틈에 섞여 지냈다. 증오는커녕 그들은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 그들을 향한 모반은 시작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파치 일당은 그것을 몰랐다. 로렌초 형제만 제거하면 맹수 같던 메디치가도 목이 잘린 채 피 흘리며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다. 과연 그랬을까? 내 생각에는 만약 로렌초 형제가 모두 목숨을 잃었더라도 시민들은 메디치가의 누군가를 향하여, 아니 남은 사람이 없었다면 메디치가의 말뚝에라도 향하여 변치 않는 충성을 맹세했을 것이다. 모반자들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였다. 파치가가 메디치가의 자리를 넘보려 했다면 그들보다 더 큰 애정과 은혜를 시민들에게 베풀었어야 했다.
그들이 놓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반을 꾀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군주의 시해가 민심에 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는 것이다. 가령 로렌초가 살아나거나 시민이 모반자들의 뜻에 따르지 않고 반항을 하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그들은 그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였고 적절히 대응하지도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이 일으킨 작은 썰물이 거센 밀물에 의해 기세가 꺾이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돌려놓지 못하였다. 파치 일당은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여 다시 역전의 급물살을 만들어낼지 또한 그런 것들이 모두 실패하였을 경우 최소한 그들의 일신을 어떻게 건사하여 후일을 도모할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차선책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것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결코 피하여야 할 일이었다. 힘을 향한 쟁투(爭鬪)에는 항상 좌절이 있는 법이고 그것에서 비굴하게라도 살아남는 자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낼 다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무모한 그들의 도전이 결국 그들 가문의 멸문지화로 종결되었고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나락으로 그들을 내몬 것이다.
그리고 19장에서 나는 또 이런 말도 하였다.
".... 모반자는 늘 모반의 실행에 앞서 커다란 공포 속에서 살게 마련이다. 백성의 지지를 받는 군주에 대해 모반을 꾀할 경우 모반을 실행한 이후에도 커다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백성을 적으로 만들면 그 어떤 도피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앞에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들은 잠시 사고의 단절과 공백을 경험하게 된다. 파치 일당은 그곳에 그들이 이해하기 쉽고 육감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사건의 이유와 대책을 심어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구호 "포폴로, 리베르타"는 너무 막연했다. 피렌체 시민들은 당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비록 메디치가에 의해 행해지는 참주정치하에서 공평한 기회를 빼앗겼을지 모르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등 따습고 배부른' 상태에서 그들의 기회와 자유를 빼앗겼다고 실감한 적이 없었다. 그들 앞에 "자유!"를 외쳐대었으니 그게 먹힐 리 만무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파치 일당이 그들이 만끽하고 있던 자유와 번영을 위협하는 세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반항하였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그들을 제압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모반자들이 자기 기분에 도취하여 빠뜨린 것이 있었다. 그들은 모반의 실행에 앞서 느꼈어야 할 '커다란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특히 자신들이 무너뜨리려는 상대가 '백성의 지지를 받는 군주'인 메디치가였는데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렌초 형제를 시해하였을 때에 그 혼란 속에서 시민을 이끌 신념이나 명분을 만들지 못하였다. 그 잘난 "포폴로, 리베르타"라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구호를 외치며 분노한 민중을 다스리려 하였다.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하물며 메디치가의 정신적 지주인 로렌초가 살아남았으니 말도 다 한 것이었다.
이 사건에서 또 하나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성당에서의 줄리아노 암살이 있고 나서 암살자들에게 분노하고 그들을 잡아 목매단 것은 메디치가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피렌체 시민들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따뜻하게 돌보아 주었던 메디치가와 메디치가의 형제들을 사랑했던 시민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분기탱천하여 그들에게 위해를 가한 반역자들을 색출하고 심판했던 것이다. 백성의 지지를 받는 군주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그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도전하는 것은 이렇게 무모한 것이다. 또한 그 도전의 과정을 안이하게 생각한 것은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 "백성을 적으로 만들면 그 어떤 도피처도 찾을 수 없다."
명심해야 할 일이다.
(계속)
*'군주론'은 신동준 님이 옮긴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제가 읽은 군주론 몇 권 중에 제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번역된 책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음모'와 '모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에서 역사상 발생했던 갖가지 유형의 반란과 그 특징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데요, 한 번 읽어 보시면 굉장히 재미있을 거예요. 이 글은 그것을 읽고 제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의 글은 계속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