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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24.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22

파란 벽돌과의 인터뷰-7

파란 벽돌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 자, 지겹겠지만 이 동영상을 다시 한번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QcxNl9gQffg


- 동영상에 보면 수술장을 둘러싸고 관람석이 마련되어 있다. 드라마에서는 여기에 학부 학생들이 와 있어서 주인공의 수술 장면을 견학한다. 극의 다른 부분에서는 해당 수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 관람석에 앉아 수술을 지켜보는 장면들도 나온다. 이런 것이 실제로 구비되어 있는가?

그것을 이해하시려면 수술실의 역사를 조금 이해하셔야 합니다. 수술실은 영어로 'operating room'이라고 하는데요, 가끔은 'operating theater'라고도 불립니다. '수술을 하는 방'이라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수술을 하는 극장'이라니 언뜻 이상하게 생각되시죠? 왜 이렇게 불릴까요? 그것은 과거에 수술실이 실제로 극장 형태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까지도 의사들은 수술실이 멸균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아직 세균 감염과 그 부작용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줄이 나뉜 극장 형태나 아니면 원형 극장 형태의 수술장에서 학생이나 참관인들을 두고 수술을 하면서 그 장면을 교육시키거나 관람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수술은 공연이었고 학생은 관람객이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The Agnew Clinic, 1889, by Thomas Eakins


아마도 이러한 문화는 과거 수술과 유사한 해부학 실습을 극장 형태의 교실에서 시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생은 시신을 눕혀놓고 수술 기구를 써가며 사람의 몸을 해부하고 그 자세한 구조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합니다. 학생들은 진득이 자리를 잡고 앉아 선생의 설명을 듣고 그것을 눈으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교실이 필수적이었을 것입니다.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 학생들이 관람하는 형태의 수술실이 감염에 불리하다니 왜 그런가? 

이전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수술장은 환자의 건강을 위해 가능한 한 균의 생존, 번식, 전파를 줄일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듭니다. 멸균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고요. 그런데 위의 그림을 보십시오. 극장식 수술장에서 어떤 의사나 관람자가 모자와 마스크를 쓰거나 수술 장갑을 끼고 있나요? 그저 수술하는 의사들이 환자의 피나 오물이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만큼 세균 오염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털, 피부와 의복에는 세균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만약 의복에서 먼지가 날린다면 그 먼지를 타고 엄청난 수의 세균들이 방안을 떠돌다가 환자의 몸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같은 방 안에 있는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심각한 감염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좋게 말해서 감염원이지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거대한 세균 덩어리'인 것이지요. 따라서 현대의 수술실에서는 가능한 한 수술에 참여하는 필수적인 인원을 제외하고는 쓸데없이 수술장을 드나드는 인력도 철저히 제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갈수록 수술실 안이 오염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많은 학생들이 수술장 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도 평상복 위에 가운 정도를 걸치고 말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세균들에게 수술실 문을 열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요즘은 저런 형태의 수술실이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 학생들이 바로 수술실 내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들이 있는 공간과 수술실 내부는 유리로 된 스크린으로 차단되어 있다. 그러면 세균이 확산되지 않을 것 아닌가?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이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시설을 만들고 운영한다고 해서 어떤 유리한 점이 있을까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학생들이 과연 여기 테이블을 둘러싼 의료진이 행하고 있는 수술을 잘 관찰할 수 있을까요? 웬만한 시력 가지고는 너무 멀어서 제대로 볼 수 없을뿐더러, 설령 볼 수 있는 시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술을 하고 있는 의료진의 등에 가려 수술 부위를 정확히 관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학생들이 정말로 수술을 참관할 필요가 있다면 최소한의 인원, 즉 그들 중 한두 명을 수술장 내로 불러 집도의의 등 뒤에 서있게 하거나 아니면 직접 스크럽을 하고 의료진 옆에 붙어 있도록 하는 것이 위생적입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는 그런 실습을 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나마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차라리 수술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보여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드라마에 나오는 형태의 수술장은 경제적, 공간적, 효율적으로도 모두 낭비입니다. 제가 의과대학 학생과 의사 생활을 근 35년 가까이했지만 한 번도 저런 수술실은 본 적이 없습니다.


- 그럼, 고증을 철저히 하였다는 드라마에서 왜 저런 장면을 연출한 것인가?

그것은 극의 전개상 아마도 관람석이 구비된 수술장이 꼭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하얀 거탑의 원작 드라마가 일본 것이기 때문에 원작에 충실하게 리메이크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은 순전히 제 추측인데요,..... 저런 수술장에서 여러 관람객들을 두고 수술하는 것이 더 멋있고 카리스마 있어 보여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꼭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 음, 그렇군...... 사실 상당히 멋있어 보인다.

수술은 멋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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