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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28.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26

파란 벽돌을 만나다.-11

파란 벽돌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 오늘은 대리 수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보자. 대리 수술도 종류가 있나?

글쎄, 그것은 뭐 특별히 정의가 내려진 것은 없지만 제가 생각해 보기로는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는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에게 수술을 맡기는 경우입니다.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이것은 명백한 불법 의료 행위입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이지요. 두 번째는 환자에게는 A라는 의사가 수술하겠다고 하고 수술의 전 과정을 B의사에 맡기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유령 수술이라고도 불리는데요, 특히 몇몇 성형외과 개원 병원에서 문제가 되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었습니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사기 행위이지요. 법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겠습니다.

- 그럼 나머지는 무엇인가?

세 번째는 A라는 의사가 수술을 하겠다고 하고 실제로 그가 수술의 전 과정을 책임지면서 주요 부분을 수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난이도가 높지 않은 일부 수술을 다른 의사 B나 C에게 의뢰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아마도 전공의나 전임의를 교육하는 병원에서 가장 많이 시행되는 경우일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는 대리 수술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택하고 있는 수술 시스템이고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후배 의사들의 교육 목적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대리 수술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네 번째는 A라는 의사가 수술을 하기로 했는데 그 일부 과정을 자신이 하는 것보다 다른 전문 의사 B에게 의뢰하는 것이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하는 경우입니다. 가령 척추 수술에서 척추외과 의사가 복부 절개를 통하여 척추로 접근하다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런 수술 술기에 더 익숙한 혈관 외과나 흉부외과 의사를 급하게 불러서 그 과정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혹은 부인과 수술을 하다가 요도 손상이 발생하는 경우 부인과 의사가 그것을 처리하려고 하지 않고 비뇨기과 의사를 불러서 대신 조치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들 수 있습니다. 즉,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응급으로 더 잘 대응할 수 있는 의사를 초빙하는 의미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사전에 환자에게 동의를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A라는 의사에게 수술을 맡겼는데 왜 B라는 의사가 내 몸을 건드린 것이냐?"라고 따지면 그것도 대리 수술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 당신이 그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그걸 가지고 뭐라고 따지는 사람이 실제로 있겠는가? 다 이해해 주는 것 아닌가?

예, 그렇기는 합니다. 그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마무리되기 쉽지요. 법이라는 것도 상식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까요. A라는 의사가 하기로 하고 그가 책임지고 시행 중인 수술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고 그 상황을 더욱 적절히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의사가 B라면 그것을 A가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것도 비효율적이고 비윤리적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A가 그 정도는 자신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거나, B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소요되니 그동안 자신이 조치하고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하다가 결과가 나쁘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럴 경우 환자나 보호자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왜 진작에 B에게 맡기지 않았는가?" 혹은 "그 수술을 더 잘할 수 있는 B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어야지, 왜 당신이 성급하게 조치하였는가?"라고 비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대리 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수술이나 치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 환자나 보호자들은 조금이라도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그것이 결과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것이 요즘  '의료 사고'라고 해서 수없이 벌어지는 의료 분쟁이나 의료 소송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 아 왠지 하품이 자꾸 나온다. 당신과의 인터뷰가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도 항상 불만스럽게 생각하신다.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구독자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너무 전문적인 내용을 깊게 들어가다 보면 독자님들의 머리도 너무 피곤해지고 집중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아까 말한 세 번째 경우에 대해 조금 더 말해 보자. 아무래도 그것이 관례적으로 가장 많이 시행되고 있는 형태이니까 언젠가는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맞습니다. 관례적으로 행하고는 있지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반드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난이도가 높지 않은 수술의 일부를 전임의나 전공의에게 맡기는 것 말입니다. 여기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연 어느 정도 맡기는 것이 대리 수술일까요? 어떤 분들이 보기에는 수술 전체의 1할 이상을 맡기는 것도 대리 수술일 수 있고, 어떤 분들이 보기에는 집도의가 주요 부분을 충분히 맡아서 해줄 수 있다면 5할 이상을 맡겨도 대리 수술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주요 부분이라는 것도 기준이 어떻게 될지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복잡한 이야기이니까 저의 경우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딴 전임의와 주로 일합니다. 그는 이미 전문의이므로 자신의 환자를 직접  혼자 수술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의사이지요. 실제로 같은 환자를 제가 수술하든, 그가 수술하든 수술 수가도 똑같습니다. 다만 그는 척추 수술에 대해서만은 저보다 경험이 조금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더 배우기 위해 저희 병원 전임의로 근무하고 있는 것이지요. 경험이 적다고 수술을 저보다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은 몇 번 해보지도 않은 수술을 저보다 더 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배워서 저의 수술을 더 발전시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들에게 수술의 전 과정을 다 의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수술 부위가 드러나기까지의 절개와 수술부 접근까지를 의뢰합니다. 그것도 가끔이지만 말이지요. 그 이후에는 집중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집도합니다. 그 과정이 끝나면 수술에서 가장 쉬운 수술부 봉합 과정이 남습니다. 이것은 거의 전임의가 담당합니다. 이것이 제가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맡은 수술을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마쳐지게 만든 과정입니다. 수술 인력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제가 가장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연주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 그럼 그렇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가장 안전하게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데 누가 문제를 삼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세상사에는 완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100%라는 확률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환자분이 만족스러운 수술 결과를 얻지 못해 의료진을 원망할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는 이것저것 따져보다가 전임의가 저를 대신해 수술부 절개를 했다는 것을 생각해 내었습니다.(물론 수술 설명 과정에서 그런 분업을 하겠다는 수술 계획은 이미 충분히 말씀드린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따집니다. "만약 당신이 직접 절개를 하였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때 전임의가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후유증이 남은 것 같다. 결국 나는 당신에게 수술을 맡겼는데 당신은 모든 과정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것을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이지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당연히 그런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 그거야 잘 설득하면 되는 것 아닌가? 설령 해결이 안 되어 소송이 걸린다 하더라도 법원에서 현명하게 판결해 줄 것이고.....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

아, 그것이 그렇게 매끄럽게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환자나 보호자가 병원을 상대로 불만을 제기하거나, 의료 분쟁 위원회 분쟁 접수를 하거나 혹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그것이 제대로 마무리될 때까지 의료진은 그 문제에 대해 수없이 많은 문서 작업과 출석 요구 등으로 엄청난 정신적, 시간적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성 댓글을 경험해 본 분이라면 이해하실 것입니다. 자기가 잘 못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계속적인 비난을 당하면서 그것을 방어하는 일을 하다 보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대단합니다. 또한 그것으로 인해 빼앗기는 시간으로 정상적인 업무에 몰입하기도 어려워지고요. 더 큰 문제는 말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질환이나 문제를 가진 환자를 가급적 피하자는 자기 방어 본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의사도 사람인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아, 이번 글도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자꾸 이러면 그만 인터뷰를 마칠까 한다.

아니, 그러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도 이런 얘기는 안 드리려고 했는데 인터뷰가 재미없어지는 것은 인터뷰어의 책임이지 인터뷰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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