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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29.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28

파란 벽돌과 만나다.-13

파란 벽돌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 당신이 지적한 대로 수술장 CCTV 설치 의무화 문제에 대한 이야기의 끝을 맺지 못한 것 같다. 조금 더 다뤄보자. 여론 조사에서 보자면 일반 국민들의 70% 이상은 CCTV 설치에 찬성하고 있다. 다수의 의견에 반하여 많은 의사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자기 밥그릇 챙기기 아닌가?

제가 감히 전체 의사들을 대표할 자격도 없고, 능력도 안 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그냥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의사들의 수술장 내 CCTV 설치 반대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가 절대 아닙니다. 그런 말을 들으려면 수술장 CCTV 설치를 하지 않을 경우 병원이나 의사에게 경제적인 이득이 생겨야 할 텐데 그런 것들이 없으니까요. 아, 반대의 경우는 가능하겠습니다. CCTV 설치와 관리에 경비가 소요될 것은 분명하니까요. 그 경비를 정부에서 보존해 줄 리 없다는 것을 의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비슷한 건으로 한두 번 당해 본 게 아니니까요. 아마 이번에도 이런 시나리오를 거칠 것입니다. 정부는 CCTV 설치 비용의 일부나 전부를 지원해주겠다고 할 것입니다. 의료계의 초기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국민들에게 생색내기 위해서이겠지요. 그다음 운영비와 동영상 저장 및 자료 보안에 관련된 경비의 대부분은 병원에게 책임 지울 것입니다. 그러면 병원은 그에 해당하는 비용을 수술료에 포함시켜 달라고 하겠지요. 그러려면 건강 보험료를 인상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여론 조사를 합니다. 의사들이 건강 보험료를 이만큼 올려달라고 하는데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입니다. 당연히 대다수의 국민들은 반대하겠지요. 그것을 핑계로 수술료 인상은 없던 이야기가 됩니다. 따라서 관련 경비는 병원에 덤터기 씌워지고 병원 적자는 늘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술장 녹화 자료의 안전한 보관과 보안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철저해야 하니까요. 


- 그깟 데이터 보관과 보안에 무슨 그리 대단한 경비가 든다고 엄살을 부리는가? 지금도 엑스레이, 내시경 촬영 녹화본 등을 병원에서 보관하고 있지 않는가? 또한 그런 자료들이 외부로 누출되지 않도록 보안 시스템이 이미 마련되어 있고...... 어차피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되는데 왜 그리 유난을 떨고 그러나?

현재 병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영상의학적 자료는 환자의 개인 정보와 이미지 혹은 동영상이 따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즉 이미지 혹은 동영상만 가지고는 그것이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어떤 사람의 흉부 엑스레이가 인터넷을 떠돈다 하더라도 신분이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는 한 그것이 누구의 가슴 사진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설령 유출이 되더라도 심각한 정보 노출의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하지만 수술장 동영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자의 얼굴과 알몸이 함께 담겨있기 때문에 대번에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어떠한 이유로든 외부로 유출된다면, 환자는 자신이 마취당해 벌거벗은 채 수술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전 세계 모든 이에게 보여주는 수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심각한 사생활 노출입니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사태이기 때문에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따라서 병원은 국가 기관을 능가할 만한 전산 보안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엄청난 추가 경비가 영구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수술장 CCTV 설치가 과연 그 정도의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 사업일까요? 

이미지 출처: guidetoiceland

- 아이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참 난처한 일이겠군. 그런데 왜 병원은 그렇게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나? 녹화본이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면 될 것 아닌가? 병원은 그 많은 돈을 벌어서 뭐 하려고 그러나? 번 돈으로 물 샐 틈 없는 전산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면 되고, 그런 것에 게을리하는 병원에는 엄벌을 가하면 되지 않나?

지루한 이야기만 길어질 것 같아서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현재 우리나라 건강 보험 체계에서 병원은 돈을 벌기는커녕 유지하기에도 벅찬 상태입니다. 거기에다가 또 경비 부담을 추가한다면 병원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할 것입니다. 엄벌을 피하기 위해 적자를 쌓아 나가거나, 적자를 피하기 위해 엄벌을 감수하거나 말입니다. 누군가 양손에 채찍을 쥐고 휘두르고 있다면 어느 쪽에 맞던지 아프기는 마찬가지이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비단 CCTV 설치 문제에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 당신은 모든 일에 참 비관적인 것 같다. 비관적인 사람과 어울리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당신과는 상종도 안 했으면 한다. 그런데 아까 "복잡한 수술을 안 하면 그만"이라고 협박했던 것 같은데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그것이 협박이라고 비쳤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것은 협박이 아니고 그냥 사람의 본능입니다. 의사도 사람이니까 그런 본능에 따르겠지요. 예를 한 번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집안의 며느리입니다. 어느 날 큰 마음을 먹고 시부모님을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차려 드리기로 했습니다. 평소 시부모님을 좋아했기 때문에 진심으로 맛있는 요리를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만큼 손이 많이 가는 신선로 요리를 선택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아무 곳에서나 드시기 힘든 음식일 것 같아서요. 당신을 닮아 요리에 소질이 있는 큰딸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설레어서 그랬는지 궁금해서 그랬는지 시아버지를 모시고 3시간 일찍 도착하셨습니다. 소파에 앉아 계시라고 했는데 못 미더운 눈치로 당신과 딸 뒤에 서서 어깨너머로 요리의 전 과정을 지켜보십니다. "나를 못 믿어서 그러나?"하고 마음이 편치는 않겠지요? 당신이 곰탕 거리를 삶고 고기와 야채를 다지는 동안 딸에게 견과류와 버섯 손질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삶아진 고기를 썰고, 완자를 만들고 생선전을 부치는 동안 딸에게 달걀지단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국 간장으로 마지막 간을 맞추는 동안 딸에게 고명 거리 야채를 다듬어 달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한눈팔지도 않고 묵묵히 보기만 하십니다. 사실 시어머니도 신선로 요리는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요리하실 줄도 모를 것입니다. 이윽고 특별히 구입한 신선로에 준비한 재료들을 모두 담고 장국을 부어 팔팔 끓입니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신선로 요리가 완성된 것입니다. 


- 아니, 아니, 당신...... 아무리 요즘 먹방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인터뷰하다가 요리 강좌가 웬 말인가? 당신 지금 제정신인가? 아니면 나를 우롱하는 것인가?

당신의 이해력이 많이 모자라 보여서 알기 쉬운 비유를 하는 것뿐입니다. 이러고 있는 나도 고역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당신이 독자님들만큼 똘똘한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한 말만 들어도 앞으로 무슨 말을 할지 다 예상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유하는 까닭도 알아채지 못하는 당신을 보니 이 인터뷰가 하염없이 길어지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 쩝...... 이거 왠지 말리는 기분이 드는구먼. 하지만 더 따지면 내가 더 멍청해 보일지도 모르니 한 번만 참아보겠다. 어디 마음대로 해보라.

자, 다시 설정한 상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신선로를 식탁에 옮겨 놓습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식탁에 둘러 않으셨습니다. 당신과 딸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두 분이 어떤 평가를 내려주실지 기대에 차 있습니다. 요즘은 어느 집이나 그렇겠지만 시아버지에 앞서 집안의 실세이신 시어머니가 첫 수저를 뜨십니다. 국물 한 모금을 마시고 고기 전을 집어 드시고 눈을 지그시 감으십니다. 자, 요리를 정성스럽게 마련한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이겠지요? 이제 시어머니는 뭐라고 하실까요?

(계속)


* 저는 요알못이에요. 요리 묘사 부분에 틀린 점이 있어도 양해 바랍니다.

* 다음 글에서 시어머니의 요리 평가와 며느리의 대응, 그리고 고부 갈등이 시작됩니다. 아침 드라마 분위기가 흠씬 나네요. 저도 이제 이 글이 어디로 나아갈 지를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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