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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29.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29

파란 벽돌을 만나다.-14

파란 벽돌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어제 밤잠을 설쳤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당신이 들려주는 아침 드라마 내음이 물씬 나는 이야기는 정말 감칠맛이 난다. 논제와는 상관없어서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욕하면서도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떻게 그런 소질을 가지고 지금까지 그렇게 재미없는 소설들만 써댄 것인가? 신기할 따름이다. 그건 그렇고, 시어머니는 뭐라고 하셨나? 

그런데 어제 어디까지 이야기했지요?


- 이 양반, 참, 점점 사람 마음 쪼일 줄 알아가네....... 며느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신선로 요리를 시어머니가 한 수저 뜨신 부분까지 진도가 나갔다.

아, 그렇군요.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시어머니는 감았던 눈을 도끼 모양으로 부릅뜨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에미야!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곰국은 소가 발 한 번 담갔다가 지나간 듯 밍숭맹숭하고 고기는 너무 삶아 씹히는 맛이 없다. 이것도 신선로 요리냐? 다른 이들이 너의 요리 솜씨가 일품이라 칭찬하고, 너도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 척 하기에 내가 다른 며느리들이 해준다는 음식들을 마다하고 네 집에 들렀거늘, 네가 정신을 빼먹고 실수하였거나, 작정하고 나를 골탕 먹이려 하지 않은 이상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이런 말을 들으니 당신은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당신이 며느리인 상황입니다. 계속 감정 이입하십시오.)

"어머님, 저와 큰딸이 밤잠 못 자고 준비하여 한나절을 걸려 정성껏 마련한 요리입니다. 어머님이 고혈압이 있어 간은 조금 심심하게 맞추었고, 이가 좋지 않으시니 고기를 푹 곤 것뿐입니다."


- 오, 며느리에게 그런 깊은 뜻이 있었던가? 참으로 효부로다. 그렇다면 이제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효성에 감탄하여 용서해 주시는 것이 수순 아닌가?

아, 이러려고 이런 비유를 든 게 아닌데 당신이 너무 몰입하니 저도 모르게 감정 표현이 살아나네요. 그럼 내친김에 조금 더 흥을 내서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더 화를 내십니다.

"에잇, 듣기 싫다. 그것도 변명이라고 하느냐? 네가 요리를 하는 동안 내가 네 뒤에서 네 손짓 하나, 발놀림 한 번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너는 네가 그렇게 잘한다고 생색내던 요리를 손수 네가 다 만들지 않았다. 가장 정성이 필요한 일부를 미숙한 네 딸에게 맡겼다. 그것이 요리를 망치게 된 원인이다. 그 어린것이 무엇을 안다고 그 중요한 것들을 맡겼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어머님. 보셨다시피 제 딸이 도와준 것은 그저 견과류와 버섯 손질, 달걀지단 부치기, 고명 거리 다듬기였을 뿐입니다. 어머님 입맛을 거스를 만큼 중요한 손놀림은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어머님 손녀는 저만큼 요리를 잘한다고 소문난 아이입니다. 손수 요리를 만들어 드렸다 해도 부족함이 없을 아이였단 말입니다."


- 며느리가 참 억울하기도 하겠다. 그래서 어찌 되었나? 이제 시어머니가 수긍을 하게 되었는가?

아닙니다. 시어머니는 지치지 않고 또 다른 트집을 잡으십니다.

"그리고 내가 지켜보자 하니 네가 전을 부칠 때 무언가 놀란 듯 몸을 치켜세우며 수선을 떠는 것을 보았다. 그때 무엇을 빠뜨리거나 실수하여 당황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더냐?"

"어머님, 그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전을 부치다가 화들짝 한 이유는 무심코 프라이팬에 손목이 닿아 데이지 않으려 팔을 움츠렸기 때문입니다."

"아니다, 그것은 필시 내가 맞을 것이다. 나에게 혼나지 않으려는 너의 변명임에 틀림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너는 삶던 고기를 건져 썰 때에 지나치게 잘게 저며 썰었다. 그것이 고기를 흐물거리게 만든 원인 중 하나이다. 아니 그런가?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네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그것도 아닙니다. 저는 신선로 요리에 알맞도록, 수육보다는 얇게 고기를 썰었을 뿐입니다."

"에잇, 듣기 싫다.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이다."

며느리는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옆에 앉아 계신 시아버지를 쳐다봅니다. 시어머니도 호응을 바라는 듯 자신의 남편을 바라봅니다. 시아버지는 지원을 바라는 두 사람의 눈길이 동시에 자기에게로 향하자 눈을 내리깝니다. 그리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하는군요.

"나는 잘 모르겠으니 두 사람이 알아서 하시구려."


- 하하하, 참 못난 시아버지로고...... 그래서 어찌 되었나?

이게, 이야기의 끝입니다. 


- 아니, 분위기 달구다가 이게 무슨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인가? 이게 끝이라니...... 한참 재미있어지려 하는데......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만 보려 하십니까? 제가 한 집안의 고부 갈등을 막장 드라마로 꾸미려 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수술장 CCTV 설치로, 수술하는 의료진을 감시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비유를 들어 설명드리려 하는 거였잖아요. 원래 시어머니가 일찍 도착하여 부엌에 자리 잡은 이유는 혹시 며느리가, 그리 자랑하던 신선로 요리를 남을 시켜 만들거나 식당에서 사 오지는 않는지 지켜보려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며느리는 손수 음식을 차려 내었지요? 하지만 그 감시의 눈초리가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눈덩이 굴리듯 어떠한 문제들을 만들어 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모르시겠다면 제가 하나하나 따져 드리겠습니다.

(계속)


* 배가 산으로 오르다가 이제 하늘을 날려고 하는 느낌이에요. 복잡한 이야기 지루하게 듣지 마시라고 한 가지 비유를 생각해 내었는데 감정 몰입이 과도하여 엉뚱하게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한 번 수습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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