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벽돌을 만나다.-15
파란 벽돌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 지난 시간에 당신이 들려줬던 고부 갈등이 수술장 CCTV 설치 문제를 비유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무엇이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네 간단히 등장인물을 보겠습니다. 시어머니는 환자와 보호자를, 며느리는 병원과 집도의를, 시아버지는 정부와 국회를 빗댄 것입니다. 손녀딸은 전임의나 전공의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요리를 해드리는 것과 그 과정은 수술을 해드리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며느리가 요리를 차려드리는데 시어머니는 혹시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대접받을까 봐 의심합니다. 그래서 며느리의 집에 일찍 도착해 며느리가 음식을 요리하는 전 과정을 감시합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그런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자신을 감시하는 눈초리를 느끼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시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현대의 의료 행위는 과거처럼 의료진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의료진과 환자, 그리고 보호자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교환하며 진단과 치료를 해나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의료-환자(보호자 포함) 간의 신뢰 형성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rapport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환자는 의사를 불신하게 되고, 또 의사는 환자를 기피하게 되어 최상의 진료는 고사하고 정상적인 진료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다른 의사를 알아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환자와 제삼자가 수술장 안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 것은 의사로서는 손과 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일 것입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자신이 전념을 다하여 하고 있는 일을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해 주는지, 혹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없는지 찾아내려고 눈을 부릅뜨고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사람을 거꾸로 신뢰하고 그에게 끝없는 애정을 쏟을 수 있을까요? 별것 아닌 CCTV 카메라 하나가 보이지 않게 의사-환자 간을 이간질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의사와 환자가 처음 대면하여 대화와 진료를 통해 어렵게 쌓아 올린 rapport에 금이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외국에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의사-환자간의 신뢰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그깟 카메라 하나 설치하는 것이 무엇 그리 큰 불신을 조장한다고 설레발을 치는가? 의료진이 대리 수술을 하지 않고 수술 중에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그만 아닌가? 그런 의심을 사지 않는다면 그 녹화본을 보겠다는 환자도 없을 것이다. CCTV 설치를 그리 반대하는 것은 어쩌면 몰래 그런 짓을 하겠다는 괘씸한 의도가 남아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네, 바로 그 점이 더 위험한 것입니다. 즉, 환자나 보호자가 수술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때 말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환자측은 바로 의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리 수술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말이지요. 그러면 수술장 녹화본을 요구하겠지요? 그것을 돌려보니 전임의나 전공의가 수술부를 절개하고 봉합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거의 틀림없이 대리 수술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집도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 전 과정을 직접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요.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특히 전문의 자격증까지 가진 사람이 수술 일부를 대신하면서 도와주는 것은 위법이 아닙니다. 물론 형사나 민사 소송이 걸리더라도 의료진이 처벌받거나 손해를 배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니냐고 하실 건가요? 하지만 세상 일이 반드시 법으로만 돌아가던가요? 서운해하거나 분노하는 환자측을 달래기 위해 병원이나 집도의는 상당한 정신적, 물리적 피해를 당할 것입니다. 잘못하지도 않은 일을 변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요. 참 답답한 일이지요. 사실 지금도 비슷한 일은 많이 발생하고 있으니까요. 자, 그렇다면 이것을 방지하는 병원이나 의사의 대처 방안은 어떻게 될까요?
- 그 정도의 대리 수술도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집도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면 되지 않나? 참 간단한 일을 어렵게 생각하는군.
네, 그렇습니다. 그 방법이 가장 쉽고 확실한 해결 방법이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해결 방안의 문제점은 제가 이미 이전 글에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간단히 되새겨 볼까요?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체력과 집중력이라는 것은 한정적입니다. 마치 휴대폰 배터리처럼요. 만약 집도의가 수술의 전 과정을 모두 행한다면 그런 이유로 그는 수술의 건수를 줄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우리나라에서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명의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에게 수술받아야 할 사람들은 줄 서 있는데 그는 수술을 늘이기는커녕 줄여야 합니다. 일부의 환자들은 그에게 수술받을 기회를 아예 잃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피해는 환자분들에게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냉면을 아주 잘 만드는 장인이 있습니다. 그는 여러 요리사의 도움을 받아 육수를 끓이고, 반죽을 만들고, 면을 뽑고, 고명을 준비하여 하루에 수 백 그릇의 냉면을 고객들에게 제공합니다. 그것도 적절한 가격에 말이지요. 그런데 그 과정을 지켜본 한 고객이 언론에 고발합니다. "저 장인이라는 작자는 육수도, 반죽도, 면이나 고명 준비도 직접 하지 않고 모두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저 냉면은 저 장인이 만드는 게 아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속았다. 앞으로는 내가 그의 주방을 감시해서 모든 과정을 그가 요리하도록 만들겠다."라고 말이지요. 장인은 이제 꼼짝 못 하고 육수 거리 다듬기, 메밀가루 옮기기, 마늘 까기, 계란 삶기까지 직접 다 해야 합니다. 자, 이제 그는 하루에 몇 그릇의 냉면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또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지는 냉면의 가격은 어떻게 매겨질까요? 앞으로 당신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그 장인의 냉면을 영원히 맛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루에 만들어지는 몇 그릇되지 않는 냉면이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팔리게 될 테니까요. 그런데 그가 직접 만들어 내는 그 냉면이 과연 이전보다 월등하게 더 맛이 있을까요? 비슷한 상황이 의료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은 있겠습니다. 수술료는 마음대로 인상할 수 없으니 그리 비싸지지는 않겠군요. 다만, 병원은 적자가 더 늘어나게 되어 운영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 피해는 어떤 형태로든 의료 소비자인 환자에게 전가되게 됩니다.
- 대리 수술 문제는 그렇다고 치고 수술장 CCTV는 수술실에서 발생하는 의료 사고를 적발하는 기능도 있지 않은가? 그것 때문에 피해 보는 환자들도 많을 것이다.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 사고에 해당하는 환자는 매우 드뭅니다. 그것을 걸러내기 위해 모든 환자의 수술실을 녹화한다는 것은 모기를 잡기 위해 칼을 뽑아 드는 것처럼 과잉대응입니다. 수술이 잘못되었다면 꼭 수술실을 감시하지 않더라도 CT, MRI, 혹은 기타 검사로 그 이상을 밝혀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더구나 수술 부위를 직접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수술실 전경의 녹화는 의료 사고를 밝혀내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켜 의사-환자의 신뢰 관계만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령 어떤 환자의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환자측은 틀림없이 수술실 녹화본을 보기를 원할 것입니다. 거기에 수술 중 의료진이 부산히 움직이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고 해 봅시다. 아마 이렇게 주장하기 쉽습니다.
"저 봐라. 의사가 저기서 무언가를 실수했으니까 저렇게 당황해서 이상하게, 바쁘게 움직이는 것 아닌가?"
이런 의심을 가지게 되면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일부 조정하여 수술한 것, 수술 중 여러 가지 이유로 변화되는 의료진의 사소한 움직임,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의 수술 계획의 변경 등을 모두 의료진의 실수의 증거라고 오인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분위기에서 의료진이 평상시와 다름없이 긴장을 풀고 수술에 임할 수 있을까요? 필요 없는 긴장은 오히려 실수를 만들어내는 법입니다. 아, 이렇게 되면 진짜로 수술장 CCTV가 의료사고의 생생한 현장을 적발해내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 사람들은 말하겠지요.
"거봐라. CCTV 설치하길 잘하지 않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환자들에게 과연 이득입니까, 손해입니까?
- 너무 의사 입장에서만 말하는 것 아닌가?
이왕 이렇게 된 것 더 말씀드려도 될까요? 수술장에서 의사들은 곧잘 음악을 틀어놓습니다. 사실 의료진이 음악을 들으면서 수술하는 것이 결과를 더 좋게 만든다는 의학 논문도 여러 편 나와있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유행가를 틀고 수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공부할 때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저에게는 쓸데없는 잡념을 사라지게 하고 긴장을 풀게 하여 심장 박동을 유지하고 여유 있게 수술을 진행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술장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이것을 포기할 생각입니다. 혹시나 수술 결과가 나쁜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 녹화 장면을 보게 될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신성한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유행가를 틀어놓다니 환자를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오만하고 비인간적인 의사이냐? 저러니 의료 사고를 만든 것이다." 라고 책잡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