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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Apr 01.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31

파란 벽돌을 만나다.-16

파란 벽돌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 이제 독자님들이 이 주제를 지루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셨다. 당신 구독자수를 줄이기 싫다면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때가 된 것 같다. 더 할 말이 남아 있는가?

우리나라의 연간 수술 건수는 약 200만 건 정도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리수술과 관련되어 보도된 사건을 모두 합치면 채 30건이 되지 않습니다. 보도된 것 말입니다. 대리수술로 확정 판결을 받은 것 말고요. 아주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의사들은 묵묵히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환자들을 성실히 수술해 드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아주 드문 일탈을 잡아내기 위해 다른 모든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여, 등 뒤에서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쓸데없는 법석을 떨면서 부가적으로 발생하게 될 의사-환자 간 불신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 병원의 적자 누적, 심각한 사생활 침해 위험성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 걸까요? 그래서 의사들이 반대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우리들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것이 아니란 말이지요.


- 이것은 우리 독자이신 우공지마님이 문의하신 사항이다. 내가 대신 당신에게 물어보겠다.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여론 조사에서 약 73%의 국민은 설치에 찬성하고 있다. 여론이 이러할진대 그것을 따르는 것이 옳은 일 아닌가?

네, 많은 일에서 여론은 상당히 중요한 것입니다. 다수의 국민들은 현명하고, 그들의 뜻이 모이면 천재적인 소수가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올바른 방향 제시와 추진력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뜻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이 더 앞서야 할 경우도 있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를 한 번 돌이켜 보십시오. 한 편의 고발 프로 방송에 현혹된 많은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젊은 어머니들은 유모차까지 끌고 거리에 나와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엄청난 혼란의 결과가 어찌 되었나요? 우리는 현재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고 있나요? 아니요, 더 싼 가격에 양질의 미국산 쇠고기를 계속해서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광우병에 시달리며 쓰러져 가고 있나요? 그 많은 미국산 쇠고기 소비에도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광우병에 걸렸다는 보고가 없습니다. 

 

자료 출처: 조선일보

하지만 여러분들이 그렇게 중요하다 생각하는 여론은 어떠했을까요? 당시의 여론 조사를 보시겠습니다. 국민의 80%가 미국산 수입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수입 반대 세력의 선동과 세뇌가 얼마나 심했던지 4년이 지난 2012월까지 안전하지 않다는 여론이 65%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때의 여론이 진실이었던가요?  

당시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광우병의 위험성이 매우 낮다고 소신 발언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대중의 목소리에 밀려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2008년 백분토론의 한 장면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우병의 원인인 prion을 수십 년간 연구했던 전문가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의견을 내자 인터넷을 통해 광우병을 공부한 상대 토론자가 이렇게 따지며 대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한 명이라도 광우병 환자가 발생한다면 당신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많은 청중이 박수를 치더군요. 저는 그만 탄식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십 년 전문가의 고뇌에 찬 의견을 이렇게 감정적인 선동으로 맞받아치는 선동가, 그리고 그것에 호응하는 많은 국민들...... 그것이 아쉽게도 당시 우리나라 국민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대가로 심각한 국론 분열, 국력 낭비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슬금슬금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일을 또 반복하려고 하십니까?


- 자, 자, 당신 지나치게 흥분하는군. 좀 진정하고.....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 것인가? 대리 수술을 막아야 하는데 CCTV 설치가 적절한 조치가 아니라면 대안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반대를 위한 반대'일뿐 아닌가?

의사 면허증이 없는 사람에게 수술을 맡기는 것은 의료법상 범죄 행위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수술하겠다고 하고 다른 의사에게 수술을 완전히 맡기는 것도 사기 행위이니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 처벌의 수위를 강화하는 법을 만들어 일벌백계해야 합니다. 그러면 대리 수술은 뿌리가 뽑힐 것입니다. 대리 수술을 기도하는 의사에게 득보다는 실이 엄청나게 크게 되니까요. 그밖에 제가 말씀드린 전임의, 전공의 등이 수술 일부를 대신하는 것, 돌발 상황에서 다른 의사에게 수술 일부를 맡기는 것 등에 대해서는 명백한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 내에서 집도의가 운영의 묘를 발휘해 가장 다수의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이끌어내야 합니다. 생각 밖으로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


- 그렇다면 의사들은 왜 그렇게 국민들을 설득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의사들은 끊임없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선동적인 정치인들의 쇼에 묻혀 버리고 맙니다. 아무래도 정치인들은 대중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혹하게 만드는데 능하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의약분업 사태 때에도, 국립보건의료대 설치 건에 대해서도 파업을 불사하면서 소신 있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였습니까? "먹고살 만한 의사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제 밥그릇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라고 치부하였습니다. 물론 의사들이 '양심적인 의사'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하고 국민들과 동떨어지게 된 것은 의사들의 책임이 큽니다. 저희들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의료 분야의 전문가들입니다. 조금은 아니꼽고 밉더라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셔야 합니다.


- 당신 말대로 나를 비롯해 많은 국민들은 비양심적이고 권위적인 의사들을 많이 경험하였다. 의대생들을 뽑을 때에 너무 성적 위주로 해서 그런 것 아닌가? 인성이 갖추어진 학생들을 선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묻겠습니다. 인성은 무엇으로 평가하겠습니까? 신뢰할 만한 인성 검사가 과연 있을까요? 인성이란 것은 평가하기가 모호한 것입니다. 그런 대안은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그 대신에 의대생들은 의과대학의 전 과정에 걸쳐 엄청난 양의 윤리 교육을 받습니다. 입학 시부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의사가 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각종 교육 과정을 통해 거의 세뇌라 할 정도의 윤리 교육을 강요받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 어느 집단에 이런 윤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같은 집단내의 평가도 계속 이루어집니다. "저 의사는 환자의 생명, 건강보다는 돈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같은 의사 집단내에서도 따돌림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본능적으로 경제적인 이익보다는 환자의 생명, 인권,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우선시하려 노력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일부 의사라도 적어도 대놓고 자신의 이기적 탐욕을 드러내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국민들은 그런 의사들의 진심을 알아주셔야겠습니다. 물론 비양심적인 의사들에게는 따끔한 충고와 질책이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계속)


* 훌륭한 댓글을 달아주시고 질문을 올려주신 우공지마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글은 우공지마님의 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 많이 지루하시지요? 참고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께 서비스해드리기 위해 이 논제가 마무리되는 대로 "수술 용어, 이것만 알면 의학 드라마 수술 장면 200% 즐길 수 있다."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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