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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Apr 02.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32

파란 벽돌을 만나다.-17

파란 벽돌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 수술장 CCTV 설치가 수술하는 의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어려운 수술을 기피하게 만든다는 의견도 있다.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제가 얼마 전 말씀드렸던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비유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며느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어머니를 초대하여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대접해 드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남이 대신 준비한 음식을 내오지는 않는지 의심하고 요리하는 과정을 감시하였습니다. 감시를 하다 보니 원래는 가지지 않았을 쓸데없는 오해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며느리가 요리 중에 실수를 하였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자기를 골탕 먹이기 위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음식을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사건건 트집 잡아 며느리를 꾸중하게 되었지요. 성심껏 시어머니를 모시려 했던 며느리가 이런 의심을 받고 그 결과 서운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며느리의 마음속을 잠시 들여다볼까요?

"아이, XX, 내가 미쳤지. 이런 시어머니를 위해 어젯밤 밤잠 못 자고 재료 준비를 해서 하루 종일 그 난리를 쳤었나? 차라리 김치찌개나 대충 끓여 드릴걸...... 내가 다시는 시어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나 봐라."

이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미지 출처: lifewithgod.kr

자신의 환자를 위해 철저히 수술을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해드리려는 의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퍼붓고 사사건건 트집 잡아 시비를 건다면 의사도 자기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환자의 건강을 위해 더 도움이 될 다소 복잡하고 위험한 수술을 기피하고 그것을 가능하면 편하고 간단하게 조정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쉬운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환자들만 치료하고 어려운 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보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 그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쉬운 수술만 골라서 한다니 의사가 그래도 되는 것인가?

우리나라 건강 보험 체계는 마치 굉장히 잘 만들어져 세계의 모범이 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사실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가 이것입니다. 위험성이 있는 큰 수술을 하는 것이나 안전하고 간단한 수술을 하는 것이나 수술료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큰 수술을 하나 하는 것보다는 작은 수술을 여러 개 하는 것이 병원 수익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위험한 수술을 하다 보면 의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수술을 잘하더라도 불가피하게 합병증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술 전에 잘 설명드리면 많은 분들이 이해해주시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작은 합병증이라도 발생하면 의사가 제대로 수술을 하지 않았거나 실수를 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오해하는 것이지요. 소위 의료사고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설득하는 것이 의사로서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거기서만 그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중 상당수가 경제적인 보상을 원하고 또한 의료 분쟁 위원회, 소비자 보호원, 더 나아가서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의사가 벌을 받아야 한다고 형사 소송까지 걸기도 합니다. 의료 사고라 불리는 것들의 많은 경우는 이런 예들입니다. 의사가 짬짬이를 해서 서로를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가 환자분들에게 승산이 없는 분쟁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의사측이 승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그렇다면 된 것 아닌가? 억울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공권력이 의사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면서 왜 그리 엄살을 피우나?

문제는 그 과정에서 여러 곳을 불려 다니면서 조사를 받고, 해명서 등의 서류를 작성하고, 법원에 출석도 해야 하는 등 시간적,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겪게 된다는 점입니다. 자칫 형사 소송이라도 걸린다면 경찰서나 검찰에 출두해야 하는데 거기서는 거의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지요. 그런 수모를 몇 번 겪고 나면 "앞으로는 힘들고 번거로운 수술, 특히 합병증이 생길 만한 수술은 아예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아직까지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어려운 수술들을 책임지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듭니다.


문제는 우리 후배 의사들입니다. 소위 밀레니엄 세대라고 불리는 현재의 젊은이들은 보람은 있지만 힘든 삶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원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이런 친구들이 자신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힘든 수술들을 떠맡으려 할까요? 잘하고도 욕먹고, 열심히 하고도 소송당할 수 있는 위험한 치료를 자신이 하겠다고 손을 들겠냐는 말입니다. 거기다가 그런 일을 하더라도 경제적인 보상은 없습니다. 수술료는 거의 비슷하니까요. 아니, 그들까지 내려가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나라는 향후 몇십 년 이내에 중증 환자의 수술을 책임질 의사들이 부족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큰 사회 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대안이라도 있는가?

그동안 축적된 문제들이 너무 많아 이제 그것들을 한꺼번에 푸는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 듯 꼬여 있는 실타래를 모두 풀어헤쳐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은 저 같은 일개 의사가 해내기도, 또 말씀드리기도 버거운 과제입니다. 다만 이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는데 이렇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본분을 잊지 않고 환자분들을 위해 어려운 수술들을 해 나가고 있는 성실한 의사들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히면 그들도 지키고 있던 자리를 떠나갈지 모릅니다.


이미지 출처: 인사이트

- 당신의 주장을 죽 들어보면 너무 의사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라 독자님들 중 많은 분들이 동의를 해주시지는 않을 것 같다. 그냥 당신의 푸념 정도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겠다. 

네, 맞습니다. 저도 이런 짧은 글로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수술장 CCTV 설치 문제를 기화로 현재 의료계의 문제점 몇 개를 새로이 알고 앞으로 의료 관련 정책 결정을 할 때 그 점들을 함께 고려해 주신다면 제 하소연도 그리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자위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항상 말합니다. "의사는 달라야 한다. 의사는 환자와 국민의 건강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그것이 의사의 존재 이유이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의사도 사람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능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의사들은 성직자를 꿈꿉니다.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기적인 생각에 유혹당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본분을 지키자고 의지를 추스르고 또한 기도합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제 이 이야기도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군.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독자님들께는 별로 흥미 없는 이야기를 제 욕심에 너무 장시간 끈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이 지루하셨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구독을 취소하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제가 구독자 수에 그리 연연해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제 독자님들이 재미없는 글로 시간 낭비하시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당분간 무거운 소재들을 뒤로 미루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들려 드리겠습니다. 쓸데없이 심각한 글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그러게 말이다.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앞으로는 잘하길 바란다. 나도 졸음을 겨우 참아가면서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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