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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Apr 02.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33

의학 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재미있게 보려면-1

자, 우선 비디오 한 편 보고 가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LSqE9evCPtw


의학 드라마 즐겨 보시죠? 아시겠지만 거기에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긴박한 현장에서 환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의사들이 항상 등장합니다. 그런 이들을 보다 보면, 이기적인 인간들이 판을 치는 현실에 지친 피곤한 마음이 잠시 힐링되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게다가 의사, 간호사로 일하는 선남선녀들이 가슴 설레는 사랑을 하게 된다면 또 어떨까요? 또한 병원 내 권력 등을 놓고 벌이는 암투나, 실력 있는 의사들을 시기하고 견제하는 인간 군상들 같은 소재가 섞여 들어간다면 드라마는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잊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빨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의학 드라마의 흡인력을 높이는 매력은 또 있습니다. 이야기의 소재와 장면들이 일반분들에게는 매우 생소해서, 신기하게까지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잘 모르는 만큼, 부족한 부분을 시청자들의 상상력으로 메꾸기 때문에 저마다의 새로운 스토리로 만들어 가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따져보자면 의학 드라마의 꽃은 역시 수술 장면일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긴박하고, 처절하고, 유능한 의사의 실력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모르는 수술 기구나 해부학 용어들이 난무해서 뭔가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는 신비스러움도 느껴질 수 있고요.


지난 몇 편의 지루한 글들을 잘 참아내신 독자님들께 드리는 선물로 이번 시간에는 의학 드라마의 수술장 씬을 더 재미있게 감상하실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전해 드리려 합니다. 이것만 알고 계시면 수술 장면 중에 의료진이 중얼거리는 의학 용어를 빨리 알아들으시고 "아, 저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구나." 하고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1. 수술복은 왜 청록색인가?

수술복은 의료진이 수술장 안에서 착용하는 의복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이것이 녹색이나 청색이 위주가 된 주로 청록색으로 만들어진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예쁜 색들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우중충한 색으로 만들어 입을까요? 노란색, 빨간색, 아니면 하얀색은 어떨까요? 아니면, 저마다 자기가 마음에 드는 색깔로 골라 입게 해서 수술실을 알록달록, 화사하게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요? 수술하는 의료진들의 마음도 가벼워지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술실에는 수술 부위를 밝게 비추어주는 무영등(無影燈)이라는 조명 기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그림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등을 말합니다. 보통 수술 부위는 환자의 피부를 절개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오목하게 형성되고 그만큼 그늘져서 어두워 보입니다. 그곳을 잘 보이도록 비춰 주는 밝은 광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광원이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수술 절개부와 여러 수술 기구에 가려진 그림자를 늘어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수술 부위에 그늘을 만들어 밝은 시야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따라서 수술 조명은 짙은 그림자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여러 방향에서 들어오는 광원을 필요로 하는데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수술용 무영등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매우 여러 개의 전구가 들어있는 것이 보이시죠? 이 수십 개의 광원이 각자 수술 부위를 비추어서 하나의 큰 그림자가 형성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수술은 환자의 몸에 상처를 내고 하는 작업이지요? 그래서 불가피하게 출혈이 발생합니다. 무영등에서 나오는 밝은 조명 아래에서, 환자의 몸에서 나오는 붉은 피를 계속 응시하고 있다 보면 우리 망막에서 붉은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圓錐細胞)가 피로해집니다. 이때 갑자기 하얀 바탕을 바라보면 거기에 붉은색의 보색인 초록색의 잔상이 남게 됩니다. 하얀색이 초록색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만약 다른 색을 본다면 초록색이 섞인 잔상이 보이게 됩니다. 이것은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의 색각(色覺)에 혼동을 일으켜 시각적인 피로감을 증폭시킵니다. 따라서 수술복이나 수술 가운, 그리고 수술장의 벽을 하얀색이 아닌 청록색 계열로 맞추는 것입니다. 수술 도중 수술자들이 시선을 들어 주위를 바라볼 때 만들어지는 시각의 혼선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라는 말이지요. 아쉽게도 노란색, 붉은색, 하얀색이 섞인 꽃무늬 수술복은 앞으로도 만들어질 수 없겠네요.


2. 메스(mes)?

자, 이제 집도의가 수술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럴 때 수술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용어가 있지요? 집도의가 "메스!"라고 하면서 절개용 칼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신 비디오에서도 나오지요? 그런데 이 메스라는 용어는 원래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왜 하필 영어도 아니고 스페인어도 아닌 네덜란드어가 등장한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우리나라의 현대 의학이 일본을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은 예로부터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서양 문물을 많이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외과 수술과 그 기구들이 함께 전해지면서 아마도 외과용 수술칼인 메스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현대 의학은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이곳에서 일하던 일본인 외과 교수들이 수술 기구의 이름을 부르던 것이 그대로 우리 문화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미국 의사들은 당연히 메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scalpel 혹은 knife라는 단어를 쓰지요.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절개용 칼을 이렇게 부르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저요? 저는 아직까지도 촌스럽게 메스라고 부릅니다. 아무래도 두 음절이라서 발음하기 쉬워서요.


절개용 스칼펠


그런데 이 스칼펠을 잘 보시면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손에 쥐는 부위인 핸들(handle)과 날(blade) 부분입니다. 핸들에 다양하게 생긴 일회용 블레이드를 갈아끼울 수 있게 되어있는 구조이지요. 이 블레이드는 절개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블레이드

그림에 나온 블레이드들을 보면 뿌리 부분에 번호가 적혀있지요? 그 번호를 불러서 생김새를 구별합니다. 보통 수술장에서 많이 쓰는 것은 10, 15, 20, 11, 12번 정도입니다. 큰 절개를 만들 때에는 20번(더 큰 절개를 요할 때에는 21 22번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 보다 작은 절개에는 10번, 더 작은 절개에는 15번 블레이드를 사용하고 11, 12번 같은 뾰족한 블레이드는 아주 섬세한 절개나 혹은 고름 주머니를 터뜨리는 데 사용합니다. 이건 처음 들으셨겠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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