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벽돌 Apr 03.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34

의학 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재미있게 보려면-2

이것도 재미 삼아 한 번 보세요. 낭만 닥터 김사부의 한 장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yt4QGzPwWw


의학 드라마의 또 한 가지 매력은 미숙하던 의사가 뛰어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인격적으로 또한 의학적으로 점차 발전해 나가는 성장 드라마의 요소가 섞여있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한' 캐릭터의 성장은 인간의 원시적 쾌감을 만족시키는 굉장히 중요한 자극제입니다. 우리가 즐겨 보았던 무협지나 만화에서도, 흔하게 하고 있는 컴퓨터나 온라인 게임에서도, 심지어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각고의 노력 끝에 점점 강해지는 주인공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묘한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아마도 현실 세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청년 의사 시절을 돌이켜 보면 당시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던 처참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이 좋게도 여러 분의 좋은 스승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배움의 속도가 느린 저의 손을 잡고 힘들게 억지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조금 더 나은 의사로, 또한 조금 더 갖추어진 인간으로 키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나마 제 구실을 하고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새삼 그분들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또한 저도 제 후배들에게 본받고 싶은 사표(師表)가 되기 위해 게을러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오늘은 왠지, 오랜만에 제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네요. 슬그머니 손을 머리에 올려 쓰다듬습니다. "그동안 빗나가지 않고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 힘들었을 때에도 잘 참고 이겨내며 아주 뛰어나지는 않을지언정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낸 것을 축하한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속삭입니다. 


3. 보비 전기 소작기(Bovie electrocoagulator)

메스로 수술부에 절개를 가하면 집도의는 틀림없이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보비!" 

입에 착착 붙을 정도로 발음하기 쉬운 짧은 단어이기도 하고, 무척 귀엽게 느껴지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마치 강아지 이름 같기도 하지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나 봐요. 엄지 작가님의 브런치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다른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한 번 읽어 보십시오.

https://brunch.co.kr/@thumbs-up/31

그렇다면 보비는 무엇일까요? 보비는 수술에 사용되는 전기 소작기의 이름입니다. 드라마에서 보시면 보비라는 것을 건네받은 의사가 환자의 몸에 무엇인가를 하는데 거기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환자의 조직을 보비라는 기구로 살짝 태워 지혈을 하고 또한 수술부를 더 깊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보비 나이프. 연필 모양으로 끝에 금속 팁(tip)을 꽂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위로 지혈을 하고 상처를 절개합니다. 삼발이가 달린 플러그로 본체와 연결합니다.
보비 전기 소작기의 본체(왼쪽). 전류를 형성하여 공급합니다. 본체에 연결된 선과 끝에 달린 소작기가 보이죠?

전기에 대한 연구는 18, 19세기에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물리학자 베크렐(Becouerel)은 전기를 이용해서 철사 바늘에 열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전기가 사람의 몸을 통하면 감전이 되어 죽거나 다친다고 알고 계시지요?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20KHz 이상의 높은 주파수의 전류는 사람의 몸을 그대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전극의 접촉부에 열이 발생하지만 말이지요. 1891년 d'Aronval이라는 사람이 알아낸 것입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 1920년 생체 물리학자인 William T. Bovie라는 사람이 드디어 실용적인 의료용 전기 소작기를 만들어 수술에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Bovie가 만든 기계를 호칭하는 말로 쓰였지만 이러한 전기 소작기가 현대적인 외과 수술에 필수적인 기구로 쓰이게 되자 이제는 다른 회사에서 만든 유사한 종류의 소작기도 모두 '보비'라고 불리게 됩니다. 고유명사가 보통명사로 불리게 된 것이지요. 그럴 만도 합니다. 보비의 발명은 외과 수술의 수준을 한꺼번에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보비 사용 이전에는 피부 절개를 하고 나면 출혈을 지혈하기 위해 장시간 압박을 가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압박으로 지혈이 불가능한 큰 혈관은 일일이 실로 묶어야만 했습니다. 수술 중에 소실되는 출혈량도 출혈량이지만 수술 과정이 복잡해지고 그만큼 시간이 지연되었다는 말입니다.

보비의 원리를 간단히 살펴볼까요?(왼쪽 그림) 저도 전기 과학에는 문외한이라서 깊이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독자님들이 지루해하실 만큼 복잡하게 설명드릴 능력도 없습니다. 아주 간단히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고주파의 전류는 인체를 그대로 통과하여 인체에 전기 충격이나 자극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전극이 닿는 부위에 짧은 스파크나 열을 발생시킵니다. 인체에 전류를 통과시키려면 두 개의 전극이 필요하겠지요? 하나는 보비 나이프에 달려 있는 팁입니다. 이것을 활성 전극(active electrode)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환자의 허리, 엉덩이, 허벅지 등 편평하고 넓은 부위에 부착합니다. 이것을 중립 전극(neutral electrode)라고 합니다. 접촉부가 좁을수록 높은 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중립 전극의 면적은 넓어야 합니다. 보비 나이프의 스위치를 누르면 활성 전극과 중립 전극 사이에 전류가 흐릅니다. 그러면서 접촉면이 좁은 나이프의 팁 부위에 스파크와 열이 발생합니다. 이 열로 생체 조직과 혈관을 적절히 태워 지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보비는 지혈만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피부를 제외한 수술 상처부를 깊게 절개할 수도 있습니다. 출혈이 안되게 아주 깨끗하게 말이지요. 이것은 전류의 파형과 주파수를 제어함으로써 가능합니다. 만약 0.3-3 MHz의 sign wave인 고주파 전류를 조직에 방전시키면 전자 충돌로 국소 고압에 동반된 비점 상승이 일어납니다. 이때 스파크가 이동하면서 압력이 낮아지면 순간적으로 수분이 폭발되어 조직이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칼로 절개를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듭니다. 만약 고주파 전류를 사인파처럼 연속적이 아니라 단속적으로 흘려보내면 수증기 폭발을 일으키기 전에 전류가 끊어져서 주로 조직 단백질의 변성만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혈액 응고를 통한 지혈 작용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이곳을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m.blog.naver.com/hyjh58/60026705970


휴우~, 잘 모르는 내용을 말씀드리려니 진땀이 나네요. 그럼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보비는 원래 지혈을 

목적으로 인체를 부분적으로 태우는 용도로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전류의 파형을 조절함으로써 마치 칼과 같이 인체 조직을 절개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두 가지 용도를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하는 기구로 발전하였습니다. 보비 나이프를 보시면 노란색, 파란색 버튼이 보이시죠. 노란색을 누르면 절개용(cut), 파란색을 누르면 지혈용(coagulation, 응고)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수술장에서는 주로 앞 글자를 따서 "컷(cut)" 혹은 "코(coaguation)"라고 호칭하여 구분합니다. 흔치는 않지만 가끔 드라마 수술 장면에 나올 것입니다. 보비의 사용법에 대해서는 유튜브에 좋은 자료가 있어서 첨부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cQGZDqvYYk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편리한 수술 기구인 보비에도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보비를 사용하면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 연기 속에 벤젠, 시안 화합물, 포름 알데하이드 등 발암 물질이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외과 의사의 호흡기로 들어가면 위험하겠지요? 외과계 의사는 참으로 힘든 직업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묵묵히 오늘 할 수술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해 너무 늘어졌네요. 오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음 시간에는 드라마 수술 장면에 너무도 흔하게 등장하는 "석션(suction)"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3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