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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Apr 04.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36

의학 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재미있게 보려면-4

https://www.youtube.com/watch?v=siqzHiepm6Q

선배 의사가 후배 의사를 교육할 때, 특히 수술을 가르칠 때에는 아직도 스승이 제자를 일대일로 직접 가르치고 평가하는 도제 교육의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도제(徒弟)는 원래 중세시대에 시작된 상인과 장인의 직업 교육 제도입니다. 젊은 세대의 제자를 업무에 종사시키고 그 대가로 기술을 가르쳐 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병원에서의 전공의, 전임의 교육을 보면 딱 그러합니다. 잘 모르시겠다면 무협 영화를 떠올리시면 되는데요. 무술의 고수를 찾아가 무술을 배우려 할 때 사부님이 바로 발디딤, 정권 찌르기, 권법부터 가르쳐 주지는 않잖아요? 제자가 밥도 짓고, 마당도 쓸고, 땔나무도 해오다가 그 보답으로 기초 무술 몇 조각을 얻어 배우는 것입니다. 뭐 아주 정확하게 비유되지는 않겠지만 의사도 전공의, 전임의로 스승과 한 몸이 되어 일하면서 그로부터 의학과 의술의 단편을 습득하여 종합적으로 자기 것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지요.

무협 영화에서는 제자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스승은 흐뭇한 마음으로 하산을 명하는데요, 외과 수술에서도 그런 과정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신 것과 같이 제자에게 수술의 일정 부분을 집도시켜 보는 것입니다. 보통은 수술 절개부터 시작하게 되니까 상징적으로 "칼을 맡겨 본다."고도 표현하는데요 그래서 저 드라마에서 "메스 저쪽으로 주세요."란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제자로서는 굉장히 영광스러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이리게이션(irrigation)!!!

이리게이션도 수술 장면 중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용어입니다. irrigate라는 동사의 명사형이지요. irrigate는 네이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1.     동사  (땅에) 물을 대다, 관개하다   

2.     동사  의학 (상처 등을) 세척하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수술에서는 두 번째 뜻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상처부를 물로 닦아 내는 것이지요.

물이라고 해서 맹물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맹물을 쓰면 삼투압에 의해 정상 조직이 부어서 죽게 됩니다. 생리 식염수(normal saline)를 사용합니다. 0.9%의 소금기가 섞인 증류수를 말하죠. 인체 조직 내 염분 농도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여기에 그때그때 목적에 따라 균을 죽이는 항생제나 암세포의 성장을 막는 항암제를 섞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미지 출처: TheScienceLab

이리게이션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생체 내에 들어간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사고로 상처를 입었거나 아니면 외과적 절개로 수술부가 개방되어 있으면 외부로부터 생체내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물질들이 들어가기 쉽습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한꺼번에 물로 씻어내는 것이 가장 편리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도 구석구석 닦일 것이고요. 

두 번째로는 상처부에 생긴 출혈이나 피떡을 제거하려는 목적입니다. 석션을 통해 이런 것들을 빨아 내더라도 상처부나 장기의 표면에 피나 피떡이 붙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즈로 닦아내려 하다가는 조직에 다시 손상을 주어 출혈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생리 식염수로 세척하면 조직의 표면이 아주 깨끗하게 보입니다. 손상된 부위, 혹은 출혈 부위를 찾거나 수술 부위를 청결하게 유지하려고 할 때 아주 도움이 되지요.

세 번째로는 수술을 통해 새로 생겨난 장기의 파편, 괴사된 조직, 봉합사의 조각 등 수술 찌꺼기 등을 제거하기 위합니다. 이것들이 남아있으면 자칫 감염균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배지로 작용할 수가 있거든요. 균의 은신처가 마련되어 수술 후에 사용하는 항생제가 작용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생리 식염수를 가하면 이런 찌꺼기들이 쌀뜨물처럼 물에 둥둥 떠올라서 씻겨 내려가게 됩니다.

네 번째로는 감염이 광범위한 경우 항생제를 식염수에 섞어서 세균을 죽이기 위해, 암이 넓게 전이되어 있는 경우 항암제를 식염수에 섞어서 안 보이는 암세포를 잡기 위해 이리게이션을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수액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지막 것이 이리게이션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수술 부위나 상처에 옮겨 붙은 세균의 수를 줄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청결한 수술장에서 멸균된 수술포를 덮고 멸균된 수술복과 수술 장갑을 끼고 수술을 하더라도 수술부에 세균이 하나도 남지 않게 수술을 마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불가피하게 이식된 세균의 수를 줄여주기 위해 세척을 하는 것입니다. 수술이나 상처부에 부착된 세균을 씻어내기도 하지만 깨끗한 식염수를 반복적으로 가하여 그 균의 수를 희석시키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항생제를 사용하면 더 쉽게 남은 균들을 죽일 수 있으니까요. 이전 글에서 제가 균이 묻어있는 것을 먹물이 묻어 있는 것에 비유한 적이 있지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이해하시기 쉽습니다. 수술 부위에 모르는 사이에 먹물이 묻었다고 합시다. 이것을 가능한 한 완벽히 제거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깨끗한 물로 닦아내는 것입니다. 그래도 먹 성분이 하나도 남지 않게 할 수는 없겠지요? 차선책으로 많은 양의 물로 그 성분을 가능한 한 옅게 희석시키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dreamstime.com

그렇다면 이리게이션은 어떻게 할까요? 위에 보이는 그림이 수술장에서 이리게이션을 위해 준비된 생리 식염수입니다. 가장 흔하게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은 bulb syringe를 사용하는 것인데요, 간단히 말해서 아주 크게 만든 스포이드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위에 달린 고무공을 꾹꾹 누르면 여러 번에 걸쳐 물총이 쏘아지듯 물이 분사됩니다. 물청소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이렇게 분사시키는 방법이 그냥 물을 들어붓는 것보다 이물질, 피떡, 찌꺼기 제거에 더욱 효과적이겠지요? 이러한 방법을 일반적인 것과 비교하여 pulsatile irrigation이라고 합니다. 이런 방법 말고도 일회성으로 이리게이션용 주사기(syringe)를 이용해 물을 쏘기도 합니다. 때로는 대접째로 물을 들이 붓기도 하는데 복강안이나 넓은 상처 부위에 제거해야 할 피떡이나 이물질의 양이 많을 때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드물게는 외과 의사가 아주 성미 급한 분이라서 소량의 물을 나누어 붓는 것을 참지 못해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말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bulb syringe(왼쪽)와 irrigation ryringe(중앙과 오른쪽)

다음 시간에는 드라마에 나왔던 '타이'와 '리트렉터'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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