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재미있게 보려면-5
드라마를 한 번 보시고 글을 읽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siqzHiepm6Q
드라마의 주인공인 최인혁 과장이 수술에 들어온 인턴 선생에게 "타이 연습 많이 했냐?"라고 물어보고 타이를 시켜보는 장면이 나오지요? 또 제대로 못했다고 혼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타이'가 무엇이길래 수술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미리 연습을 해야 하고 또한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중요한 수술 테크닉이 되었을까요? 궁금하시죠?
5. 타이(tie)
타이는 짐작하셨다시피 영어로 'tie', 즉 묶는 것을 말합니다. 수술 중 혈관을 묶어서 막거나, 위장관을 잘라서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막을 때 많이 사용됩니다. 또한 분리된 두 조직을 연결하기 위해, 소위 바느질이 필요할 때 집도의가 필요한 부위를 바늘로 뜨면 수술 보조자가 그 실 끝을 받아 조이고 묶어 봉합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임시로 조직을 당겨 놓기 위해, 혹은 표식을 해 놓기 위해 실로 묶어 매듭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요. 이렇듯 타이는 외과 수술, 특히 말랑말랑한 장기를 다루는 일반 외과와 흉부외과 수술에서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 수술 테크닉입니다. 어떤 수술에서는 타이하고 자르고, 꼬매고 타이하는 것이 거의 수술 과정의 전부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이는 이렇게 수술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테크닉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수술에서 집도의나 수술을 보조하는 의사가 타이를 얼마나 빨리 능숙하게 하는가가 수술의 질과 수술 시간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술은 몇 명이 할까요?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의 숫자는 그 수술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본적으로 외과의 수술 인력은 4명의 수술자와 1명의 스크럽 간호사(수술 기구들을 준비하고 그것을 건네주는 간호사)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실제로 수술의 중요 조작을 담당하는 것은 집도의(operator)와 제1 보조자(first assistant)입니다. 드라마에서 '어시 선다.', '어시 들어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 제1 보조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알바'처럼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영어 줄임말이지요. 그럼 나머지 제2, 제3 보조자들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집도의와 제1 보조자 옆에 서서, 수술 시야를 가리거나 수술 작업에 방해되는 장기나 근육들을 당기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중간중간 두 사람을 도와 중요한 조작을 하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따라서 제2, 3 보조자는 꼭 능숙한 의사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곧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술의 대부분은 집도의와 제1 보조자에 의해 수행됩니다. 이렇듯 이들의 수술 능력은 매우 중요하고 또한 이들의 손발이 아주 잘 맞아야 매끄럽고 완벽하게 수술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자, 이제 머릿속으로 수술 장면을 한 번 그려 보십시오. 수술 부위를 절개하고 수술의 목적이 되는 장기를 찾아들어갑니다. 그 앞을 혈관들이 가리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묶어서 가운데를 자르고 양쪽으로 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집도의가 수술 집게에 물린 실을 받아 듭니다. 이것을 혈관 주위로 통과시켜 실이 혈관을 감싸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어떻게 할까요? 실의 양 끝을 제1 보조자에게 건네주고 근엄하게 외칩니다.
"타이!"
네, 이 말을 들은 제1 보조자는 재빨리 실을 묶어 매듭을 만들어야 합니다. 되도록 빨리, 그리고 풀리지 않게.... 물론 서두르다가 실이 끊어져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그 번거로운 작업을 다시 한번 해야 하거든요. 이 중에 뭐라도 하나 잘못하면 집도의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입니다. 이 긴장된 순간에 완벽한 타이를 하기 위해 외과 의사들은 자기 방에서, 혹은 수술 중간 짬이 날 때마다, 혹은 밤잠을 줄여가면서 수만 번, 수십만 번의 타이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눈 감고도 타이를 반복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지요. 저요? 저도 물론 이런 경지에 올랐지요. 아마 그렇지 못한 외과 의사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자, 잠시 초보 의사들의 타이 연습을 위해 저희 병원에서 만든 동영상 자료를 한 번 보고 가실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0hfXVjw9RoM
잘 보셨나요? 타이는 한 손으로 매듭을 만드는 방법, 그리고 양손으로 매듭을 만드는 방법,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각각 one-handed tie, 그리고 two-handed tie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쉽게 이해가 갈 텐데 하나 생소한 점이 있지요? 정방향 혹은 역방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아시기 위해서는 외과적 매듭(surgical knot)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외과적 타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매듭이 풀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고생해서 묶어 놓은 매듭이 풀리면 복잡한 수술 과정을 쓸데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만약 큰 혈관을 묶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느슨해진다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출혈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타이는 가능한 한 느슨해지거나 풀리지 않게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또한 어느 정도 공식화시켜야 합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매듭이라...... 그런 것이 있을까요? 의사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이것입니다. 매듭의 꼬이는 방향을 교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square knot라고 합니다. 그림을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들이 흔히 묶는 방법으로 매듭을 만드는데 한 번은 실끝이 위에서 아래로 통과하게 다음번에는 실끝이 아래에서 위로 통과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방향을 정방향이라 한다면 반대 방향을 역방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정방향과 역방향의 타이를 교대로 하다 보면 그림에서와 같이 잘 풀리지 않는 square knot가 만들어집니다. 그래도 불안하기 때문에 매듭은 3-4회 반복해서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꽉 조이고 실끝을 잘라내는 것이지요. 드라마 수술 장면을 보시면 타이를 마친 후에 두 개의 실끝을 모아 쥐고 수술자가 외칩니다. "컷!" 다른 보조자에게 실끝을 가위로 잘라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타이를 능숙하고 매끄럽게 하는 의사의 손끝을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앞의 동영상에서 보셨다시피 매듭을 만드는 손동작이 무척 예쁜 데다가 그것을 반복적으로 리드미컬하게 하면 그 움직임이 제법 볼만 하거든요. 게다가 one-handed와 two-handed를 적절히 섞어서 타이를 해나가는 의사들을 보면 마치 행위 예술을 하는 것처럼 매혹적으로 느껴집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직접 보시면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제 수다가 또 분량 조절을 못하게 만들었네요. 다음 시간에는 약속드린 대로 리트렉터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이것도 꽤 재미있는 부분이니 놓치지 마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