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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Apr 06.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38

의학 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재미있게 보려면-6

https://www.youtube.com/watch?v=siqzHiepm6Q


6. 리트랙터 (Retractors) 

드라마 수술 장면에서 흔하게 나오는 용어 중 하나가 '리트랙터(retractor)'입니다. retractor는 retract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retractor라는 단어를 네이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retractor      

1.     명사  끌어당기는 사람[물건]; 앞서 한 말을 취소하는 사람, 철회자 

2.     명사  해부 수축근(opp. protractor) 

3.     명사  외과 견인기(器) ((상처를 비집는 기구)), 견인 붕대 


의학 용어로 사용될 때에는 3번의 뜻입니다. 외과 견인기를 말하죠. 그럼 외과 견인기는 무엇일까요? 의학 사전상 정의는 '외과적 절개부나 상처의 양쪽 끝을 분리시키거나, 절개부 밑에 있는 부위에 도달하기 위해 하부에 있는 장기나 조직을 당겨서 유지시켜 주는 의료 기기'입니다. (A retractor is a surgical instrument used to separate the edges of a surgical incision or wound, or to hold back underlying organs and tissues so that body parts under the incision may be accessed.). 말이 조금 복잡하지요? 그냥 쉽게 말해서 조직이나 장기를 벌린 채 당기고 있기 용이하게 만든 수술 기구입니다. 사람의 몸은 탄성이 있지요? 그래서 조직을 칼로 가른다고 하더라도 저절로 충분히 벌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개를 가한 부위의 양쪽 끝을 양방향으로 힘주어 당겨야 우리가 보려는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지요. 그래서 수술 목적인 신체 일부를 노출시켜 시야를 유지하고 손이나 기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누군가는 양쪽에서 조직이나 장기를 당긴 채 버티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리트랙터의 역할이지요. 


당연히 이런 기구의 종류는 절개부의 크기, 깊이, 용도,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합니다. 때문에 모든 종류의 리트랙터를 다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도 많고요. 이번 시간에는 수술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 그러니까 의학 드라마에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기구들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리트랙터는 크게 손으로 쥐고 당기는 것(hand-held retractor)과 자동으로 당기는 것(self retraining retracor), 두 가지로 나뉩니다. hand-held retractor는 사람이 손에 쥐고 직접 힘을 써서 당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당길 사람이 필요하죠. 그것이 제2, 제3 보조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self retraining retracor는 기구 자체가 견인력을 발휘해 조직을 벌리고 있게 만든 장치입니다. 따로 당기고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도 되니까 수술에 참여할 인력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사람처럼 섬세하게 견인을 조절할 수는 없습니다. 양쪽 모두 일장일단이 있습니다만 요즘은 인건비가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또한 감염을 피하기 위해 수술장에 드나드는 인원수를 제한하는 추세라서 self retraining retracor의 활용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구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제2, 3 보조자 없이도 수술을 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수술의 중요 작업을 담당하는 집도의와 제1 보조자만 있어도 된다는 말이지요. 저는 거의 이렇게 두 사람이서만 수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수술실도 조용해지고 제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도 훨씬 넓어져서 저에게는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우선은 hand-held retractor 중 흔하게 사용되는 몇 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 Army Navy (아미 네이비)

수술 장면 중 '아미 네이비' 혹은 줄여서 그냥 '아미'라고 호칭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특이한 이름이지요? '육군 해군'이라니요. 이 기구의 이름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한 설명은 없습니다. 유력한 설은 미국의 육군 병원과 해군 병원에서 자기네 이름을 따서 사용하던 기구가 있었는데 이것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것입니다. 사진을 한 번 보시죠.

서로 크기가 다른 두 개의 갈고리가 손잡이 하나에 마주 보며 붙어 있지요? 아마도 한쪽이 육군 병원에서, 또 다른 한쪽이 해군 병원에서 쓰던 기구였겠네요. 그런데 이 갈고리를 보면 크기가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껍지 않은 조직만 당길 수 있지요. 아미 네이비는 작은 상처나 복부 수술 중 깊이가 깊지 않은 표면부를 당길 때 주로 사용합니다. 즉, 막 절개를 가한 수술의 초기와 상처를 꿰맬 때인 말기에 많이 쓰입니다. 


2) Richardson retractor (리차드슨 리트랙터)

흔히 줄여서 '리차드슨'이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이 기구를 고안해 낸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겠지요. 그림에 있는 삼 형제 중 가장 우측에 있는 것이 원형 리차드슨입니다. 아미 네이비보다 갈고리 부분이 더 커졌지요? 따라서 더 크고 두꺼운 부위를 당길 때 사용합니다. 모든 리트랙터가 그렇듯 당기고 있는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 모서리는 둥글둥글 곡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접힌 모서리도 직각이 아니라 부드럽게 꺾여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리차드슨이 자식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것들은 '베이비 리차드슨'이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원형 리차드슨이 조직을 당기고 있기에 매우 편리했나 봅니다. 그래서 작고 얇은 상처부도 이것을 이용해 당기고 싶어졌고 그래서 소형 리차드슨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름은 근사하게 '베이비'를 붙여 만들었고요. 삭막한 수술장이지만 그 안에도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습니다.


3) Deaver retractor (디버 리트랙터) 

이 기구는 틀림없이 Deaver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고안했겠지요. 역시 줄여서 그냥 '디버'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기가 상당히 크고 강력합니다. 그래서 복부 수술이나 흉부 수술에서 큰 장기 등을 당기고 있을 때에 사용합니다. 수술에 제2, 3 보조자로 들어가는 초보 의사들에게는 상당히 친숙한 기구이지요. 이것을 손에 쥐고 간, 위장관, 비장 등을 당기고 잘 알지도 못하는 수술을 바라보면서 몇 시간을 버텨야 하니까요. 저도 인턴 때 많이 사용했습니다. 마치 제 분신과도 같았지요. 그런데 이 디버를 끌어안고 있으면 왜 그리 졸음이 오는지 거의 무조건 반사 수준이었습니다. 한참 잠이 부족한 시기였으니까요. 때로는 졸음을 넘어 깊은 잠에 빠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그러면서도 디버를 놓치지 않고 적절히 힘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가끔은 견인이 느슨해지거나 무릎이 꺾여 교수님의 꾸중을 들었던 때도 있었지만요. 아, 지금 저 사진만 바라봐도 잠이 오네요. 앞으로 잠이 안 올 때 사용해 봐야겠습니다. 불면증 걱정은 덜어진 것 같네요.


리트랙터의 종류는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주로 그것을 고안한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지요. 수술의 종류에 따라 특이한 형태로 생긴 리트랙터가 적재적소에 사용됩니다. 이것을 다 말씀드리기는 불가능합니다. 앞의 드라마에서는 집도의가 그냥 '리트랙터!'라고 호칭하는데 그런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종류가 다양해서 수술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거든요. 물론 수술팀의 팀워크가 완벽하여 저렇게 말해도 필요한 기구를 착착 손에 쥐어줄 수도 있습니다. 거의 이심전심의 수준에 올랐을 때 말이지요. 수술을 오랫동안 같이 한 사이라면 집도의가 갑자기 수술 기구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어, 어,..." 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정확히 원하는 수술 기구가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슴 뿌듯한 감동적인 순간이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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