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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Apr 06.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39

의학 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재미있게 보려면-7

자, 오늘은 self retraining retractor에 대해 알아볼까요? 수술 도중 오직 당기기만 하고 있는 불쌍한 초보 의사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들이 자꾸 졸고 있는 것이 밉상이어서 그랬는지 의사들은 기계 스스로가 견인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자가 견인기(self retraining retractor; 제가 그냥 붙인 국문명입니다. 공식적인 용어가 아니에요.)를 개발해 내었습니다. 이런 견인기를 잘 사용하면 수술에 들어오는 인력을 한, 두 명 줄일 수 있는데요. 결국 수술에 동원되는 의사나 간호사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점점 사용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꼭 인건비뿐만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병원마다 모집해서 교육시킬 수 있는 인턴이나 전공의의 숫자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따라서 수술 건수에 비해 수술장에 들어올 수 있는 초보 의사들의 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꼭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자가 견인기에 의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거의 10년 전부터 자가 견인기를 여러 개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수술은 저와 제1 보조자인 전임의 선생 둘이 하는 경우가 많지요. 만약 전공의가 배우기 위해 들어오더라도 주로 편안한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수술 장면을 감상하게 됩니다. 세상 많이 좋아졌습니다.


우선 기본적인 소형 자가 견인기부터 볼까요? 아래의 사진들이 제가 수술 부위를 절개하고 뼈를 노출시키기 위해 상처부를 벌려나가면서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스스로 견인력을 유지하는 원리는 똑같습니다. 가위 손잡이처럼 생긴 부위를 오므리면 지렛대 작용에 의해 반대쪽 날 부분이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양쪽을 벌린 다음에 손잡이를 내려서 톱니 부위에 물리게 하면 고정이 되어 다시 오므라들지 않는 것입니다. 손잡이를 올려서 톱니를 풀면 다시 오므려서 견인을 중단할 수도 있고요. 우선 피부를 절개하면 마스토이드 견인기를 설치합니다. 날 부분이 작고 짧지요? 그래서 아미 네이비처럼 작고 얕은 상처를 벌리는 데에 적합합니다. 

마스토이드 자가 견인기 (Mastoid self retaining retractor)

수술 부위가 점차 깊어지면 이제 마스토이드 견인기를 제거하고 소뇌 견인기를 설치합니다. 아마도 예전에 소뇌부를 당기는 데 사용했었나 봐요.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습니다. 이것의 모양을 보시면 날 부위가 마스토이드보다 크고 둥글게 각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크지 않은 깊은 상처를 벌리는 데에 효과적입니다.

소뇌 견인기 (Adson angled cerebellar retractor)

이제 상처가 더 길어지고 깊어졌습니다. 소뇌 견인기로도 제대로 벌려놓기 힘들게 되었네요. 그러면 소뇌 견인기를 빼고 겔피 견인기를 설치합니다. 이것은 역시 깊은 조직을 당길 수 있도록 줄기 부위가 각이 져 있고 끝은 당기는 조직에 손상을 덜 주기 위해 뾰족한 침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로 척추 수술할 때 근육을 당기기 위해 사용합니다. 별로 복잡하지 않은 이 정도의 자가 견인기만을 사용해도 양쪽에서 조직을 당기고 있어야 할 두 명의 수술자가 필요 없어지는 것입니다. 가성비가 꽤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겔피 자가 견인기 (Gelpi self retaining retractor)

이상의 것들은 주로 근육이 많이 분포하는 척추 뒤쪽의 수술에 사용되는 것이고, 목의 앞쪽을 수술할 때에는 다른 형태의 견인기를 씁니다. 목 앞쪽에는 경동맥, 경정맥, 식도, 기도 등의 중요한 장기들이 있어서 저렇게 뾰족한 날이 달려 있는 견인기를 사용하기는 위험합니다. 다음 그림이 목 앞쪽을 수술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전방 경추 수술을 위한 자가 견인기

이것은 원리가 조금 다릅니다. 두 개의 견인 장치가 톱니가 파진 막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양쪽 견인 장치를 톱니의 원리를 이용해 딸깍딸깍 한 눈금씩 벌리면 간격이 만들어지면서 자동적으로 고정이 됩니다. 만약 견인을 중단하고 싶을 때에는 다양한 형태의 풀림 장치를 누르면 스르륵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림에서는 자가 견인기 두 개를 상하좌우로 설치한 것입니다. 사람이 당긴다면 적어도 네 개의 손이 필요하겠지요? 따라서 수술자 2명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제가 주로 하는 절개가 작은 척추 수술에 관련된 견인기들입니다. 만약 복부에 크게 절개를 가하고 수술을 할 때는 어떤 자가 견인기를 사용할까요? 거의 최초로 개발되어 현재까지도 많이 사용되는 복부 수술용 견인기가 있는데 아래 그림에 보이는 Balfour retractor입니다. 주로 위장관을 당겨서 별려 놓을 때 사용합니다. 양쪽 옆으로 두 개의 갈고리고 있고 밑으로 당겨주는 좀 더 큰 갈고리가 달려 있습니다. 만든 사람은 Donald Church Balfour (1882–1963) 박사입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아직까지도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로체스터의 Mayo clinic의 창립 멤버가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대단한 분입니다.

  

Balfour 자가 견인기
Donald Church Balfour

최근에는 복부 수술이 조금 더 복잡해지면서 간단한 형태를 가진 Balfour 견인기로는 조금 부족하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여러 개의 팔을 달아 다양한 형태의 견인 기구를 복잡한 각도로 설치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자가 견인기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있으면 거의 혼자서도 수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요? 하지만 기계는 기계입니다. 사람의 손처럼 섬세하고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견인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답답한 경우도 많습니다.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인턴 선생이 그리울 때가 있다는 말이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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