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짜리 소설]
도와줘요, 하이드 양(孃)-4

그녀의 등장

by 파란 벽돌

그날 밤엔 완전히 필름이 끊겼어요. 신입생 동기들이 오피스텔까지 데려다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요, 입학하자마자 혼자 자취했어요. 부모님은 대전에 계시고 저만 서울로 올라왔거든요. 학교 앞 작은 오피스텔을 얻었어요. 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집이 조금 여유 있어요. 깨어나 보니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내 침대 위에 누워 있었어요. 집에 덩그러니 혼자 놓인 내가,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것 같았어요. 거울에 비친 나를 보았어요. 머리가 좀 헝클어지긴 했어도 늘 보던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왜 그런지 그 낯익은 모습이 너무 낯설어 보이는 거예요. 우습죠?

선생님도 이런 경험이 있으셨나요? 그런 위화감은 나만 느끼는 거였나요? 자신의 밖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내가 알아왔던 나와는 전혀 다른 나를요. 죄송해요. 질문 그만할게요.


며칠 후 학교에 가보니 나는 우리 과의 스타가 되어 있었어요. 나의 익룡 버전 ‘쉬즈 곤’은 환영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선배들에게까지 알려졌어요. 지도교수님 이름은 몰라도 내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어요. 환영식에 갑자기 나타난 그 녀석이 나를 사람들에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나로 소개해준 것이었어요.

여자애들은 나를 만나면 신기한 듯 쳐다보며 웃었어요. 남자 선배, 동기들은 반갑다며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갔어요. 아, 사인을 부탁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나는 그저 멋쩍게 웃음을 지었을 뿐이에요.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소심한 한 명의 여대생이었어요. 그 녀석이 환영식 날 밤 이후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거든요. 하지만 상관없었어요. 그곳에는 외톨이였던 나를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환영식 때의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걔는 원래 그런가 보다’하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테니까요. 그들은 아마도 '익룡을 타고 날던 지도희에게 저런 조신한 면도 있구나'하고 놀랐을 거예요.


나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어요. 일부러 용기를 내서 활달한 척을 해 봤어요.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 효과가 있는 것 같았어요. 속으로는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질 정도였지만 정말 미친 척하고 흉내를 내봤어요. 흉내를 내봤다니까 좀 이상하죠?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 미진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전교에서 알아주는 까불이였죠.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타이타닉호에 데려다 놓아도 떠들고, 웃고, 춤추고, 노래 부를 아이였어요. 공부보다는 항상 친구들 웃기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죠. 나는 스스로 위축될 때마다 미진이를 떠올렸어요. ‘이 상황에서 미진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해 가면서 미진이 흉내를 내 봤어요. 물론 속으로는 엄청 부자연스럽고 긴장도 했죠. 그래서, 미진이처럼 까불수 있었느냐고요? 아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내가 아무리 흉내 낸들 미진이만 하겠어요? 미진이 반의반도 못했죠. 그냥 가끔 말문을 열고, 잘 웃는 여대생 정도로 보였겠지요.


여러 명의 남자가 다가왔어요. 내가 그렇게 추한 외모는 아니잖아요? 예? 예쁜 편이라고요? 고맙습니다. 뭐, 그런 소리를 자주 듣기는 했어요. 이런, 좀 겸손할 줄 알아야 하는데, 호호호. 네? 아니요, 이건 미진이 흉내 내는 거 아니예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