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짜리 소설]도와줘요, 하이드 양(孃)-5

그녀를 불러내다.

by 파란 벽돌

환영식장에서의 활달함, 그리고 그 이후의 조신함, ‘쉬즈 곤’의 백치미가 적절히 섞여 있는, 그리고 예쁜 편이었던 나는, 인기가 없으려야 없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다리를 걸쳤죠. 사실 그 친구들도 내가 여러 다리 걸치는 걸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 현명하고 강한 남자들이었어요. 모두가 나중에 자기가 마지막 다리가 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걸 빼고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여자 친구도 변변히 없던 제가 남자 친구’들’이라니. 재준 선배가 그 중 첫 번째였어요. 특별히 조금 더 맘에 들었던 사람이기도 하죠.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은 어느 날 공부를 도와준다면서 다가왔어요. 그러다가 얘기를 몇 마디 나누고 알게 되었지요. 어느 날, 영화를 보여준다길래 같이 보고, 저녁을 사준다길래 같이 이태리 식당에 가게 되었어요. 그날은 미진이 흉내도 잘 못내겠더라구요. 나는 선배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럴수록 긴장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의 나로 돌아온 거죠.

“도희야, 오늘 왜 이리 조용해? 너 답지 않게. 내가 여기서 제일 맛있는 스파게티를 주문해 두었어. 참, 너 술 좋아하지, 와인도 한잔 마실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신 게 신입생 환영식인데 내가 술 좋아하는 여자로 알려져 있었어요. 그냥 있자니, 자꾸 혀가 안으로 말려들어 가는 것 같아 답답해서 그러자고 했어요. 술의 힘이라도 빌려보자고. 스파게티가 꽤 맛있었어요. 선배가 나를 위해 나름 고르고 골라 준비한 식당이었나 봐요. 와인 한 병이 도착했어요. 몬테스 알파 2006년산이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향을 잠깐 맛보고 한 모금 마셨어요. 와인이 혀를 간지럽히다가 목으로 넘어갔어요. 정말 맛있긴 맛있더군요. 그 거무튀튀한 액체가 왜 ‘신의 물방울’이라고까지 불리는지 알겠더라니까요. 와인이 식도를 타고 내 뱃속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꿈틀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나는 깨달았어요. 그 녀석이 다시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검붉은 와인을 뒤집어쓴 녀석이 손가락을 꺾으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어요. 녀석은 술을 마시면 나타나는 거였어요. 뱃속에 숨어 사는 또다른 지도희, 지도희와는 전혀 다른 지도희, ‘미스 하이드’가요. 그래요, 나는 그 녀석을 ‘미스 하이드’라고 불렀어요. 예,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하이드’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나에게서 나왔지만 나와는 띠끌만큼의 공통점도 없는 녀석이거든요.

나는 그제서야 무겁던 입술을 떼었어요.

“선배, 나 좋아하죠?”

미진이라도 갑자기 그런 말은 못 했을 거예요. 말하고 나서 나도 깜짝 놀랐어요.

“읍…, 쿨럭쿨럭”

재준 선배가 와인을 마시다가 놀라서 사레들린 것 같았어요.

“나는 선배가 귀여워 보이는데. 나 좋아하면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누가 알아요? 사귀게 될지...”

물어보던 말에 대답이나 겨우 하던 내가, 그날 처음으로 자기 의지로 하는 말이 그렇게 도발적일 줄 몰랐나 봐요. 심하게 당황하는 눈치였어요. 나도 당황했어요. 너무 나아가고 있었어요. 어서 그 녀석을 말려야 했어요. 하지만 미스 하이드는 내 손을 뿌리치고 혼자 질주하기 시작했어요.

“나, 선배랑 키스하고 싶어요.”

“풉, 컥컥”

재준 선배는 아예 씹던 스파게티를 테이블 위로 토해냈어요. 미스 하이드는 벌떡 일어나 그의 등을 두드려 주더군요. 그 식당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었겠지요. 당황한 웨이트리스가 달려와 수습을 해 줬어요.

그날 선배의 차 안에서 키스를 했어요. 나에게도 첫 키스였지만 그에게도 그런 것 같았어요. 정신을 못 차리더군요. 하지만 미스 하이드는 경험이 많은지 정말 능숙하더군요. 그 완벽한 조건에 적당한 음탕함까지 더해진 여자라니.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도 남자들의 로망 아니에요? 하지만 그건 지도희가 아니라 미스 하이드였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