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짜리 소설]
도와줘요, 하이드 양(孃)-6

그녀를 불러내다.

by 파란 벽돌

나는 가끔씩 그 녀석이 두려웠어요. 나와는 너무 다른 데다가 쉽게 멈출 줄 모르는 녀석이었거든요. 미스 하이드가 저지른 일을 지도희가 수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멀리하지는 못하겠더군요. 나와 다른 만큼,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걸, 그래서 내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걸,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줄 수 있는 녀석이었거든요. 그래서 어려운 순간마다 미스 하이드를 불러냈어요. 자신이 없을 때, 부끄러울 때, 용기가 필요할 때, 그리고 외로울 때에도 그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술 한 잔이면 잘도 기어 나왔죠. 낮에도 미스 하이드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많았어요. 급기야 가방에 소주병을 들고 다녔죠. 녀석이 필요하면 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한 모금씩 마셨어요. 선생님도 원더우먼 아시죠? 원더우먼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한 바퀴 제자리를 돌고 나면 옷이 바뀌고 초능력이 생기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바뀔 수 있었죠. 신기하게도요. 바뀌고 난 다음은 걱정할 것이 없었어요. 그 녀석이 알아서 다 해결해 주었거든요. 가끔 말릴 틈도 없이 폭주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요.

미스 하이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활달하고 능력 있는 녀석이었거든요. 친구들도, 선배들도, 교수님들도, 심지어 과사무실의 비서 언니까지도 모두 녀석을 좋아해 줬어요. 덩달아 나의 인기는 끝을 모르고 높아지기만 했죠.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어요. 여대생의 가방에 계속 술병을 들고 다니기가 번거로워진 거예요. 더군다나 점점 미스 하이드가 필요한 순간이 많아졌는데 그때마다 화장실에 들러 소주병을 홀짝거릴 수도 없는 거였고요. 그러다 좋은 기회가 생겼어요. 내가 약학과잖아요. 어느 날, 약제법을 배우다가 약을 캡슐로 만드는 실습을 하게 되었어요. 머리의 전구가 반짝하고 켜졌죠. 그날 저녁 늦게 실습실에 몰래 남아 소주를 캡슐에 담아내는 법을 깨우쳤어요. 기술은 점점 발전해서 정제된 75%의 에틸알코올로 약을 만들 듯 용량을 조절하여 조그만 캡슐로 만들었죠. 그래요. 독한 고량주 정도의 농도죠. 스쿠알렌 드셔 보셨어요? 그거랑 비슷하게 만든 거예요. 용량마다 색깔도 다르게 만들었어요. 이왕이면 여학생용으로 예쁘게 말이죠. 호호호. 이제 소주병을 기울이는 대신 캡슐 한 알을 삼키면 그 녀석이 불려 나왔어요. 화장실에 숨어서 먹을 필요도 없어졌지요. 술 냄새요? 술 냄새가 왜 나는지 아세요? 그게 원래는 알코올 냄새가 아니에요.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중간 산물인 알데하이드 냄새죠. 숙취의 원인이기도 하고요. 맞아요. 술 마신 사람한테 가까이 가서 맡아 보면 나는 왠지 향긋한 냄새가 바로 그거예요. 어머나, 얘기가 옆으로 샜네요. 글쎄, 약으로 생각하고 먹으니 그런 냄새도 안 나고, 진짜 약인 것 같았어요. 가방에는 이제 술병 대신 약병이 담겨 있었어요. 친구들은 나에게 밝히지 못할 지병이 있는 줄 알았을 거예요. 약을 달고 살았으니까요. 호호호. 잠깐만, 생각난 김에 한 알 먹어도 될까요? 거기 물잔 좀 건네주실래요? 안 된다고요? 지금쯤 한 알 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럼 계속 얘기할게요. 약학과에는 ‘약물 동태학’이라는 과목이 있어요. 선생님도 아실 거예요. 약물의 흡수, 분포, 대사, 배설에 관련된 학문이죠. 가령 내가 약을 몇 그램 먹으면 그것이 언제 얼마나 흡수되고, 얼마나 오랫동안 약효를 발휘할 수 있는 농도로 체내에 남아있는지, 언제 어떤 기전으로 배설되어 효과가 없어지는지 밝혀내는 거예요. 그리고 혈중 농도가 얼마일 때 원하는 약효가 나타나고, 얼마일 때 사라지는지도 알 수 있고요. 그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거든요. 나는 이미 2학년 때 그것을 다 이해하고 알코올 성분이 얼마일 때 미스 하이드가 나타나고, 얼마일 때 사라지는지 또 약효가 얼마나 오래가는지 파악했어요. 그래서 내가 만드는 알코올 한 캡슐의 용량을 조절했지요. 내가 달리 약학과 우등생이었겠어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알코올 한 캡슐이면 원래 미스 하이드를 6시간 정도 깨어나게 할 수 있었어요. 약효는 굉장히 신속하고 확실했어요. 그때는 내 몸이 알코올에 민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알코올의 용량을 조절하면 미스 하이드를 다시 뱃속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점점 그 녀석을 돌려보내기 싫어지는 날이 늘어났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