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짜리 소설]
도와줘요, 하이드 양(孃)-7

그녀를 불러내다.

by 파란 벽돌

미스 하이드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이었어요. 마치 하등동물 같았죠. 그만큼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도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런 저돌적이고 무례한 면이 더 설득력을 보여주기도 해요. 현대는 가식과 위선이 판을 치는 세상이에요.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양심적인 척, 성인군자인 척 거짓을 말해요. 옛날에 중국 제자백가 중에 양자(楊子)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내 다리에 있는 털을 하나 뽑아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러지 않겠다”고 일갈했어요. 이기주의의 최고봉이었죠. 세상이 평화로워지기보다 당장 내 다리에서 털이 뽑히는 작은 통증이 더 고통스럽고 중요하다는 얘기죠. 누구나 ‘그 사람 해도 해도 너무 하네.’라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 현대인들은 양자에 버금가는 사람들이에요. TV만 켜면, 신문만 펼치면 선량한 사람들, 양심적인 사람들, 이타적인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이에요. 하지만 세상의 십 분의 일만이라도 진짜 그런 사람들로 차 있다면 지금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있지는 않을 거예요. 말은 선하게 하지만 행동은 다르다는 거죠. 누구도 자기 다리의 털 한 터럭을 내어주려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남에게서는 한 뭉텅이를 뽑아내려 하죠. 그러고 보면 미스 하이드는 순수해요. 말이 곧 행동이고, 행동이 곧 말이니까요. 본능적이어서 위선이 없었고, 거칠어서 속임이 없었어요. 나와는 정반대였죠.


사람들은 미스 하이드에 열광했어요. 항상 인기 만점이었죠. 언제나 녀석을 환영했고, 그녀에게 익숙해져 갔어요. 오히려 그들은 지도희가 돌아와 있는 시간에 당황하기도 했어요.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몸이 안 좋기라도 한 건지 걱정스럽게 물어봐 줬죠. 그렇게 나의 자리는 미스 하이드에게 잠식되어 갔어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남자들에게 사랑받고 추앙받고 있는 것은 미스 하이드였어요. 나 지도희가 아니라요. 어떨 때는 나조차도 지도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니까요.

나는 미스 하이드를 불러내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캡슐을 삼켜야 했어요. 그런 잦은 호출이 불쾌했는지 그 녀석은 언젠가부터 잘 나오려 하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캡슐의 용량을 늘려야 했지요.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날에는 오히려 편했어요. 술에 취하면 그 녀석이 스스로 기어 올라왔어요. 문제는 그런 경우 내가 그 녀석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거였죠. 한 번 나타난 그 녀석은 계속 알코올 농도를 유지했고, 결국 나는 손과 발이 묶이고, 입에는 재갈이 물린 채, 밤새 그 녀석이 떠드는 걸 듣고 있어야만 하는 때도 있었어요. 내가 듣기에도 녀석의 달변은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어떨 때는 농담의 정도가 지나쳐서 내가 다 섬뜩할 만한 때도 있었어요. 들은 사람들이 화를 내야 하는 것이 마땅하건만, 신기하게도 개의치 않고 좋아했어요. 내가 했으면 화를 냈을 법한 말도, 미스 하이드가 하면 웃음으로 흔쾌히 넘겨줬지요. 그 녀석이 재미와 불쾌함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잘하는 거였죠.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미진이는 흉내 낼 수 있어도 미스 하이드를 흉내 내기는 어렵다는 것을요. (계속)